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 변호사의 논 세퀴터(21)-소와 비둘기를 키우는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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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 변호사의 논 세퀴터(21)-소와 비둘기를 키우는 나날
  • 박준연
  • 승인 2023.12.29 10: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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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박준연 미국변호사

우리나라를 떠나서 일하고 생활하다 보니 새로운 우리말 표현을 접하는 것도 조금씩 늦는 편이다. 비교적 최근에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표현을 처음 접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이 표현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지만, 대부분 사람이 하기 싫어하나 누가 해도 꼭 해야 하는 업무를 지칭하는 의미로 특히 자주 쓰이는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표현과 겹쳐서 떠오르는 일화도 하나 있다.

학부생 시절 도쿄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두 학기를 보냈다. 커리큘럼과 수업 내용도 다채로웠지만 같은 교환학생들끼리, 또 일본 학생들과 교류할 기회도 풍부했던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외국에 가본 경험이 없는 내가 외국에서 자격증을 따고 또 다른 외국에서 일하는 것도 이때의 경험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교환학생 동기들, 그리고 일본 대학생들과 참석한 도쿄 내 시타마치 필드 트립에서 처음 만난 도쿄대 신입생과 이동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이 도쿄대학 마술부 소속이라면서 이동 중간중간에 가지고 있던 문고본 책을 이용해서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은 간단한 마술을 보여주었다.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마술부실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마술부 방에는 온갖 물건이 있어서 복잡해. 그리고 비둘기도 키워. 마술에서 등장하는 비둘기들은 여기서 키우는 거야.”

이 짧은 대화를 나는 그 이후 두고두고 생각하고 또 이야기해왔다. 멋있고 또 대단해 보이는 사람, 성과물의 이면에는 평범하고 진부한 일상의 성실한 축적이 있다는 교훈을 되새겨왔다. 그리고 이 비둘기를 키운다는 이야기는 소를 키운다는 표현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무대에서 짠! 하고 비둘기가 나타나기까지 마술부 소속 학생들이 당번을 정해서 그 비둘기에게 밥을 주고 돌봐주는 광경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변호사의 “소 키우기”는 영어로 하면 로이어링(lawyering)이 될 것 같다. 일차적인 사전적 의미로는 변호사로서 하는 모든 일을 가리키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는 법률가로서의 스킬을 발휘하여야 하는 구체적인 과업을 지칭하므로 이것이 바로 소 키우기가 아닐까 싶다. 한편 변호사로서 연차가 쌓이면서 부지런하게 매일 소를 키울 뿐만 아니고, 소를 키우는 큰 그림이나 방향성을 고민할 필요가 생긴다. 특히 시니어가 되면서 ‘소 키우는 방향’을 적절하게 설정하는 능력은 점점 중요성이 커지게 된다.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들은 이 두 종료의 업무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았다. 업무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지시하면서 필요에 따라선 증거자료도 꼼꼼하게 검토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2023년은 마음 아프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업무적으로는 성실하게 소와 비둘기를 키웠다고 자평할 수 있는 한 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일본과 관련된 업무 외에도 인도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처럼 평소에 관련 업무 경험이 없는 지역과 관련된 일을 포함해서, 20건 가까이 마무리한 한해였다. 업무 내용도 다양해서, 지금껏 많이 해서 익숙하고 편한 영역(comfort zone) 밖의 업무를 경험할 몇몇 기회도 있었다. 내년 2024년의 포부라면 조금 더 소 키우기의 지평을 확대하는 것, 지금까지 키워본 적이 없는 종류의 소를 키우고, 그 방향성을 더욱 깊이 고민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 혼자의 노력과 지식, 경험도 중요하지만, 팀워크 역시 중요함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 자신과 독자분들의 내년 소 (비둘기) 키우기에도 행운과 건투를 바라며….

박준연 미국변호사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에 수석 합격했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 ‘Latham & Watkins’ 도쿄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아태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글로벌 로펌인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스’ 도쿄 오피스에서 근무 중이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hs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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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ㅁ 2024-01-04 14:58:00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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