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
법률사무소 누림
가천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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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인이 모여 있는 공식 석상에서 "○○○는 공산주의자다" 라고 말해도 이제 형사책임을 지지는 않을 것 같다. 관련된 1심 판결이 상급심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면 말이다. 얼마전 서울중앙지방법원 모 형사단독 판사는 지난 18대 대선이 끝난 후인 2013년 1월 보수성향 시민단체의 신년하례식에 참석한 고영주씨가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에 대하여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사건에서 고영주씨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현직 대통령이 고소인인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 있을 만큼 현재 사법권의 독립이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판결이었다. 그러나, 이 판결이 타당한 판결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의문이다.
언론에 보도된 무죄판결 이유를 보면, 담당 판사는 “피고인이 문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모함하거나 모멸감을 주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고 명예훼손의 고의도 인정할 수 없다”, “‘공산주의자’라는 용어가 갖는 다양성을 고려하면, 공산주의가 북한과 연관 지어 부정적으로 사용된다는 사정만으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공산주의는 포괄적 개념이기 때문에 다수의 국민에 이론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공산주의 개념이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개인이 갖는 정치적 견해가 시대적 배경과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피고인과 문재인 대통령의 상이한 활동 경력을 고려하면 두 사람이 공산주의자 개념에 대해 일치된 견해를 보일 수 없다"며 “이 표현이 부정적 의미를 갖는 사실적시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공직에 있는 인물이 가진 이념이 국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그 이념은 철저히 검증되고 광범위하게 문제 제기가 허용돼야 한다”며 “정치인의 정치적 입장이나 주장은 공론의 장에서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 아래 상호 논박을 거쳐 평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명예훼손죄 관련하여서는 국민들의 알권리,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보호하기 위하여 비범죄화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정치인, 연예인 등 대중들의 관심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표현에 대해서는 가급적 명예훼손죄로 처벌하지 않는 것이 우리 법원의 태도이기도 하다. 이번 판결 또한 이러한 점을 고려한 판단이라고 보여지고, 더욱이 대통령 후보에 대해서는 그가 가지고 있는 이념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광범위한 문제 제기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설명에 대하여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에서 밝히고 있는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담당 판사는 공산주의라는 개념이 포괄적이어서 다수의 국민이 이론의 여지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이 가능한지 의문이고, 피고인(고영주)과 피해자(문재인)가 생각하고 있는 공산주의 개념이 동일하지 않으므로 피고인이 생각하고 있는 공산주의 개념을 가지고 피해자를 공산주의자라고 지칭하였어도 이러한 표현이 부정적 의미를 갖는 사실적시로 볼 수는 없다는 취지인 것 같다. 공산주의는 이번 판결처럼 그 개념이 포괄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시장경제를 인정하지 않으며,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추구하는 이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공산주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자유시장 경제를 추구하는 대한민국 헌법에 반하는 반헌법적인 이념이다. 더욱이 한국전쟁을 경험한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자를 ‘빨갱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이러한 공산주의의 일반적 개념과 공산주의자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갖고 있는 특수성을 공안검사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피고인이 몰랐을리 없을텐데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단정적으로 지칭한 표현을 두고 부정적 의미를 갖는 사실 적시로 볼 수 없다는 설명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피고인이 했던 “문재인은 공산주의자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라는 발언은 “문재인은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반헌법적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 그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북한과 같이 공산주의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라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이러한 표현이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자로 국민들에게 선택을 받고자 하는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의 사실 적시가 아니란 말인가?
군사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거나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에 대하여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찍어 감옥에 보낸 일이 부지기수였고, 그 후에도 정적에게 공산주의자라는 올가미를 씌워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무척 많았다. 고인이 된 전 김대중 대통령은 일생을 독재자가 놓은 공산주의자라는 덫에서 헤어나오려 몸부림쳐야만 했고, 아직까지도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겠지만, 국민을 현혹시키는 무책임하고 근거없는 표현에 대한 책임은 엄중히 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