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식쌤의 한국사 크로스핏 / Season1. 한국사 기출 문헌 집중 탐구(108)
상태바
이경식쌤의 한국사 크로스핏 / Season1. 한국사 기출 문헌 집중 탐구(108)
  • 이경식
  • 승인 2024.06.21 15: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경식 공경단 학원
 

근현대 주요 문헌 : 개화기 1905

 

517.

1905 샌프란시스코의 공립협회가 창간한 재미 교포 신문

개화기 1905.11.22 ~ 1909.2.10. 공립협회 기관지

간행 : 공립협회. 사장 : , 주필 : 송석준

순 국문. 매월 2회 → 1907.4.26 부터 주간 신문

국권 회복, 자주 독립 강조

1908.3 장인환, 전명운 의거 ( 암살 ) 를 크게 보도

→ 미국 내의 한국의 독립 운동 지지 여론 조성에 노력

미국 본토, 하와이, 블라디보스토크, 서울에 보급소를 두어 배포

1908.4 일제가 신문지법을 ❹ 제정 / 개정 → 해외에서 발간되어 국내에 유입되는 동포 신문도 ❺ 부에서 통제 → 압수, 발매 금지

1909.2 공립협회가 ❻ 회로 개편되면서 본 신문은 1909.2.10부터 ❼ 회의 기관지 < > 가 됨

정답

❶ 공립신보 (共立新報) ❷ 안창호 ❸ 스티븐스 ❹ 개정

❺ 통감 ❻ 국민 ❼ 국민 ❽ 신한민보

 

저자 소개

 

 

2016.6.25 서울시 7

2018.8.18

국가직 지역인재 9

2018.10.13

지방직 7

2019.4.27 경찰 1

 

안창호 (安昌浩)

1878 ~ 1938

: 도산 (島山)

✻ 독립운동가

1878 평남 강서 출생

1895 상경하여 언더우드가 경영하는 구세학당 (救世學堂) 에서 3년간 수학

1897 독립협회 가입 → 1898 만민공동회 개최

1900 미국 이동 → 대한인 공립협회 설립, < 공립신보 > 발행

1906 귀국 → 1907 신민회 조직

1907 평양에 대성학교 설립. 평양, 대구에 태극서관 건립,

평양에 도자기 회사 설립

1909 최남선, 김좌진, 이동녕 등과 함께 청년 학우회 조직

→ 민중 계몽 운동

1910 중국 망명 → 1911 미국 이동

1913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 창설

1919 3.1운동 직후 상하이 이동

→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

연통제 수립 등 활동

1923 임정 국민대표회의 참여 (개조파)

1924 난징에 동명학원 설립

1930.1 상하이에서 이동녕, 이시영, 김구와 함께 한국독립당 결성

1932 윤봉길의 상하이 훙커우 의거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서울로 송환 → 4년형 선고받고 복역 중 1935 가출옥 1937 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일본 경찰에 체포 (치안유지법 위반) 되어 복역 → 병보석 → 1938.3 사망

 

518.

조선의 편년체 역사서

개화기 1903 헐버트가 윤기진에게

위탁하여 저술.

1905 중국 상하이에서 간행

저자 : 윤기진 (尹起晉). 조선 말의 문신

1392 (태조1) 부터 1895 (고종32)

까지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서술

 

[사진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답

대동기년 (大東紀年)

 

519. 시일야방성대곡 (是日也放聲大哭)

2013.9.7 서울시 9/ 2015.4.18 국가직 9/ 2015.8.29 국가직 7

2016.3.19 사회복지직 9/ 2016.3.19 경찰 1/ 2017.9.2 경찰 2

늑약 (1905.11.17) 을 규탄하는 ❷ 의 논설

개화기 1905.11.20 신문에 실린 논설

저자 : ( 1864 ~ 1921 ) : 위암 (韋庵)

황제의 승인을 받지 않은 ❺ 늑약의 부당성을 알리고, 을사 5적과

이토 히로부미 규탄

원문

지난번 이등(伊藤) 후작이 내한했을 때에 어리석은 우리 인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 삼국의 정족(鼎足) 안녕을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인지라 오늘 내한함이 필경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공고히 부식케 할 방책을 권고키 위한 것이리라.’ 하여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상하가 환영하여 마지않았다. 그러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꿈 밖에 5조약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이 조약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을 빚어낼 조짐인즉, 그렇다면 이등 후작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대황제 폐하의 성의(聖意)가 강경하여 거절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조약이 성립되지 않은 것인 줄 이등 후작 스스로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도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 4천년의 강토와 5백년의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생령들로 하여금 남의 노예 되게 하였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 하지만 명색이 참정(參政)대신이란 자는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부()자로써 책임을 면하여 이름거리나 장만하려 했더란 말이냐.

김청음(金淸陰)처럼 통곡하며 문서를 찢지도 못했고, 정동계(鄭桐溪)처럼 배를 가르지도 못해 그저 살아남고자 했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강경하신 황제 폐하를 뵈올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2천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

! 원통한지고, !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 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과 기자 이래 4천년 국민 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이 논설로 인해 ❻ 신문은 3개월간 정간되고, 당시 신문의 사장 겸 주필이었던 ❼ 65일간 투옥됨

시일 (是日) : 오늘 / () : 쉼표 (,) 의 기능을 함

방성 (放聲) : 소리 내어 / 대곡 (大哭) : 크게 운다.

⇒ 是日也放聲大哭 : 오늘, 목 놓아 통곡하노라!

정답

❶ 을사 ❷ 장지연 ❸ 황성 ❹ 장지연 ❺ 을사 ❻ 황성 ❼ 장지연

 

저자 소개

 

2015.4.18 국가직 9

2015.8.29 국가직 7

2016.3.19 경찰 1

2017.9.2 경찰 2

장지연 (張志淵)

1864 ~ 1921

: 위암 (韋庵)

숭양산인 (嵩陽山人)

1895 을미사변 → 의병 궐기 호소문 각처 발송

1896 아관파천 → 고종 환궁 요청 만인소 (萬人疏) 기초

1897 독립협회 가입, 활동

1898 황성신문 기자 → 1901 주필 → 1902 사장

1905.11.17 을사늑약 → 11.20 <시일야방성대곡> 발표

1906 대한자강회 발기인

1907 대한협회 발기인. 국채보상운동 참여

1908 블라디보스토크 <해조신문> 주필

1909 <경남일보> 주필 → 1910 한일 강제 병합 비난

→ 경남일보 10일간 정간 (1910.10 신문지법 위반)

1910년대 친일 활동.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에 친일 시, 산문 발표

✻ 주요 저서 : <시일야방성대곡>, 「대한강역고」「유교연원」, 「일사유사」, 「위암문고」,

「대동시선」

 
 

 

<strong>이경식</strong><br>현, 공경단 학원 공시 한국사 강사<br>전, EBS 중학프리미엄 한국사 강사<br>에듀윌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강사<br>학습문의) kyongshik@naver.com
이경식
현, 공경단 학원 공시 한국사 강사
전, EBS 중학프리미엄 한국사 강사
에듀윌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강사
학습문의) kyongshik@naver.com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