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
Ⅱ. 공판과 증거
1. 정보저장매체 임의제출 후 집행과정에서의 참여권보장과 증거능력
(대법원 2023.9.18.선고 2022도7453 전원합의체 판결)
가. 사 안
(1) 공소사실
피고인은 2017.10.경 정경심으로부터 정경심 아들 조O의 대학원 지원에 사용할 목적으로 허위 인턴활동 확인서 발급을 부탁받고, 사실은 조O이 피고인의 법무법인에서 인턴활동을 한 사실이 없음에도 그러한 인턴활동을 하였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허위로 발급한 다음 정경심에게 전달하여 A대학교 및 B 대학교 대학원 입시에 이를 첨부서류로 제출하도록 함으로써, 정경심 등과 공모하여 위계로써 A 대학교 및 B 대학교 대학원 입학담당자들의 입학사정 업무를 방해하였다.
(2) 사건경과
정경심은 입시비리 관련 혐의 등 자신과 가족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자 자신과 가족들이 주거지에서 사용하던 하드디스크를 김경록에게 교부하면서 은닉을 지시하였는데, 하드디스크에는 정경심 등의 혐의사실과 관련된 전자정보가 저장되어 있었다.
김경록은 하드디스크를 은닉하였는데, 이후 증거은닉 피의자로 입건되자 은닉사실을 밝히면서 하드디스크를 수사기관에 임의제출하였다.
제1심에서 피고인에 대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고 원심은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였는데, 피고인은 김경록이 하드디스크를 임의제출하고 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김경록에게만 참여기회가 주어지고 그 소유자인 정경심 등에게는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은 위법이 있어서 전자정보에 대한 증거능력이 없다며 항소에 이어 상고를 하였다.
나. 판결요지
(1) 다수의견(대법관 9인) : 상고기각
하드디스크 및 그에 저장된 전자정보는 본범인 정경심 등의 혐의에 관한 증거이면서 동시에 은닉행위의 직접적 목적물에 해당하므로 김경록의 증거은닉 혐의사실에 관한 증거이기도 하여 김경록에게 참여의 이익이 있고, 정경심은 김경록에게 은닉을 지시하면서 하드디스크를 전달하였기에 김경록이 임의제출 무렵에 하드디스크를 현실적으로 점유한 사람은 김경록이고 그러한 현실적 점유에 의해 저장된 전자정보의 관리처분권을 사실상 보유·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도 김경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정경심은 하드디스크의 존재 자체를 은폐할 목적으로 김경록에게 교부하였고, 이는 자신과 하드디스크 및 전자정보 사이의 외형적 연관성을 은폐·단절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으므로 하드디스크 및 저장 전자정보에 관한 지배 및 관리처분권을 포기하거나 김경록에게 양도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 김경록은 하드디스크에 대한 현실적 지배와 전자정보에 관한 전속적 관리처분권을 사실상 보유·행사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따라서 증거은닉범행의 피의자이면서 임의제출자이기도 한 김경록에게 참여의 기회를 부여한 것으로 충분하고, 정경심 등은 증거은닉을 교사하면서 하드디스크의 지배·관리 및 전자정보에 관한 관리처분권을 사실상 포기하거나 김경록에게 양도한 것으로 볼 수 있어서 실질적 피압수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워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은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
(2) 반대의견(대법관 3인) : 나머지 대법관 1인은 피고인과의 공동저술을 이유로 회피
본범이 증거은닉범에게 증거은닉을 교사하면서 정보저장매체를 교부한 경우에 그 전자정보에 관한 관리처분권을 확정적으로 완전히 포기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와 같은 교부사실만으로 본범이 전자정보에 관한 관리처분권을 양도·포기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증거은닉한 김경록의 임의제출 당시나 이와 근접한 시기까지 정경심 등은 하드디스크를 현실적으로 또는 김경록을 매개로 지배·관리하면서 그에 저장된 전자정보에 관한 법익 귀속 주체로서 전속적 관리처분권을 여전히 보유·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정경심 등은 그 전자정보에 대한 실질적 피압수자에 해당하므로 참여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2. 선행사건에서 삭제·폐기하지 않은 무관정보의 증거능력
(대법원 2023.6.1.선고 2018도19782 판결)
가. 사 안
(1) 구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 수사관은 공소외 1이 해외 방위산업체 컨설턴트 및 무역대리점 업무를 하면서 방위사업청 등이 발주하는 방위력개선사업과 관련한 군사기밀을 탐지․수집․누설하였다는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던 중, 2014.6.9.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로부터 공소외 1 등 6명의 신체, 사무실, 주거지 등에 대해 압수․수색․검증영장(이하 ‘제1영장’)을 발부받았다.
