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안철수 후보 ‘사시 부활’…윤석열 “로스쿨 보완”
한법협 “고시제도는 퇴행적…로스쿨, 취약계층에 유리”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이재명, 안철수 대선후보 등이 사법시험을 일부 부활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법조인협회가 “고시는 퇴행적 제도”라며 나아가 고시제도와 유사한 형태로 합격자를 결정하는 유사법조직역 시험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사법시험 부활 문제가 제20대 대선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달 31일 SNS를 통해 사법시험 제도 부활을 공식화하는 글을 게시했다. 이는 청년을 위한 공정 정책의 일환으로 사법시험 부활, 대입 정시 확대, 공정 채용 등을 통해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성남시장 재임 시절부터 꾸준히 사법시험 존치 내지 부활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제시해왔다.
같은 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안양소방서를 방문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데 기존에 있는 제도와 잘 설계를 해야 되는 거지, 사시 부활 이렇게만 해서 될 문제는 좀 아니라고 본다”며 사법시험 부활과 관련해 기존의 부정적 견해를 유지했다. 공정한 기회의 보장은 현행 로스쿨 제도의 개선 및 보완으로 가능하다는 의견으로 풀이된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사시부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안 후보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사법시험 부활과 대학 수시 및 의학전문대학원 폐지 등을 공약으로 제시하는 등 “개천에서 용나는 사회”를 만드는 주요 방안으로 사법시험의 재도입을 약속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사법시험 부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로스쿨 출신 청년변호사들로 구성된 단체인 한국법조인협회(회장 김기원)는 3일 “지금은 시대착오적 고시제도 부활이 아니라 오히려 유사법조직역 선발시험 등 아직 남아있는 고시형태의 제도를 완전히 폐지할 시점”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법시험 부활을 반대하는 것에서 나아가 세무사, 변리사, 공인회계사, 법무사, 공인노무사 등 자격시험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한법협은 그 근거로 “학원과 독서실에서 한 줌의 수험서만 보도록 유인하고 소수의 합격자 이외에는 모두 낙오시키는 방식은 현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고시제도에 대응해 한법협은 “전통적 공교육”의 가치를 내세우며 “로스쿨은 특수한 제3의 제도가 아니라 전통적 공교육 제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공교육제도는 모든 사회구성원의 이익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설계돼 있다”며 “대학 입시는 누구나 명문대를 목표로 하더라도 다수의 낭인과 낙오자가 생겨나지 않는다. 목표와 무관하게 실제 성과에 맞춰 지원함으로써 대량의 낙오자 없이 다양한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로스쿨도 내심의 목표와 관계없이 실제 스펙에 맞춰 다양한 진로를 대량의 낙오자 없이 분배할 수 있도록 구성된 합리적이고 전통적인 공교육 제도라는 게 한법협의 생각이다.
이에 반해 고시제도는 획일적 수험공부만을 요구하고 공정성을 방패로 사회구성원을 방치하는 제도, 즉 “소수의 합격자를 선발하고 나머지를 버리면 ‘간편하고 공정’하다는 행정편의주의에 의해 생겨난 제도”라고 비판했다.
특히 로스쿨에 진학하지 않고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제도로 병행되고 있는 일본의 예비시험에 대해 “젊은 명문대 출신 학생들의 잔치가 됐다”고 부정적인 인식을 보였다. 한법협은 “고졸자에게 기회를 주려면 로스쿨을 학사·학석사연계과정으로 운영하면 될 일”이라며 “고졸자를 방패삼아 소수의 엘리트들을 위한 고시제도를 부활시킬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 로스쿨이 사법시험보다 경제적 취약계층이나 정규 대학교를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보다 유리한 제도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로스쿨은 전체 학생의 약 70%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2021년 기준 164명을 특별전형으로 선발하는 등 취약계층을 배려하고 있다는 것. 사법시험의 경우 2005년부터 2016년까지 고졸 합격자가 6명이었지만 2009년부터 2016년까지의 로스쿨 입학자 중에는 학점은행제, 독학사, 방통대 등을 통해 73명이 입학한 점도 언급했다.
대입 전형과 관련해 고시제도는 정시, 로스쿨은 수시와 비슷한 유형으로 보는 인식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로스쿨 입시가 응시자의 역량을 종합평가 한다는 점에서 수시전형과 유사하다는 점은 인정했으나 고시제도는 정시전형과 다르다는 게 한법협의 주장이다.
한법협은 “정시전형이라고 해서 의대에서 의학지식을, 사관학교에서 군사학 지식을 묻지는 않는다. 로스쿨에 정시전형을 만든다면 스펙 등의 정성평가 없이 법학적성시험만으로 입학자를 선발하는 제도가 될 것”이라며 “정성평가가 없는 입시제도가 필요하다면 로스쿨에도 정시전형을 도입해야 한다. 고시제도를 부활시킬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이유로 한법협은 “이제는 인공지능 시대, 격변하는 사회 현실에서 필요한 문제해결 능력을 계발하도록 유인하는 제도를 고민해야 한다. 22세기까지도 쓰일만한 공교육 제도의 구조적 혁신과 로스쿨의 점진적 개선을 논의할 때”라며 “공정한 경쟁이라는 가치와 새로운 시대의 교육제도라는 두 가치를 조화시킬 방안을 찾기 위한 공교육의 개선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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