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식 공경단 학원
근현대 주요 문헌 : 개화기 1900 ~ 1905 년
513. ❶ 【 】 풍속도첩 (箕山風俗圖帖) |
✻ 조선ㆍ대한제국 화가 김준근의 풍속 화첩 ✻ 개화기 19 세기 말 (조선 말기 ~ 대한제국) ✻ 저자 : 김준근 ( 金俊根 ? ~ ? ) 호 : ❷ 【 】 (箕山) ▸ 조선 ~ 대한제국 시기의 풍속 화가 ▸ 「천로역정」 의 삽화를 그림 ✻ 19 세기 말 부산ㆍ원산ㆍ제물포 등 개항장에서 외국 상인ㆍ선교사에게 판매할 기념품으로 제작한 풍속 화첩 총 79점 ✻ 중국의 수출화 (Export painting 중국 광저우ㆍ닝보에서 외국인에게 판매하기 위해 그린 중국 풍속 화첩) 의 영향을 받음 ✻ 조선 후기 ❸ 【 】 화의 전통 또한 계승 ✻ ❹ 【 】 함부르크 민족학 박물관 소장 |
정답
❶ 기산 ❷ 기산 ❸ 풍속 ❹ 독일
1903 年
514. 대한강역고 (大韓疆域考) |
✻ 장지연이 ❶ 【 】 의 「아방강역고」 를 증보한 책 ✻ 1903 ✻ 저자 : 장지연 ( 1864 ~ 1921 ) 「 ❷ 【 】 방성대곡 」 저자 ✻ ❸ 【 】 의 「아방강역고」 에 임나고 (任那考) 를 첨가하고, 새로 발견된 황초령비문 (黃草嶺碑文) 과 당시 문제가 되던 백두산 ❹ 【 】 고 (白頭 山定界碑考) 를 추가하여 간행 ✻ 삼한ㆍ사군ㆍ신라ㆍ백제ㆍ북간도의 지도 5매 삽입 ✻ 「백두산 ❺ 【 】 고 (白頭山定界碑考)」 수록 ✻ 장지연이 「대한강역고」 를 우리말로 번역하여 「조선강역지」 라 함 |
정답
❶ 정약용 ❷ 시일야 ❸ 정약용 ❹ 정계비 ❺ 정계비
1904 年
515. ① 【 】 2013.9.7 서울시 9급 / 2014.3.22 사회복지직 9급 / 2014.10.11 지방직 7급 2015.3.7 법원직 9급 / 2016.3.19 사회복지직 9급 / 2016.3.19 경찰 1차 2016.6.25 서울시 9급 / 2017.3.18 사회복지직 9급 / 2017.4.8 기상직 9급 2022.4.2 국가직 9급 |
✻ 1904 베델과 양기탁이 창간한 일간신문 ✻ 개화기 1904.7 ~ 1910.8 ✻ 발행인 : ② 【 】 (Ernest Bethel 영국인), 총무 : ③ 【 】 ✻ 베델이 양기탁과 함께 창간, 주필에 박은식 활약, 신채호도 집필에 참가 ✻ 창간 당시 순한글 2면 + 영문 4면의 6면 신문 → 1905.8.11 부터 국문판 (국한문 혼용) 과 영문판을 분리시켜 따로 발행 → 1907.5.23 국한문판, 영문판, 순한글판 ( < 대한매일신문 > 창간 ) 의 3종으로 발행 (발행 부수 1만부 초과) ✻ 당시 일본은 ④ 【 】 전쟁을 일으키고 우리나라에 군대를 불법 주둔하며 대한제국의 민간 신문을 사전 검열하고 있었음 → 일본의 검열망을 뚫기 위해 ⑤ 【 】 인 명의로 신문 발행 (치외법권 적용) ✻ ⑥ 【 】 조약 (1905) 의 무효 주장, 고종의 친서를 본 신문 및 영국의 < 런던 트리뷴 > 지에 게재 ✻ 일본군과 싸우는 우리 ⑦ 【 】 병을 일본은 비도 (匪徒. 도적떼), 폭도 (暴徒)로 표현하도록 강요했으나, 본 신문만 ⑧ 【 】 병 운동의 진실을 보도 ✻ ⑨ 【 】 회의 기관지로서의 성격을 띰. ⑩ 【 】 보상운동 적극 지지 ✻ 발행부수 1만부 이상의 지대한 영향력 → ⑪ 【 】 부 방해공작↑ (회유, 매수, 협박, 제소) ✻ 1910 ⑫ 【 】 국치 (한일합방) 다음날부터 ‘대한’ 두 글자를 떼어낸 < ⑬ 【 】 신보 > 로 개칭되면서 ⑭ 【 】 부 기관지로 전락 |
정답
① 대한매일신보 (大韓每日申報) ② 베델 ③ 양기탁 ④ 러일
⑤ 영국 ⑥ 을사 ⑦ 의 ⑧ 의 ⑨ 신민 ⑩ 국채 ⑪ 통감
⑫ 경술 ⑬ 매일 ⑭ 조선총독
저자 소개 2013.9.7 서울시 9급 2015.3.7 법원직 9급 2016.3.19 사회복지직 9급 2016.3.19 경찰 1차 2016.6.25 서울시 9급 2022.4.2 국가직 9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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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베델 ( Ernest Bethel ) 1872 ~ 1909 영국인 언론가. 한국명 : 배설 1904 러일전쟁 일어나자 <데일리크로니클> 의 특파원으로 내한. 그 해 7월, 양기탁과 함께 <대한매일신보> 창간, 적 극적 항일 언론 활동 1908 일본이 <대한매일신보> 의 기사, 논설이 일본인 배척 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영국 상하이 고등법원에 제소 → 유죄 판결 받고 상하이로 호송되어 3주간 금고 → 귀국후 <대한매일신보> 를 비서인 만함 (A.W. Marnham) 에게 넘기고 항일 언론 활동 지속 1909 심장병으로 사망 →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 |
