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아니면 저것. 양자택일의 고충이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삶의 소소한 영역에서 쉼 없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식사 장소를 고르고 메뉴를 선택할 때 복수 후보는 있어도 복수 선택은 힘들다. 음식을 나눠 먹는 분위기여도 전체 식탁에 오르는 음식과 선택받지 못한 메뉴로 나뉜다. 그래서 루틴이란 게 각자 구축돼 있다. 매번 고민을 줄이려면 짜인 대로 움직이는 패턴이 유리해서. 비오는 날은 무얼 먹고, 더운 날은 어떤 메뉴로 결론 내고. 루틴이 주는 안락함 때문에 루틴을 벗어난 일의 고민 강도는 더 커지는지도 모른다. 특히 난생 처음 당하는 일이라면.
필자도 국민 모두도 이 탄핵 정국이 낯설고 고민스럽다. 탄핵정국은 접해 봤지만, 계엄으로 인한 탄핵소추는 처음이니까. 통치행위로서 계엄 발령 사유가 적정했는가, 아니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통치행위였는가. 결론은 헌재가 내려줄 텐데, 결과가 나오기 전 이 혼란스런 국면에 몸 담고 있는 모든 국민의 피로도와 불안감은, 루틴에서의 안락함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지난 대선, 차악과 최악 중에서 선택을 강요받았던 그 답답함이 상기된다. 과연, 최악을 골라서 이 모양인지, 차악을 골랐는데도 이 모양이니 최악이었으면 어땠을까 안도해야 하는지.
경매건수가 크게 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감정평가사무소의 주력 업무가 경매평가이므로 그들의 수입이 늘었다면 경매건수 증가는 분명하다. 경매의 원천은 담보대출이므로 대출실행 시 담보평가를 진행한 자는 좌불안석이다. 경매절차 종결해서도 회수 못한 대출금을 청구할 창구의 표적으로 설정될 수 있어서다. 당사자는 담보가격이 적정했다는 방어에 돌입해야 한다. 과거 보고서를 꺼내 정독하면 단숨에 알 수 있다. 적힌 숫자를 바꾸고 싶은 찝찝한 여운이 남는다면 험난한 길에 들어선 것이다.
“쟤도 그랬어요.” 참 구차한 변명이다. 다른 평가들도 나와 비슷하므로, 나를 문제 삼는다면 여기 다른 평가전례도 같이 문제 삼아야 한다는 것은 완벽한 방어논리가 안 된다. 예컨대 부적정한 평가사례가 하나 있었고, 후속 평가가 그걸 활용해서 가격을 만들어 냈으면, 그와 유사한 가격수준의 사례는 부적정한 군집의 하나일 뿐 그 일단의 가격 수준이 명확한 시장 자료에 부합하는지를 갖고 방어해야 할 것이다. 담보사례들을 다 걷어내고 판단한 가격수준이 중요하다.
담보의 거품을 공동으로 생산해 낸 지역이 더러 있어 보여서 기업자산 공정가치 평가 혹은 손상차손검토 목적의 감정평가에서도 종종 무리함이 보인다. 평가목적이 평가가격의 적정성을 훼손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재무개선 혹은 담보제공의 용도를 모르는바 아니나, 유사한 자산재평가 전례 외에는 지지할 수 있는 시장 자료가 전무할 때 꼭 특수가격을 생산해 낸 것처럼 보인다. 그 가격 뒤에, 이렇게 해 줘야 거래처가 유지되고 내가 이 가격을 거절해도 내 줄 다른 평가자가 있으니 부득이한 현실 양해해 달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몇몇 사례만 그렇다는 것이다.
최근 사업부 분사를 이유로 영업권 평가 의뢰를 받아 업무를 진행하면서 현금성 자산처리 문제가 부각됐다. 통상적으로 재고자산, 유형자산 등이 대표적인 영업자산이며 현금과 상품권, 예금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 ATM기기를 취급하는 사업장이어서 ATM기 테스트를 위해 위폐뿐만 아니라 현금 상당액을 보유하고 있었다. 현금이 기기 오작동을 시험하기 위한 재고자산인 셈. 그럼 테스트에 꼭 필요한 적정 범위가 있을 것이다. 단기대여금을 테스트용 현금으로 활용할 수도 있으니, 테스트용 현금이 영업자산이냐고 공격할 수도 있다. 영업용자산의 ‘적정’한 범위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
모든 감정평가 결과물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몇몇 법원 판결도 비난 세례를 받곤 하는데, 문제 삼을 평가서가 왜 없겠는가. 동료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가격이어야 대외적으로도 자신 있게 소명할 담력이 생기지 않을까. 내 편도 설득하지 못하는 보고서가 만천하에 해부된다면 그 뒷감당은 태산이다. 편을 가르기 위한 ‘선’은 탈피해야 하지만, ‘적정선’은 꼭 지키는 미덕이 필요하다. 최근, 감정평가목적이 감정평가 가격을 삼켜 버리는 몇몇 상황들을 보며 평범한 평가사로서 불편함이 느껴져 두서없이 쏟아내니 이번 주는 넋두리로 귀결됨을 고백한다.
이용훈
㈜대화감정평가법인 파트너 감정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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