제1영장의 압수할 물건에는 위 군사기밀과 관련한 군 관련 자료, 이를 파일 형태로 담고 있는 컴퓨터, 노트북, 외장형 하드디스크, USB, CD, DVD, 휴대전화 등 정보저장매체와 그 정보저장매체에 수록된 내용, 수첩, 노트 등 범죄사실과 관련된 문서자료 등이 포함되었다.
제1영장의 압수 대상 및 방법에 관해서는 혐의사실과 관련된 전자정보만을 ① 문서로 출력하거나 ② 수사기관이 휴대한 저장매체에 복사하는 방법을 원칙으로 하되, 이러한 압수 집행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 ③ 저장매체 전부를 하드카피․이미징하는 방식으로 복제할 수 있고, ④ 집행 현장에서 복제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는 저장매체의 원본을 봉인, 반출한 뒤 복제작업을 마치고 지체없이 반환하도록 하며, 복제한 저장매체에서 혐의사실과 관련된 전자정보만을 출력, 복사해야 하고, 위와 같은 증거물 수집이 완료되고 복제한 저장매체를 보전할 필요성이 소멸된 후에는 혐의사실과 관련없는 전자정보를 지체없이 삭제․폐기하도록 하는 제한사항이 존재하였다.
(2) 기무사 수사관은 2014.6.10. 제1영장을 집행하면서, 공소외 1의 주거지에 있던 공소외 1의 노트북, 메모리카드, 외장형 하드디스크 전부를 모두 이미징하는 방법으로 복제하여 ‘삼성 노트북 이미지’, ‘Transcend Flash 메모리 이미지’, ‘Micro SD Flash 메모리 이미지’, ‘Seagate 외장형 HDD 이미지 파일’ 등(이하 ‘이미징 사본’)을 생성하였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는 2014.7.경 공소외 1을 군사기밀보호법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하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5.1.8. 공소외 1이 ‘특수전지원함/특수침투정’, ‘GPS 화물낙하산’, ‘소형무장헬기’, ‘고공침투장비’, ‘기상레이더 2차’ 사업 등과 관련한 군사기밀을 탐지․수집 및 누설하였다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여 공소외 1에 대해 징역 4년을 선고하고, 압수된 이미징 사본 중 일부를 몰수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공소외 1과 검사는 위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 상고하였으나, 공소외 1의 일부 뇌물공여의 점이 추가로 유죄로 인정된 것 이외에 위 군사기밀 탐지․수집 및 누설에 관한 유죄 부분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위 판결은 2015.9.24. 대법원의 상고기각판결로 확정되었다(이하 공소외 1에 대한 위 형사사건을 ‘선행사건’).
(3) 기무사 수사관은 2016.7.경 군 내부 실무자가 공소외 1에게 ‘소형무장헬기’ 사업과 관련한 군사기밀을 누설하였을 가능성을 확인하고, 2016.7.19.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보관되어 있던 선행사건의 기록과 압수물을 대출받았다.
기무사 수사관은 2016.7.21.경 압수물 중 이미징 사본에 대한 분석(이하 ‘1차 탐색’)을 하고, 이를 기초로 피고인이 공소외 1에게 ‘소형무장헬기’ 사업 등과 관련한 군사기밀을 누설하였다는 혐의로 피고인에 대한 내사를 개시하였다.
기무사 수사관은 2016.8.2.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군판사로부터 피고인이 ‘특수전지원함/특수침투정’, ‘소형무장헬기’, ‘기상레이더 2차’ 사업과 관련한 군사기밀을 누설하였다는 범죄사실에 관한 증거자료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등의 사유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보관된 선행사건의 압수물 중 위 사업 관련 군사기밀 및 군 관련 자료, 범죄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 등에 관한 압수․수색․검증영장(이하 ‘제2영장’)을 발부받았다.
