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자녀 최우선에...‘자녀중심 가사재판’
“이혼사건 여러 부작용 유책주의에서 비롯”
“가사재판, 일반사건과 다른 시각으로 해야”
‘가정법원 분화, 친양자입양 폐지’ 등 주장도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가사재판을 하는 판사도 ‘감정노동자’라고 그는 말했다. 그 역시 가사재판을 할 때면 악몽을 자주 꾼다고.
장창국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판사는 올 한해 에너지 충전을 위해 가사재판을 쉬고 민사재판을 한다. 그러나 1년이 지나면 그는 어김없이 다시 가사재판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판사들이 재판을 하면서 겪는 고통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머리고생, 몸고생, 마음고생이 그것이다.
머리고생은 주로 민사사건을 맡은 판사들이 한다고 한다. 논리로 해야 하는 판결이기 때문이다. 반면 형사재판은 주2회씩은 재판을 해야 하는데다가 증인신문 등으로 인해 몸고생을 하는 편이다.
가사재판 판사들은 마음고생을 한다. 장창국 판사는 이 마음고생이 당사자들의 무기력함, 부정적인 태도, 비관적인 심리 상태가 그대로 판사들에게 전이되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악몽까지 꾸며 마음고생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장창국 판사는 가사재판을 아주 떠나지는 않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잠시 그가 혼잣말 하듯 여러 말을 꺼내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말했다.
“제 주위에서 부모가 이혼하거나 헤어짐으로 인해 아이가 힘들어 하는 모습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가사재판에서 가족의 역동을 보면 민사재판이나 형사재판에서 볼 수 없는 묘한 매력과 보람을 느껴요. 이혼 가정 자녀들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맞게 되는 가족관계의 외적인 변화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도록, 부부들이 건강한 이혼을 할 수 있게 돕고 싶어요. 자녀의 행복, 그것을 가장 우선시하는 가사재판이 되도록 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의 자녀는 어떤 마음일까요?”
그가 말하는 ‘자녀(의 행복)를 가장 우선시하는 가사재판’이란 얼핏 듣기엔 어딘지 모르게 생소하게 여겨졌다. 재판 당사자는 부부요, 미성년의 자녀는 대개 이들 뒤에 가려져 있는데, 그 가려진 존재를 이끌어 내어 중심으로 삼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했다. “이혼소송의 부부들이 다 그런 상태입니다. 서로 이전투구에만 열을 올리기 때문에 자녀를 보지 못해요. 서로 싸워 이길 생각만 하느라 자녀의 입장과 심리는 헤아리지 못하죠. 부모의 이혼 과정에서 방치되는 이런 자녀들을 챙겨줄 존재는 법원밖에 없습니다.”
서로에 대한 분노가 최고점에 달한 부부들이 그에게 “하루빨리 이혼시켜 달라”고 아우성일 때, “협의했으니 판결만 내리라”고 다그칠 때도 그가 빠뜨리지 않고 묻는 질문이 있다.
“(당신들의) 자녀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요?” 부모인 이상 이 말에 숙연해 지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장 판사는 “부모가 이혼과 양육 문제를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심리 전문가들에게 상담을 의뢰하여 자녀 입장에서 한 양육 합의인지, 자녀들이 부모의 이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혼은 하되, 급하게 하지 말고 자녀가 이혼을 받아들이는 속도에 따라 하도록, 즉 자녀들이 부모의 이혼을 수용하도록 돕는다고 했다.
한편 그는 우리 입법이 이혼을 유책주의로 규정한 데서 많은 문제가 생긴다고 봤다. 즉 이혼재판은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음을 규명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서로를 향하여 날을 세울 수밖에 없다.
이런 대립구도에선 자신을 성찰하며 잘못을 돌아보기는커녕 오히려 부부간 갈등의 골만 더 깊어지기가 일쑤다.
“이러한 이유로 서구는 유책주의를 포기하고 파탄주의로 돌아서고 있어요. 과거에 얽매여 상대방 탓만 하느라 이혼 이후 가장 중요한 문제인 주양육자 지정과 면접교섭, 양육비 문제 등에 집중할 수 없다는 점도 유책주의가 갖는 큰 문제점이죠. 가정법원의 역할은 단순히 부부 사이에서 누가 더 잘못인지를 판단해 주고 이혼시키는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혼 이후에도 자녀를 위해 ‘두 지붕 한 가족’의 모습을 갖춰야 함을 재판 과정에서 연습시켜야 해요. 이혼으로 부부 관계는 끝난다 해도, 부모 자녀 관계는 끝날 수가 없는 것이니까요.”
가사재판은 조금 다른 시각으로...
초창기 가사재판을 할 때 그는 일반 재판과 큰 차이 없는 시각으로 사안에 접근했고, 판결했다. 그러나 제시된 명확한 증거를 기반으로 판단하고 법리를 적용할 수 있는 일반 사건과 달리 가사사건은 그에게 너무 어렵게 다가왔다는 고백이다.
