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거부를 거부한다’-구청의 동성커플 혼인 신고 접수 거부, 그리고 혼인 평등 소송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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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거부를 거부한다’-구청의 동성커플 혼인 신고 접수 거부, 그리고 혼인 평등 소송의 시작
  • 김지림
  • 승인 2024.12.13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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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김지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변호사님, 혼인신고 접수 자체를 받아줄 수 없다는데요?” “네? 일단 접수는 받고 나서 수리를 하지 않는 것이지, 접수조차 거부할 수는 없어요. 다시 한번 물어보실래요?” “다시 물어봤는데 안 된다고 하는데요. 점심시간 되었다고 그냥 나갔어요.”

2024년 10월의 어느 날, 혼인평등 소송의 당사자인 삼식, 경수 커플(가명)은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구청을 찾았습니다. 동성 간 혼인신고이기에 바로 거부되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오랫동안 진행될 여정을 기왕이면 로맨틱하게 시작하자며 두 사람에게 의미 있는 날과 연애시절 추억이 가득한 곳에 있는 구청을 선택했습니다. 비록 혼인신고 ‘불수리’ 증명서라도 공문서에 두 사람의 이름이 함께 적히는 경험도 신기할 것 같다며, 거부되어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며 서로를 다독이고 찾은 구청에서 두 사람은 ‘거부조차도 거부’되는 경험을 하고 말았습니다.

구청이 동성 간 혼인신고를 수리해 주지 않는 것은 당연히 예상한 것이지만 혼인신고에 대한 접수조차 받지 않는 것은 위법이었습니다.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민원을 신청받았을 때 다른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접수를 보류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구청은 혼인신고와 관련하여 법원이 위임한 사무를 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혼인’에 대한 어떤 해석을 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접수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접수를 받은 뒤 불수리 처분을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오전 일찍 구청을 찾은 삼식, 경수 커플에게, 구청 직원들은 ‘법적으로 불가능한 신고이니 접수도 안 된다’, ‘헌법에 남녀라고 되어 있지 않나?’, ‘(접수조차 안 받아도 된다는) 내부지침이 있다’라며 끝까지 접수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삼식, 경수 커플은 포기 하지 않았고, 대리인단과 함께 논의한 끝에 그날 안에 무조건 접수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오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구청으로 달려가 커플과 함께 다시 항의하고, 설명하고, 재촉하고, 또 기다린 뒤에야 마침내 불수리 증명서를 받았습니다. 커플이 구청에 도착한 지 4시간, 제가 합류한 지 두 시간가량이 지나서 받아 낸 ‘거부’였습니다. 그토록 받으려 애썼던 거부, ‘불수리 증명서’를 받아 들자 너무 허탈했습니다. 혼인신고 ‘수리’도 아니고, ‘불수리’를 받기 위해 이렇게 애를 쓰고 그 과정에서 이렇게 상처를 받아야 하다니.

올해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건강보험 동성 배우자 피부양자 인정소송에서 국가가 동성커플의 존재를 인식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대법원은 해당 사건에서 “국가가 보호와 혜택을 주는 것은 존재가치를 승인하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배제에서 오는 소외감은 사회구성원으로 한 개인이 가지는 존재가치를 잠식한다”고 판단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날 구청은 단순히 동성커플의 혼인신고를 불수리한 것을 넘어 관련법을 위반하며 접수조차 거부하는 방식으로 동성커플을 철저히 배제하였습니다. ‘동성커플은 거부당할 권리조차 거부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이뤄진 행정 처리였습니다. 구청의 철저한 배제가 삼식커플의 존재가치를 아주 일순간 잠식하였을 수는 있겠으나, 다행인 것은 이 일을 계기로 앞으로 이들의 전투력이 엄청나게 상승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일주일 뒤인 10월 10일, 전의에 불타는 삼식, 경수 커플을 포함한 11쌍의 동성커플이 각자 우여곡절 끝에 받아 든 ‘혼인신고 불수리처분서’를 들고 혼인 평등 소송을 시작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우리도 ‘거부를 거부하겠다’는 선포였습니다.

위에서 말한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4명의 동성 배우자가 피부양자 자격을 취득하였다고 합니다. 2020년 소송을 시작할 때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광경입니다. 이제 몇 년 뒤일지는 모르지만, 혼인평등 소송이 끝나고 삼식커플이 구청에 들어가 5분 만에 혼인신고를 하고 나오는 통쾌한 모습을 꿈꿔봅니다. ‘뭐가 이렇게 간단해’ 싶을 정도로 허탈하게 간단한 그 절차, 이미 전 세계 40개 국가에서 가능한 그 절차를 “애정과 동거, 부양, 협조, 정조의무를 다 하겠다는 깊은 고민과 결단”을 한 모두가 차별 없이 누리는 그날은, 마음속에 차별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결국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김지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공감 뉴스레터 2024년 11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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