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저널=김민수 기자] 며칠 전 출근 준비를 했을 때 일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면도하기 위해 뚜껑을 연 순간 면도날에 손이 베이는 참사가 발생했다. 크게 베였기 때문에 물로 씻어도 지혈이 좀처럼 되지 않은 상태서 출근했다.
베이는 것을 방지하고자 만든 면도 뚜껑 덮개가 여는 순간 베일 수 있게끔 설계된 것 자체가 웃픈일(웃기는데 슬픈)이라 생각하며 출근 후 키보드를 치는 찰나, 손에서 느껴지는 따끔함은 ‘오늘 일이 무엇이든 좀 쉬어야겠다’를 연상케 할 정도로 매서웠다.
이를 통해 느낀 것은 지금까지 별것 아니라 너무나 당연히 생각했던 것을, 잃고 나서야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는 것.
‘인생은 공부다’라는 말처럼 책을 펴고 하는 공부뿐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어떤 생각 자체를 듣는 행위 모두가 공부의 연속이다. 다만 공부라는 길 위에서 자주 찾아오는 외로움 또는 고독감은 오히려 처음 먹었던 마음과는 달리 주저앉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외로움은 인생이라는 긴 순간 동안 불현듯 찾아오는 불청객과 같다. 한 번 외로움이 찾아오면 많은 사람 속에서 웃고 떠들더라도 고독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이를테면 추운 북극, 한파가 몰아치는 시베리아 벌판 등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외로움은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장소를 옮기는 행위가 지금의 외로움을 피하기 위한 한 방편일 수 있지만 정작 본인이 원하는 장소로 간다 하여 궁극적 해결책이 그 앞에 놓인 것은 아니다.
사실 누구나 그렇듯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외로움이라는 숙명을 타고났다. 하지만 태어났을 때 가족, 지인들은 나를 보며 ‘하늘에서 내려온 축복’이라고 기뻐했을 것이다. 즉 태어난 것은 혼자이지만 외로울 때나 기쁠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곁에 있는 가족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히 생각하여 정작 우리는 가장 곁에 있는 이들을 도외시한 채 먼 곳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한 것인지 모른다. 태어났을 때 가장 기뻐했고, 커가면서 있었던 즐거움, 슬픔, 기쁨 등의 감정들을 가장 많이 곁에서 지켜봐 주었던 이가 누구인지를 떠올려 보라.
이렇게 소중한 가족이지만 언젠가는 곁을 떠날 것이다. 기자가 면도 탓에 손을 봉쇄당한 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손에게 고마움을 느꼈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 나머지 가족에게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