음력 설을 쇠지 않는 일본에선 연말연시가 제일 큰 명절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는 많은 회사에서 1주일을 연말연시 휴일로 설정하면서, 따로 휴가를 내지 않더라도 주말을 포함해 9일 정도 되는 연휴가 주어지기도 했다. 집도 회사도 도쿄 도심인데, 특히 도심 지역은 연말연시에 조용해진다. 차분하고 조용한 연말연시를 보내면서 그간 미뤄 두었던 일을 처리했다. 그러면서 이만하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괜찮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법률저널 독자분들 중에는 무슨 시험이든 시험공부를 하면서 연말연시를 맞은 분들도 많을 것이다. 이런저런 시험을 준비하며 연말연시를 보냈던 내 경험을 떠올려 보면, 남들이 쉴 때 공부하는 것이 힘들고 서러웠던 기억이 있다. 특히 연말연시의 추운 신림동 학원에서 2차 시험 답안을 쓰는 연습을 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 탓인지, 최근까지도 종종 꿈에 나오기도 한다.
이런 시기야말로 일종의 덤으로 주어진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싶다. 어떤 시험이든 진득하게 앉아서 공부하는 시간을 ‘적립’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쉴 때는 이런 시간을 추가로 적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집중이 안 되면 밑져야 본전이고, 공부 시간 적립이 되면 더 좋다는 마음가짐도 때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독자분들이 준비하는 대부분의 시험이 특히 힘든 이유 중 하나는 그 결과가 합격 아니면 불합격이라는 두 가지뿐이어서라고 생각한다. 어떤 날은 ‘이 정도 힘들게 공부했으면 합격이겠지’ 하는 마음이다가도 그다음 날이 되면 불안이 엄습해 오는 것이 수험생의 일상이다. 그래서 더더욱 연말연시는 내 멘탈을 돌아보고, 또 챙길 중요한 기회가 된다고도 생각한다.
멘탈을 가다듬는 방법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나는 2차 시험을 준비하면서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합격기를 쓰고 또 고쳐 썼었다. 하루 공부를 마치고 귀가하면서 ‘이런 내용을 써야지’ 하고 초안을 잡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시험 스트레스와 걱정도 나중에 합격기에 써야겠다고 생각하면 묘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 내가 다른 합격자들의 수기를 읽었던 이 지면에 내 합격기를 쓰게 될 줄은 그때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시험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최대의 덕담은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 난도가 있는 시험에 대해 준비를 하지 않고 요행을 바랄 수는 없다. 반대로 충분히 준비했는데 운이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상황으로 인해 노력의 정도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더도 덜도 말고 공부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려면 큰 행운이 따라야 한다.
이제껏 여러 시험을 치다 보니 다양한 상황을 겪었다. 제일 인상적인 경험 중 하나는 로스쿨 기말고사에서 전혀 해 보지 못했던 문제가 나왔을 때였다. ‘머릿속이 하얘진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정말로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같은 열에 앉은 클래스메이트가 서럽게 우는 것을 봤다. 그 모습을 보니 그 친구는 안됐지만, ‘이게 나만 황당한 상황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어서, 비록 잘 모르는 내용이었지만 최대한 기억을 쥐어짜 성의껏 답안을 썼고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2025년 새해에는 수험생인 독자분들도 그렇지 않은 독자분들도, 그리고 나도 ‘멘탈갑’으로 더도 덜도 말고 딱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얻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2024년 마지막 업무를 마무리한다.
박준연 미국변호사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에 수석 합격했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 ‘Latham & Watkins’ 도쿄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아태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글로벌 로펌인 ‘Herbert Smith Freehills’ 도쿄 오피스에서 근무 중이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hsf.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