기무사 수사관은 2016.8.4.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증거과 직원 공소외 2의 참여 하에 제2영장을 집행하여, 그곳에 보관되어 있던 선행사건 압수물인 이미징 사본에서 공소외 1의 이메일 기록을 추출하여 압수하였다.
나. 판결요지
(1) 수사기관의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은 원칙적으로 ① 영장 발부의 사유로 된 범죄혐의사실과 관련된 부분만을 문서 출력물로 수집하거나 ② 수사기관이 휴대한 저장매체에 해당 파일을 복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수사기관이 ③ 저장매체 자체를 직접 반출하거나 ④ 그 저장매체에 들어 있는 전자파일 전부를 하드카피나 이미징 등 형태(이하 ‘복제본’)로 수사기관 사무실 등 외부에 반출하는 방식으로 압수․수색하는 것은 현장의 사정이나 전자정보의 대량성으로 인해 관련 정보 획득에 긴 시간이 소요되거나 전문 인력에 의한 기술적 조치가 필요한 경우 등 범위를 정해 출력 또는 복제하는 방법이 불가능하거나 압수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현저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때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을 뿐이다.4)
수사기관은 복제본에 담긴 전자정보를 탐색하여 혐의사실과 관련된 정보(이하 ‘유관정보’)를 선별하여 출력하거나 다른 저장매체에 저장하는 등으로 압수를 완료하면 혐의사실과 관련없는 전자정보(이하 ‘무관정보’)를 삭제․폐기해야 한다. 수사기관이 새로운 범죄 혐의의 수사를 위해 무관정보가 남아있는 복제본을 열람하는 것은 압수․수색영장으로 압수되지 않은 전자정보를 영장없이 수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복제본은 더 이상 수사기관의 탐색, 복제 또는 출력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수사기관은 새로운 범죄 혐의의 수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도 유관정보만을 출력하거나 복제한 기존 압수․수색의 결과물을 열람할 수 있을 뿐이다.
(2) 기무사는 1차 탐색 당시 제1영장 기재 혐의사실과 관련된 정보와 무관정보가 뒤섞여 있는 이미징 사본을 탐색대상으로 삼았다. 무관정보는 제1영장으로 적법하게 압수되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참여권 보장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징 사본의 내용을 탐색하거나 출력한 행위는 위법하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수집한 전자정보 등 2차적 증거는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하여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 공소외 1이 선행사건 수사 당시 이미징 사본에 관한 소유권을 포기하였다거나, Ⓑ 제2영장을 발부받았다는 등 군검사가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사유만으로는 위법수집증거라도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압수 절차나 압수물의 증거능력, 위법수집증거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5)
각주)-----------------
4) 대법원 2015.7.16.자 2011모1839 전원합의체 결정 등 참고.
5) 대법원 2023.10.18.선고 2023도8752 판결,「수사기관은 하드카피나 이미징 등(이하 ‘복제본’)에 담긴 전자정보를 탐색하여 혐의사실과 관련된 정보(이하 ‘유관정보’)를 선별하여 출력하거나 다른 저장매체에 저장하는 등으로 압수를 완료하면 혐의사실과 관련 없는 전자정보(이하 ‘무관정보’)를 삭제·폐기해야 한다. 수사기관이 새로운 범죄 혐의의 수사를 위해 무관정보가 남아 있는 복제본을 열람하는 것은 압수수색영장으로 압수되지 않은 전자정보를 영장 없이 수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복제본은 더 이상 수사기관의 탐색, 복제 또는 출력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수사기관은 새로운 범죄 혐의의 수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도 기존 압수수색 과정에서 출력하거나 복제한 유관정보의 결과물을 열람할 수 있을 뿐이다.」
> 다음 호에 계속
■ 이창현 교수는...
연세대 법대 졸업, 서울북부·제천·부산·수원지검 검사
법무법인 세인 대표변호사
이용호 게이트 특검 특별수사관, 아주대 법대 교수, 사법연수원 외래교수(형사변호사실무), 사법시험 및 변호사시험 시험위원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