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0여년간 법조인력선발 및 양성의 근간을 맡아왔던 사법시험이 2017년 12월을 끝으로 폐지됐다. 평균 경쟁률 20대 1, 평균 합격률 3~5%라는 일회성 시험에 의한 선발을 지양해 고시낭인 및 다른 학부전공의 황폐화를 방지하고 교육에 의한 양성이라는 기치아래 2009년 3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출범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로스쿨제도를 두고 고비용, 입시 불공정 등에 문제가 많다며 사법시험 존치 또는 예비시험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반면 이미 사법시험은 역사적 소명을 다했고 입법부가 새로운 제도를 정립한 만큼 더 이상의 사시존치 주장은 없어야 하며, 로스쿨에 문제점이 있다면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데 사회적 힘을 모아야 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전자의 입장에서, 그동안 익명으로 사법시험 존치 운동을 해 왔다는 한 수험생이 ‘기회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본지에 “사법시험 존치와 유리천정”이라는 글을 지난 아홉 번에 걸쳐 보내온 바 있다. 그가 실명을 밝히며 열 번째 글을 보내왔다. 내용 전문(全文)을 게재한다. 본지는 이에 대한 반박 또는 이해를 달리하는 독자투고도 열려 있음을 재차 밝힌다. - 편집자 주 -
조용호
(직장인, 전 사법시험 준비생)
1. 프롤로그
우둔함에도 우여곡절 끝에 사법시험 2차시험 응시 기회를 얻어 후4법(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상법, 행정법)이라도 치열하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감사한 일이다. 어쭙잖은 실력으로 2차시험을 처음 치르고 나와서 ‘초시(初試, 사법시험 1차를 합격해 2차시험을 처음 응시하는 것을 일컫는 은어)’에 생동차합격(처음 합격한 1차시험에 이어 2차시험을 그 해에 동시에 합격하는 것을 일컫는 은어)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했던 망상은 7과목 전과목 과락(100점 만점에 40점을 득하지 못하는 것) 성적표를 받아들고 산산조각이 됐었다. 짧지 않은 시간 사법시험을 공부했었고, 사법시험존치운동자로서 처음에는 로스쿨을 안 가겠다고 호기롭게 얘기하다가, 후에 현실에 타협해 로스쿨 진학을 시도했으나 로스쿨 입시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었던 사람으로서 사법시험존치를 주장하는 쪽에서 주장하는 ‘계층이동의 사다리’라는 공정 프레임에 대해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팩트 체크 해보려고 한다.
2. 평범한 수험생이 돈 없으면 공부하기 힘든 것은 매한가지
(1) 최상위 우수인재에게는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로스쿨에서도 작동
서울소재 로스쿨 인가 대학에서 전액장학금을 받았던 필자도 사법시험을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평균에도 끼기 어려운 평범한 수험생이었다. 전국 단위로 보면 지금은 없어진 서울대 법학과 출신 학생들 중에서도 범접하기 어려운 똑똑한 수험생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울대 뿐 아니라 대학입시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 4년 전액장학금과 생활비를 주는 대학교에 입학했었던 최상위 인재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대학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노장수험생들을 허탈하게 만들었었다. 사법시험이 없어졌더라도 최상위 우수인재는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고 이들에게는 대학 4년과 로스쿨 3년의 7년 과정이 거추장스럽다. 또 이들에게는 검사 임용, 로클럭, 대형 로펌에의 입사 기회가 활짝 열려있다.
자본주의 사회인만큼 ‘계층’은 가정의 경제력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으로 나눌 수 있을듯하다.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법조인을 소수로 선발할 경우 평범한 학생들이 법조인이 되고 싶은 경우에 유효하다. 사법시험으로 300명 이하의 소수인원을 선발할 당시에는 사법시험 합격이 계층이동과 등치될법했지만 1년에 1,600여명이 쏟아지는 현재의 로스쿨 제도에서 평범한 학생들은 로스쿨을 졸업하더라도 변호사로서 큰돈을 벌기가 녹록지 않다.
(2) 돈 없으면 공부하기 어려운 것은 어떤 제도 하에서도 마찬가지
필자도 부끄럽지만 적지 않은 나이까지 부모님의 용돈을 받아 생활했다. 집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기에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도 공부할 수 있었다. 사법시험이 있었을 당시에 학원 강의 수강이 편하고 동선이 짧은 고시촌에 거주했는데 월 최소 100만원은 족히 들었다. 방값, 학원비, 식비, 책값 등이 적잖이 들어갔다. 주위에 형편이 어려운 수험생들은 학원, 독서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수험생활을 이어갔었다. 그 보다 형편이 나은 대부분의 중산층 학생들은 가족들이 암묵적으로 허락한 취업 가능한 나이까지 합격하지 못하면 고시를 접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었다. 요컨대 사법시험 시절에도 경제적으로 풍요한 수험생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에 있었음은 불문가지다.
