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정책제안서 하나만으로 평가한 이색채용
월세방 전전한 경험 등으로 청년의 애환을 긁다
[법률저널=김민수 기자] 예나 지금이나 청년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한 가지 중요한 키워드는 ‘공정’이다. 과거 많은 이들이 병역을 기피한 연예인에게 날카로운 평가를 내린 것처럼 현재도 위정자가 자녀를 특혜 채용하는 문제 등 공인의 불공정 행위는 청년들에게 공분을 불러일으킨다.
경기도는 이재명 지사 취임 이후 청년기본소득 등 ‘청년의,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 각종 청년정책을 펼쳐 나가고 있다. 혹자는 ‘왜 청년만 이러한 혜택을 받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과거 아동, 여성에 대한 정책이 미약했던 것처럼 청년을 위한 정책도 너무 당연히 생각했던 탓에 조명 받지 않았을 뿐이다.
지난 9월 경기도는 이러한 청년정책의 일환으로 스펙을 따지지 않고 전국 최초로 5급 상당 청년비서관을 뽑겠다고 밝혀 많은 이들로부터 관심을 받았다. 특히 많은 기관이 어학성적, 자기소개서 등 기본적 사항들을 필수로 물어보지만 경기도는 스펙과 관련한 일체의 서류도 받지 않고 오로지 ‘정책제안서’ 하나만으로 평가하겠다고 했다.
그 결과 106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기록했다. 모경종 청년비서관은 정책제안서 하나로 최종합격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여러 채용기관이 지원자의 개인정보를 묻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으로 전환하는 추세지만 경기도에서 추진한 5급 청년비서관 채용은 내용이 너무 파격적이라 오히려 해당 공고문을 보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모 청년비서관도 지원 당시 다른 사람들처럼 ‘정말 스펙을 따지지 않는가?’라고 잠시 의심했지만 영어 성적 등 내세울만한 스펙이 없음에도 도전해 보고자 하는 열망이 컸다.
그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중 한 명으로서 임용 전까지 좁은 월세방으로 이사를 전전하며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현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얼마나 힘든지를 느끼고 이러한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고 마음 깊이 새겨 왔던 것.
그러다 그는 경기도에서 최초로 스펙을 보지 않고 채용한다는 내용을 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청년의 현실이 얼마나 고달픈지, 청년의 한 사람으로서 목소리를 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원을 했다.
이번 경기도가 5급 상당 별정직을 뽑기 위해 내건 요건은 학력, 경력 등 제한이 없었으며 경기도 청년정책 비전이 있는 자라면 정책제안서 제출을 통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었다. 다만 정책제안서는 A4용지 3매 이내라는 단서조건이 있었기에 그는 정책제안서를 간결하면서도 정수를 담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모경종 청년비서관은 “지금 나 자신의 처지에서 시작해 주변 지인, 나아가 온라인으로 접할 수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로 확장해 나갔다”며 “그들의 목소리를 정리하다 보니 경기도와 청년이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경기청년포털’(가칭) 개설을 통해 청년 정책들이 여기로 홍보되고 피드백 되는 방안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들에게는 일자리와 주거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다. 이 두 가지를 양대 축으로 잡되, 스마트폰 성능이 좋아도 충천을 하지 않으면 쓰지 못하는 것처럼, 청년정책도 재충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됐으면 좋겠다는 취지를 담았다”고 덧붙였다.
△청년포털 △주거 △일자리 외에 그가 제안서에 마지막으로 담은 것은 청년들이 동시에 문화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경기도 지역화폐를 가지고 지역축제, 영화관, 예술문화 행사 등을 가면 할인을 해주는 등 문화장벽을 낮추는 방안을 지원한다면 청년들이 이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담은 정책제안서 내용만 봤을 때 언뜻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내용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과 생각에 그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모 비서관은 정책제안서를 쓸 당시 ‘큰 간격의 그물로 작은 물고기를 잡아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우선순위를 정해 정책을 잘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골자를 잡는데 유효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내용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궤도에 올라와 이미 집행 중이거나 추진 중인 정책이 많아 어려움이 있었고 경기도 청년이라는 감정이입을 한 상태에서 정책을 찾아보자 했지만 역시 중구난방으로 정보가 산재해 있었다”면서 “처음 맥락을 잡을 때 키워드로 삼았던 주거, 일자리 등을 우선순위로 잡고 곁가지를 쳐냈다”고 집약과정을 설명했다.
그 결과 그의 정책제안서가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낙점됐다. 제안서 심사를 통과한 이들은 총 8명이었다. 이후 PPT발표(제한시간 5분) 및 심사위원 7명의 질의응답을 통과해야 최종합격할 수 있는 상황. 여기서 경기도는 공정한 세상이라는 슬로건에 맞게 무작위로 일반청중단 50명을 모집한 뒤 전혀 모르는 상태서 지원자를 심사토록 했다.
모경종 비서관은 “PPT 발표가 정책제안서를 간추리는 과정이어서 PPT가 어떻게 하면 가독성 있을지를 주로 생각했다”면서 “이를 위해 모의연습을 100번 넘게 했는데 친구들을 모아 청중평가단 가상 모의연습을 하면서 지인들한테 예상 질문들을 취합했고, 설명이 잘 안 되는 것들은 보충해 나갔다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 청중평가단은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인원으로 구성됐고, 주로 본인들의 경험을 이입해 여러 질문을 이어나갔다. 가령 “내가 어디 어디 사는데 이런 정책은 힘들지 않겠느냐”라고 물어본 것.
