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
법률사무소 누림
가천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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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2013년 1월 유권자 6644명은 전자개표기를 사용해 개표한 제18대 대통령선거가 무효라고 주장하며 대법원에 ‘제18대 대통령선거 무효확인 소송’을 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에 관한 쟁송은 180일 이내에 신속히 결정하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대법원은 지정한 변론도 연기하더니 소 제기 후 4년 4개월이 지난 2017년 4월 ‘각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같은 해 3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되어 더 이상 소송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를 밝혔다.
[사례 2]
2009년 4월 군법무관 6명은 당시 국방부의 불온서적 차단 지시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는 이유로 파면 등 징계처분을 당하자 그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1심과 2심을 거치면서 일부 군법무관들에 대한 파면처분이 취소되었지만, 나머지 군법무관들에 대한 징계처분은 정당하다고 판단되어 그 군법무관들이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군법무관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심을 파기하였는데, 2011년 9월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되고 무려 6년 7개월이 지난 2018년 4월에야 선고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2018년 7월 파기환송심에서 원고들인 군법무관들의 승소판결이 있었다. 그러나, 소송을 제기한 군법무관 6명 전원은 이미 전역한 상태다.
[사례 3]
2000년 5월 일제강점기하에서 강제로 징용된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7년이 지난 2007년 2월 피해자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1심 판결이 있었고, 피해자들이 항소하였지만 항소도 기각되었다. 그러나, 2012년 5월 대법원이 피해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원심을 파기하였고, 2013년 7월 환송심에서는 피해자들의 청구를 일부인용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에 대해 피고인 일본 기업이 재상고를 하였는데, 2013년 9월 사건을 접수한 대법원은 5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선고를 미루다 최근에 이르서야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다고 밝혔다. 현재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 중 1명만이 생존해 있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밝히고 있고(헌법 제27조), 우리 법률은 법원에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할 것을 규정하면서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소가 제기된 날로부터 5월(상소심의 경우 기록을 접수한 날로부터 5월)이내에 선고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민사소송법 제1조, 제199조). 그런데, 위 사례들은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되고 4년 4개월(사례 1), 6년 7개월(사례 2)이 지나서야 선고가 있었고, 재상고심임에도 접수된 지 5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사건(사례 3)마저 있다. 신속한 재판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례들이다. 뿐만 아니라 재판을 청구한 사람들의 권리구제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전자개표기 사용의 적법성 등을 판단받고자 소를 제기했는데,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되었다고 하면서 소의 이익이 없다고 각하했다. 탄핵이 없었다면 다음 대통령 선거 때까지 미루다가 그 때가서 이미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역시 소의 이익이 없다고 각하했을지 모를 일이다. (사례 1). 비록 원고들(군법무관)의 징계는 취소되었지만 이미 원고들은 전역을 하여 징계취소가 무의미하게 되어 버렸다. (사례 2). 대법원이 이제야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여 심리를 한다고 하지만, 원고들(강제징용 피해자) 중 1명만이 생존해 있고, 최종 선고가 있을 때까지 그 분이 살아있을지 알 수 없다. (사례 3).
이처럼 직무유기에 가까운 현저한 재판지연에 대한 책임을 물을 방법은 없을까? 우선, 국가배상청구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우리 법원은 대법원이 선고를 늦게 하여 손해를 입었다고 하면서 국가배상청구를 한 사건에서 “재판이 지연됐더라도 위법성을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배상책임이 없다”라고 판단한 바가 있고, 아직까지 이를 인정한 사례는 없다. 또한, 재판지연에 대하여 위헌 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실현을 위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법률상, 헌법상 작위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형법상 ‘직무유기죄’의 경우, 재판지연을 이유로 기소된 사건 자체가 없거니와 가사, 기소가 된다고 하더라도 “직무에 관한 의식적인 방임이나 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 한하여 직무유기죄가 성립한다”고 하는 법원에 입장에 따를 때 인정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재판지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도 결국, 재판을 담당하는 법원이 해야 한다. 살핀 것처럼 법원은 그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현재로선 인정할 가능성도 커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책임을 묻고 싶다. 필자는 사례 2 사건의 당사자이다. 군법무관으로 재직하면서 소송을 제기하였고, 대법원에서 사건을 처리하지 않고 있는 동안 전역을 하였다. 그리고,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된지 6년 7개월이 지나서야 6쪽짜리 판결문을 받아 볼 수 있었다. 재판지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을 통해 그 6년 7개월동안 대법원에서 과연 무엇을 하였는지 알고 싶다. 위 사건들은 모두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들이다. 그 시절 ‘재판거래’ 의혹 등으로 법원의 신뢰는 땅에 떨어져 있다. 법원이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지난 잘못에 대한 인정과 철저한 반성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법원, 법관의 독립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지 결코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의 독립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