로스쿨의 등록금(교육부의 2022 예산안 사업설명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1년 전국 25개 로스쿨의 등록금은 평균 1천425만원)이 비싼 것은 맞다. 그러나 전술한 것처럼 최상위 학생들은 어차피 장학금을 받고 다니고, 취약계층에 대한 로스쿨 지원도 적잖다. 그러나 등록금이 수험에 필요한 비용의 전부는 아니다. 이를 의식한 듯 법무부는 특별전형 학생들의 변시 합격률을 합격자 발표 시 내놓는 통계자료에서 공개하지 않고 있고, 각 로스쿨도 비공식적으로만 특별전형생들의 합격률이 일반전형생들에 비해 현저히 낮음을 인정하고 있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32811293199510)
(3) 사법시험 부활의 명분은 ‘법조인이 되기 위한 다양한 선택지’, ‘무한경쟁’
현재 변호사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로스쿨을 졸업해야만 한다. 그런데 로스쿨 입학에 필요한 법학적성시험(LEET‧리트)은 영미법과 달리 대륙법계를 채택한 대한민국에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2017년 로스쿨 입시를 준비할 당시에 법학적성시험을 공부하며 익명의 독자투고를 했었다. 법학적성시험이 법조인이 될 자질이 있는지 ‘감별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금과옥조’로 여기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590&replyAll=&reply_sc_order_by=C)
특히 시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느라 독서를 할 기회가 많지 않은 배경을 가진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법학적성시험의 문턱은 매우 높았고, 법조인이 되기 위해 로스쿨 입학을 엄두 내기가 쉽지 않았다.
사법시험 부활의 명분은 ‘로스쿨’ 뿐 아니라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조그마한 쪽문’을 하나 더 만들어주는 것일 것이다. 로스쿨을 졸업했지만 변호사시험에 낙방해 응시할 기회를 박탈당한 ‘오탈자’, 로스쿨 3년 뿐 아니라 대학 4년도 거추장스러운 소년등과 할 역량이 있는 최우수인재, 법학적성시험의 벽을 넘지 못해 로스쿨 입학을 포기한 법조인지망생들의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선택지로서 사법시험 부활은 필요하다.
2009년 도입된 로스쿨은 자리를 잡는 것을 넘어서 하나의 권력이 되어가고 있다. ‘로스쿨출신법조인’들이 ‘머릿수’를 바탕으로 카르텔을 형성해 법조인이 될 수 있는 문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를 할 개연성도 높다. 만약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입구를 막은 채 로스쿨을 통해 법조인이 된 그들의 기득권 공고화에만 함몰된다면, 법치주의는 위협받고 국민들은 ‘저질’ 법률서비스를 공급받게 될 것이다.
3. 에필로그
법학과를 졸업한 마지막 7학기에 사법시험 도전을 결심해 사법시험 수험생으로서 8년여의 시간을 보냈고, 2016년 2월 마지막 사법시험 1차 시험에 낙방한 이후 3년의 시간을 방황하며 사법시험 존치운동을 했었다. 2008년 8월 법학과를 7학기만에 조기수석졸업했다는 자부심은 사법시험 1차 시험이 8지선다로 바뀐 이후 첫 모의고사를 보면서 처참히 무너졌었다. 70분간 40문제를 열심히 풀었는데도 100점 만점 시험에서 확률 점수인 12.5점에 근접하는 점수를 받은 시험지를 채점하는 일은 자존심을 구기기에 충분했었다.
고시반에 입반했을 때 모의고사 성적순대로 전체성적표를 개시해 놓은 출입문을 지나가는 것은 밥맛이 뚝 떨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었다. 살면서 정답을 맞춘 문항을 합산하는 것이 빠른 시험을 치른 적이 많지는 않았기에 고집스럽게 틀린 문항을 합산하며, 언젠가는 틀린 문항이 몇 개 안되는 합격권의 점수를 얻지 않을까하는 소박한 꿈을 가지며 공부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묵묵히 공부해 합격해나가는 선후배들을 보며, 나도 합격할 수 있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조용호 (직장인, 전 사법시험 준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