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브엘만데브 해협이 연일 기사에 오르고 있다. 수에즈운하와 비교하면 우리에게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해협이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기에 주로 신문기사는 ‘홍해’로 나온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홍해와 인도양을 연결하는 해협이다. 해협의 오른쪽에는 예멘이 있고 해협의 왼쪽에는 에리트레아와 지부티가 있다. 남쪽에 해적으로 악명높은 소말리아가 있다. 이 해협을 거쳐 위로 올라가면 지중해와 연결되는 수에즈운하가 나온다. 즉 수에즈운하와 연결된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거치는 물동량은 전세계 컨테이너를 기준으로 30%와 물동량 기준으로는 12%를 차지한다. 1년에 2만 척에 가까운 배들이 이 해협을 지난다. 말 그대로 전지구적 급소(Global choke point)다.

이 급소가 얼마나 우리 삶에 현실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2021년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에 400ｍ 길이의 파나마 선박인 에버 기븐(Ever Given) 호가 수에즈운하를 막아버렸다. 3월 23일의 사고는 3월 29일이 되어서야 수습됐다. 이로 인해 세계 물류의 12%가 정지됐다. 이 뉴스가 나올 때만 해도 물류비용이 증대하겠다고 생각했던 이 사건은 그해 여름 맥도날드의 감자 수입 차질로 이어졌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은 이 급소에 다시 한번 지정학 위험을 만들고 있다. 예멘 내전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은 시아파조직인 후티 반군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면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중동지역 남부의 예멘에서 이스라엘까지는 1,600km가 넘기 때문에 효과적인 공격이 어렵다. 그러자 이들은 이스라엘로 향하는 선박을 공격한다는 명목으로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항행하는 선박에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하고 있다.

지정학 위험은 글로벌 해운업계의 10위 기업 중 9개의 기업이 홍해에서 수에즈운하를 이용하는 노선을 포기하게 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항로를 희망봉 우회 노선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러면 10일에서 2주 정도 항행하는 기간이 늘어난다. 해운업계의 뉴스에 따르면 실제 중국 상하이에서 영국 해안까지 가는 40피트를 기준으로 하는 컨테이너 운임은 개당 2,400달러에서 1만 달러로 올랐다고 한다. 인도에서 미국 동부까지 가는 해상운임도 동일 기준으로 2,000달러에서 7,000달러가 되었다. 항해에 필요한 기름과 보험료 등의 상승에 따른 운임의 상승에 더해 식품의 경우 항해 기간 지연으로 부패하는 문제도 생긴다. 결국, 물류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멘 반군이 만든 위험을 통제하기 위해 부랴부랴 미국은 다국적 함대를 구성했다.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우방국이 지원하는 다국적 함대의 구성으로 안보 위험이 줄자 세계 2위 해운사인 머스크(MAERSK)가 다시 홍해 항로 이용을 재개하기로 했다. 그래도 지정학 위험은 여전하다.

우선 예멘 반군이 미사일과 드론을 이용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을 것이다. 예멘 반군은 예멘 내전 동안 이란의 지원을 받아 무장했고, 현재 예멘의 국방부를 장악할 정도로 막강해졌다. 따라서 자신의 국내적 지지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강경정책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또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 중동 전체에서 시아파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다. 이란이 큰 형님으로 이 상황을 지원하고 있으므로 상황도 후티 반군에게 유리하다. 마지막으로 후티 반군이 사용하는 드론은 260만 원에 불과하지만, 미국이 이를 격추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 미사일은 26억 원이다. 장기전에 누가 웃을지 명확하다.

지정학 위험을 강화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파나마 운하가 갈수기다. 수심이 낮아지면서 선박들의 파나마 운하 대기 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부산에서 미국 동부 조지아주 서배너 항까지 가는데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면 30일이 걸린다. 그런데 수에즈운하를 거쳐 가면 40일이 걸린다. 수에즈운하를 사용하지 못하고 희망봉을 돌아서 가면 기간은 50일로 는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후티 반군의 인위적 위협에 더해 계절적인 위험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한국은 2020년 기준 경제 전체에서 무역의존도가 60%가 넘는다. 그런데 2017년 기준 운송화물의 0.3%만이 항공을 이용했고 99.7%를 해운이 점유하고 있다. 해운에 따른 물류비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와 멀리 떨어져 보이는 지역에서의 분쟁은 전부 우리와 관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정학이 그저 먼 발치에 있는 흥미로운 주제만은 아니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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