1905 年
516. 결고동포 (訣告同胞) 2013.6.22 국가직 7급 / 2015.4.18 국가직 9급 / 2015.5.30 경찰 2차 2018.3.24 서울시 제1회 7급 |
✻ ❶ 【 】 의 유서 ✻ 개화기 1905.11.30 ( ❷ 【 】 늑약 [1905.11.17] 직후 ) ✻ 저자 : ❸ 【 】 ( 1861 ~ 1905 ) ❹ 【 】 늑약 (1905) 체결에 항거하여 유서를 남기고 자결 ✻ 저자가 늑약에 항거하여 자결하면서 국민에게 남긴 유서 ✻ “ 오호! 나라의 치욕과 백성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 경쟁 가운데서 진멸하리라. 대개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반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사람은 도리어 삶을 얻나니 제공 (諸公) 은 어찌 이것을 알지 못하는가. 단지 (민) 영환은 한번 죽음으로 황은 (皇恩) 에 보답하고 우리 2천만 동포 형제에게 사죄하려 하노라. 그러나 영환은 죽어도 죽지 않고 저승에서라도 제공을 기어이 도우리니 다행히 동포 형제들은 천만 배 더욱 분려 (奮勵) 하여 지기 (志氣) 를 굳게 하고 학문에 힘쓰며 한 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우리의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어서라도 마땅히 저 세상에서 기뻐 웃으리라. 오호! 조금도 실망하지 말지어다. 대한제국 2천만 동포에게 죽음을 고하노라. ” |
정답
❶ 민영환 ❷ 을사 ❸ 민영환 ❹ 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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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013.6.22 국가직 7급 2015.4.18 국가직 9급 ![]() 민영환 (閔泳煥) 1861 ~ 1905 호 : 계정 (桂庭) |
✻ 조선 말기의 문신. 민겸호의 아들 ✻ 1878 문과 급제 ✻ 1881 동부승지 ✻ 1882 성균관 대사성 ✻ 1882 임오군란이 발발하여 아버지 민겸호가 살해되자 사직 ✻ 1884 이조참의, 도승지, 전환국 총판 등 ✻ 1887 호조판서 ✻ 1888 병조판서 ✻ 1896.4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어 중국, 일본, 캐나다, 미국, 영국을 거쳐 모스크바, 시베리아를 돌아보고 귀국 →「해천추범 (海天秋帆)」저술 ✻ 영국 여왕 즉위 60주년 축하식 참석 ✻ 독립협회 적극 지지, 후원 ✻ 1905.11 을사조약으로 유서 남기고 자결 ✻ 저서 :「해천추범 (海天秋帆)」,「사구속초 (使歐續草)」, 「천일책 (千一策)」등 |
![<strong>이경식</strong><br>현, 공경단 학원 공시 한국사 강사<br>전, EBS 중학프리미엄 한국사 강사<br>에듀윌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강사<br>학습문의) kyongshik@naver.com](/news/photo/202406/747010_84213_127.jpg)
현, 공경단 학원 공시 한국사 강사
전, EBS 중학프리미엄 한국사 강사
에듀윌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강사
학습문의) kyongshi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