특히 이번 청년비서관 공개채용면접은 유튜브 등에서 실시간 방송됐다. 즉 청중평가단 외에도 온라인 청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경종 비서관을 포함한 8명의 지원자를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모 비서관은 “질문자의 입장에서 대답하려고 애썼다”면서 “그들이 정말 필요하다고 느낀 주거 문제 등을 제안하면서도 청중단들이 하는 말을 다시 마음에 되새기는 게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경기도에서 내건 노(No)스펙(spec) 정말이었을까
모경종 비서관 “학력, 경력 등 일체 기재 없었다”
모 비서관 동료, 현재 어느 학교 나왔는지도 몰라
경기도가 공정한 사회, 청년이 주인공으로 활동하는 사회 등을 내세우며 지자체 최초로 시행한 ‘청년비서관’ 공개채용은 5급 공무원 상당으로 학력이나 경력에 구애받지 않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No)스펙(spec) 전형으로 실시한 것이어서, 청년들이 높은 관심을 보였다.
블라인드 채용이 확산하고 있음에도 많은 채용기관이 성별, 학력, 경력 등을 원서에 작성하도록 하기에 경기도가 시행한 청년비서관 채용도 ‘겉으로만 블라인드일 뿐 실속은 모른다’며 회의적 반응을 보인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불신은 블라인드 채용을 내세우면서도 실제 블라인드로 시행하지 않는 채용관행이 낳은 병폐다. 의심하는 이들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의심하고 회의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당연지사. 그래서, 어쩌면 채용에서의 ‘블라인드’과정과 ‘공정’가치를 경기도가 이번 채용과정을 통해 전국 최초로 제대로 보여준 사례인지도 모른다.
모경종 청년비서관은 현재 경기도청에서 청년정책 수립·시행을 위한 정책결정 보좌, 청년사업 발굴 수행 등 청년정책을 기획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지원할 때도 내세울 만한 스펙이 단 하나도 없었고 지금도 동료들이 저의 나이를 잘 모르고 있다”며 “지방별정직(5급 상당) 지위가 공개채용으로 진행하는 자리가 아닌데도 경기도는 전국 최초로 공개채용했다. 경기도지사의 강한 청년정책 의지가 청년비서관을 뽑는 자리로 이어진 것이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그는 “‘경기도는 새로운 경기, 공정한 세상’이라는 구호에 맞게 청년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 한다.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이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가교를 제공하는 것이 이재명 지사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사례를 보면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 청년이라는 이유로 희생을 당연시 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특히 현재에도 경기도 등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청년정책에 대해 일부는 “왜 하필 청년만 해당하는가”라며 청년정책이 역차별을 조장한다고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도 한다.
모 비서관은 “당장 경기도에서 시행 중인 청년정책에 대해서도 이같은 질문과 우려를 많이 받는다. 심지어 청년들조차도 지자체나 국가에 도움을 안 받아도 된다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면서도 “청년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었다. 과거 청년들은 힘들어도 된다는 기조가 지금까지 이어져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었을 뿐 청년은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때문에 그는 편견을 해소해 나가면서도 그간 소홀히 다뤄진 청년정책을 발굴해 나가는 최전선에 서있다. 경기도는 청년정책의 일환으로 청년기본소득을 시행하고 있지만 만 24세에 해당하는 청년만 받을 수 있어 왜 만 24세인지, 그리고 24세에 해당하지 않는 청년들은 청년이 아닌지 등 많은 의문을 남게 한다.
경기도는 청년기본소득 제도설계 당시 지급대상을 만 24세로 한정했다. 모든 청년에게 지원해주면 좋겠지만 당장 재정적 한계라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고, 여러 법령상의 제한으로 인해 만 24세에게만 자격이 주어졌다.
법령상 가능했던 나이 중에서도 만 24세는 사회진출을 준비하는 연령층이며 노동시장 진입 시까지의 생활지원이 가장 필요한 시기이므로, 준비시간을 최소화해 청년이 공정하고 동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결국 해당 연령에 진입하지 않는 만 23세 이하 청년이라도 만 24세가 되면 사회진출 시 혜택을 받을 수 있음은 물론 만 25세 이상 청년도 행복주택, 경기일자리재단 등 지원을 통해 청년정책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
모경종 청년비서관은 “청년정책은 본인의 꿈을 실현하는데 더 공정한 기회제공과 버팀목이 되어 주자는 취지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특정 정책으로 아쉬움이 남을 수 있지만, 그러한 부분을 보완하면서도 경기 청년들이 정책에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게 청년정책을 총망라한 청년포털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년포털은 오픈마켓에서 특정 필터를 입력하면 원하는 제품을 구매하는 것처럼 청년의 나이, 지역 등을 세부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필터링을 제공하여 청년 맞춤형 혜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도울 예정이다.
모 비서관은 “청년포털과 맞춤형 검색을 준비하고 있다”면서도 “책상에 앉아만 있으면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 청년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현장으로 나갈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연구해 실질적으로 청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들을 지원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실제 공무원과 관련한 정책 중 탁상행정에 그치는 정책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그는 현실과 제도 간 괴리감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국민이 한 단계 향상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고 있다. 물론 이 때문에 잦은 야근은 덤으로 달고 살지만,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공무원을 선택했다는 다짐을 보여주기 위해 행동으로 실천 중이다.
그래서 그가 앞으로 기획해 실제 모습을 보여줄 청년정책들이 기대된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주변인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힘든 시기를 버티게 해준 지인들께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공정한 채용을 통해 중요한 기회, 권한을 부여해준 이재명 경기도 지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비록 저는 106대 1의 경쟁을 했지만, 이 시대의 청년들은 더 높은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청년이라도 덜 좌절하고 덜 상처받는 공정한 세상을 만들도록 미력하지만 노력해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