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위원 11명 외에 직원은 한 명도 없어 적어도 한달 이상 파행 운영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인권 국가'를 강조해온 국민의 정부가 공들여 만든 인권위가 문을 열자마자 손발이 없어 사실상 '개점 휴업'을 해야 하는 형편에 직면하게 됐다는 보도다.
인권위에 따르면 26일부터 인권침해와 차별행위 등에 대한 진정은 접수하지만 인권위원 11명을 제외한 위원회 소속 직원이 없는 상태여서 접수된 진정에 대한 조사는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정원 등 조직 규모에 대한 행정자치부와 인권위의 의견차 때문에 인권위 직제가 확정되지 않아 직원을 채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국민의 기대 속에 지난 4월30일 국회를 통과한 국가인권위법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원회는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 및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 인권 교육과 홍보 등 인권과 관련된 광범위한 활동을 하도록 되어 있다. 인권위측은 그런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조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해왔다.
인권위는 439명을 요청했던 당초 입장을 바꿔 행자부에 320명선의 수정안을 제시했으나, 행자부는 150명도 많다는 입장이어서 진통을 겪고 있다. 처음으로 의미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었으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인권위측 주장과 아무리 독립적 국가기구라 해도 공무원 조직인 만큼 다른 부처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행자부측 입장이 팽팽히 맞서 있는 형국이다.
정원을 둘러싼 인권위와 행자부의 이런 견해 차이는 인권위의 업무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행자부는 인권위의 업무를 일단 인권침해와 차별행위 등의 조사에 한정시켜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에 인권위는 접수된 인권침해와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는 물론 법무부와 보건복지부가 규정한 구금시설 등을 방문 조사해야 하고 법집행 공무원들에 대한 인권교육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김창국 국가인권위원장은 "관료들이 우리편을 안들어 준다. 시어머니가 하나 생긴 것으로 여기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민주인권국가로 가는 과정에서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일부에서는 국가인권위가 옥상옥(屋上屋)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지만 정부 부처와 상호보완 관계가 되도록 하면서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며 인권위의 위상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위원 11명의 면면을 보면 판사 출신 변호사 3명, 검사 출신 변호사 2명, 법대 교수 3명 등 법조인이 다수를 차지한다. 나머지 위원들은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인권위원의 면면은 한국사회의 이념적 정서적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는 만큼 한국의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가치의 통합모델을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위 출범 전까지 조직 및 인원 문제가 해결되어도 직원 채용에 필요한 기간 등을 고려할 때 최소한 한달 이상 정상 운영이 어려울 것으로 보여 자칫 또 다른 인권침해를 야기할 가능성은 없는지 우려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