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
법률사무소 누림
가천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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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말 원아웃에 주자 1,3루. 점수는 1점차. 왼쪽 타석에 들어선 발빠른 1번 타자가 친 공이 유격수 앞으로 흐른다. 유격수가 잡아 2루로 송구 포스아웃(force out) 그리고 다시 1루로... 공과 타자의 발이 거의 동시에 들어온다. 순간 모든 시선은 1루심에 쏠린다. '아웃'. 경기 끝이다. 경기장은 환호와 탄성이 뒤섞인다. 그런데, TV에서 반복해서 보여주는 영상에는 타자의 발이 조금 먼저 들어온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오심 논란이 일고 일부 팬들은 심판의 '퇴근본능'이 나타난 결과라고 비난을 쏟아낸다. 선수나 감독들은 오심도 경기의 일부가 아니겠냐며 애써 태연한 척 한다. 오심 논란이 커지자 프로야구 경기에서 비디오 판독이 도입되었다. 지금은 위와 같은 상황에서 경기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비디오 판독을 통해 세이프 되었음이 선언되고 경기는 이어질 것이다. 비디오 판독 도입시 흐름이 끊어지고 경기가 지연되면서 야구가 재미없어질 것이란 우려도 있었지만, 관중들을 비롯한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상황이 재연되어 판단이 이루어짐으써 판정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오심이 경기의 일부가 아니라 비디오판독이 경기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최근 법원의 판결에 대해 오심 논란이 많이 일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사건이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다. 1심에서 검찰의 벌금형 구형보다 중한 징역형이 선고되고 법정구속된 피고인의 배우자가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올리면서 널리 알려지게 된 사건이다. 피고인은 어느 곰탕집에서 피해자의 엉덩이를 움켜쥐어 추행하였다는 범죄사실로 기소되었다. 사건은 법원이 다른 증거없이 피해자의 진술만을 가지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었고, 관련한 CCTV 화면이 공개되면서 오심 의혹은 증폭되었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관련된 부분의 CCTV 영상을 여러번 보아도 피고인이 피해자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는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며,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항의하였다는 등의 이유를 제시하며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하였지만,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이 지켜졌는지, 검찰의 벌금형 구형보다 중한 징역형을 선고한 것이 적정한 양형이었는지, 피고인이 범행을 일관되게 부인하고 다툼의 여지가 충분한 상황에서 굳이 법정구속까지 할 필요성이 있었는지 설명하기에는 그 이유가 너무 빈약해 보인다.
의도적 오심으로까지 비판받고 있는 재판도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 의혹 등 이른바 ‘사법적폐’ 사건에서 법원이 의혹대상자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등을 무더기로 기각하면서 제 식구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얼마 전에는 의혹의 핵심인물 중 하나인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선임재판연구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비판은 정점을 이루었다. 영장전담판사는 그동안 주요사건에서 자정을 넘겨 2~3줄의 짤막한 사유를 달았던 것과 달리 밤 10시경 굉장히 이례적으로 장문의 기각사유를 붙여 영장을 기각했고, 그 내용은 그대로 언론에 공개되었다. 판사는 자신의 기각결정이 옳다는 것을 설득시키기 위해 그 사유를 소상히 밝힌듯한데 오히려 제시된 이유마다 법원 내부에서 조차 조목조목 반박이 이어지면서 법원의 결정문이 아니라 변호인의 의견서인 것 같다는 등 비판 수위만 높아졌다. 사법적패와 관련된 사건에 있어 법원은 일반인들을 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잣대를 가지고 심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판거래의혹, 이들 사건에 대한 법원의 노골적인 제식구감싸기, 그리고 개별사건들에 대한 납득하기 어려운 재판 등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우려가 극에 달하고 있다. 예전에는 일반인들이 개별 사건들에 대한 자료 접근이 여의치 않아 법원의 재판이 타당한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지만, 이제는 당사자나 언론 등을 통해 야구영상처럼 재판 관련 자료들이 인터넷에 낱낱이 공개되면서 법원의 판단에 대한 합리적 비판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인들이 납득할 수 없는 재판이 이어진다면 국민들은 현재의 사법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야구에서 심판의 권한을 축소하면서 비디오판독을 도입한 것처럼 말이다. 특별재판부의 설치,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나아가 AI 판사의 도입마저 심각하게 제기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