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도나 노비스 파쳄(Dona nobis pac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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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도나 노비스 파쳄(Dona nobis pacem)
  • 최용성
  • 승인 2023.09.0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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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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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즐겨 듣는 클래식 음악은 우리 역사나 현실의 맥락에서 생겨나지 않은, 서양 작곡가들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명곡은 국경과 관습, 시대를 넘어 지금 이곳에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고 인간성을 고양한다. 아무리 오래전에 먼 나라에서 작곡된 곡이어도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이 음악의 보편적 힘이다. 척박한 시절 정경화가 바이올린으로 한국인의 예술혼을 보여준 이래 한국인 가운데 세계적인 연주자와 지휘자가 나왔고, 연주자들이나 연주단체의 실력이 두드러지게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각종 국제 콩쿠르를 휩쓸며 케이팝 열풍 못지않은 케이 클래식 바람이 불고 있다고들 한다. 조성진이나 임윤찬의 연주회는 예매를 시작한 지 단 몇 초 안에 좌석이 매진될 정도이다. 그럼 케이 클래식의 앞날은 밝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스타 연주자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하거나 클래식을 누리는 사람들이 전체 음악 소비 인구의 극소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저변이 약하다는 것은 굳이 거론하지 말자. 어차피 클래식 음악의 원산지인 서양에서도 대중적 영향력은 현저히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케이 클래식에는 한국 창작 음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한국 연주자들이 아무리 훌륭히 성장해도 한국 창작 음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진정한 케이 클래식은 생겨날 수 없다. 음악은 만국 공통의 언어이고 명곡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인류 보편의 유산이기는 하지만, 연주자의 활동이 국가적 정체성을 가진 문화현상이 되느냐 마느냐 관건은 자국 창작 음악을 얼마나 세상에 알리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 연주자가 훌륭한 연주자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와는 관계없다. 한국 연주자들의 연주 활동이 한국 클래식이라는 독자적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으려면 그 바탕에 한국 창작 음악이 존재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케이팝을 생각해보자. 케이팝의 열풍은 대중음악 작곡가와 작사가들의 창작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 대중음악 가수들은 서양 대중음악을 불러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대중음악계에서는 작곡가를 주역으로 부상시키지 않는 편이지만, 한국 대중음악의 번영에는 이영훈이나 윤상, 신중현, 이봉조, 길옥윤 등등의 스타 작곡가들의 작품들이 늘 뒷받침하고 있다. 이처럼 뛰어난 작곡가들이 만든 음악이 스타 연주자들을 통하여 공연되고 녹음되면서 케이팝은 한국 대중음악이라는 특수한 지역 문화적 의미와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보편적인 세계 문화적 의미를 동시에 획득하게 된다. 대부분의 케이팝 음악에는 한국 전통음악의 요소가 거의 없고 역사적으로는 절맥(絶脈)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케이팝이 우리 시대 대중들과 희로애락을 공유하며 호흡하고 있는 이상 이것은 분명 한국의 음악이다.

불행히도 케이 클래식에서는 이런 장면을 보기 어렵다. 간혹 윤이상처럼 독일을 중심으로 현대음악 영역에서 주목받는 작곡가들이 있지만, 클래식 애호가들이 사랑하기에는 난해한 편이고, 연주자들의 헌신을 끌어내는 데에 성공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 클래식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정착되려면 좋은 연주자와 좋은 창작곡이 일상적으로 만나고 그것이 되풀이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원래 한국 클래식 창작 음악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서양의 국민악파처럼, 서양음악 수용 당시 아직 대중들에게 사랑받던 한국 전통음악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며 대중에게 스며드는 작업이 선행되는 것이 바람직하였다. 그 작업에 성공하였다면 역사의 절맥 없이, 우리도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나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같이 온 국민이 사랑하는 걸작을 가졌을 것이고, 그것을 뿌리 삼아 다양한 갈래로 창작 음악이 발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점에서 한국 전통의 맥락을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독창적이고 현대적인 화성과 멜로디, 리듬으로 시어를 아름답게 풀어낸 김순남이라는 천재가 등장한 것은 한국음악사의 축복이었다. 그러나 이념 갈등과 전쟁, 냉전의 고착화는 그 축복을 비극으로 바꿔놓았고 김순남은 양 체제로부터 금기시되었다.

절맥된 민족음악 전통을 세우려는 노력은 거의 없이, 한국 작곡 교육의 주류가 쇤베르크 이후 독일 음악계를 장악한 무조, 음렬주의 등의 모더니즘 음악에 기울면서, 한국의 창작 클래식 음악은 상아탑에 갇혀 청중과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소명 의식을 지닌 작곡가들은 당대의 청중들과 소통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창작을 계속했다. 그중에 작곡가 김진수(숙명여대 교수)가 있다. 그의 합창음악 <도나 노비스 파쳄>(Dona nobis pacem)을 들어보시라(https://www.youtube.com/watch?v=2Ulb_RZtiiQ). 한 음 한 음 작은 존재들이 모여 큰 구조물을 쌓아 절정에 이르는 순간 다시 작은 하나의 존재로 되돌아오며 절대 평온의 아름다움에 이르는 이 걸작을 통하여, 작곡가는 평화와 안전, 인간의 존엄을 잃어가는 불안의 시대에 불행에 지치고 세상에 절망한 이들을 깊이 위로하면서 동시대인으로서 평화를 갈구함과 동시에 한국 창작 음악이 가야 할 길을 감동적으로 웅변한다. 이런 창작곡에 연주자와 청중이 끊임없이 응답할 때 진정 케이 클래식의 전성기는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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