“가정사는 무 자르듯 명확히 가를 수가 없어요. 어느 선까지 보면 이쪽이 잘못했는데, 또 다른 쪽에서 보면 다르게 볼 여지가 생겨요. 어떤 때는 ‘과연 판사 자신의 가치관으로 한 쪽 편을 들고 이혼시키는 게 맞는가’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초기에 가사재판 맡았을 때는 부부를 재결합시킬 방향을 많이 고민했던 것 같네요.” 하지만 지금 그는 무조건 이혼을 막기보단 ‘건강한 이혼’을 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가 말한 ‘건강한 이혼’이란, 부부가 이혼과정에서 혼인 파탄에 자기 책임도 있음을 인정하고 분노에 휩싸이지 않으며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는 것, 그래서 과거에 집착하기보다는 이혼 후에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가에 더 고민하고 이혼 후에도 부모로서 아이를 공동으로 양육하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는 특히 가사조사관이나 심리상담가의 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건강하지 않게 이혼한 부모는 자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더욱 부모의 건강한 이혼을 도모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장 판사는 나아가 “경험상, 가사사건에서는 당사자들에게 판사의 시각에서 내린 해결안을 제시하는 식의 접근도 옳지 못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를테면 당사자는 합의금을 3천만 원만 받겠다고 하는데 판사가 ‘5천은 받아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하고 당사자의 의사를 그에 맞추려고 하는 경우다.
“제가 재판한 모습이 녹화된 것을 보니, 저는 당사자를 설득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과 논쟁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맞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혼 당사자들을 그에 맞추려고 했기 때문인데요. 사실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은 당사자만큼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알지는 못해요. 부부 사이도 어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급속도로 가까워지는가 하면, 어느 날은 또 급랭되기도 하는 등 그 미묘한 기류를 판사로서는 정확히 다 파악할 수가 없죠. 가사재판의 판사는 한 발 뒤로 물러나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게끔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여요. 이것도 일반재판과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야 할 지점이죠.”
그로부터 시작된 여러 변화들
2008년, 장 판사는 면접교섭의 의미를 새로이 정립했다. 그동안 면접교섭권이란 ‘부양육자(자녀와 동거하지 않는 양육자)의 권리’로서만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본인이 자녀와 면접교섭을 하지 않겠다고 할 경우 일반적으로 법원은 그 의사를 존중하며 ‘자기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고 하므로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소극주의를 취했다.
부부가 합의하여 면접교섭 날짜까지 정한 경우에도 그중 80% 정도는 중간에 면접교섭이 중단됐다. 면접교섭이 저절로, 혹은 판결만으로 지속되지는 않는 것이다.
이 문제들을 위해 장 판사가 그해 도입한 것이 ‘비양육자-자녀 캠프’다. 이혼가정 자녀가 부모의 이혼을 이해하게 하고, 이혼으로 인해 어긋날 수 있는 부모 자녀 관계를 바로 잡도록 가정법원이 개입하는 형태다.
이는 면접교섭은 부양육자만의 권리가 아니라 자녀의 권리, 정확히는 자녀가 갖는 ‘아주 중요한 권리’라는 인식도 굳히는 효과를 낳았다.
가사상담위원제도 또한 장 판사가 만들었다. 가사상담은 당초 자녀의 심리 치료와 부부 재결합 등을 목적으로 하여 운영됐으나, 지금 그 목적이 많이 변하여 ‘건강한 이혼 및 자녀의 정서적 안정과 심리 평가, 심리 전문가의 도움 하에 주양육자 협의와 면접교섭 연습’ 등을 위해 운영된다.
‘가사재판은 장창국 판사에게 물어보라’는 말은 단지 우스갯소리에 그치는 말이 아니다. 지난달 말 장창국 판사는 법원 산하 연구모임인 부모교육공동연구회 소속으로서 ‘자녀 중심 가사 재판’이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은 일반 대중에 판매하지 않는 비매용으로서 판사, 가사조사관, 가사조정위원, 가사상담위원들을 위한 지침서로 나온 것이다. 가사재판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당사자들의 심리(心理) 뿐 아니라 가사재판의 심리(審理)방법까지 상세히 다루었다.
그는 현재도 고양지원 판사들, 가사조사관들, 가사상담위원들과 함께 ‘가사상담 가이드라인과 가사상담 사례집’ 원고를 집필 중이다.
이쯤이면 가사재판의 변화와 개선이 상당 부분 그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 분명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며 “이런 변화들이 몇몇 법원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바람직한 가사재판에 대한 고민 지속할 것”
그가 가정법원의 역할과 기능을 창의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이유는, 법원이 ‘심판 기관’이기보다 ‘분쟁해결기관’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법원을 ‘심판 기관’이라고만 못 박을 경우 심판 이외의 것에 힘을 쏟는 듯한 법원의 모습은 어색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법원을 ‘분쟁해결기관’으로 볼 경우 분쟁해결을 위해 법원이 어떠한 방법을 취하든 그리 어색하지 않다.
장 판사는 한편 가사재판과 관련한 화두로서 ‘서울가정법원을 동·서·남·북·중앙으로 분리하여 설치할 것’과 ‘친양자입양제도 폐지’를 말하기도 했다.
가정법원의 분리 주장은 ‘천만 서울 시민의 가사사건을 서울가정법원 한 곳이 관할하게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그의 생각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이 주장이 자칫 ‘법원의 몸집불리기 의도’로 여겨질 수 있어 조심하는 분위기에 있다”며 “이 문제를 정치적 관점으로만 대하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친양자입양제도에 대해서는 “자녀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입법으로, 핏줄과 혈연을 법으로 지우겠다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즉 소위 말하는 ‘꼴보기 싫으니 호적에서 지워버리겠다’는 정서가 그대로 제도화된 격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부부 사이는 남남이 되는 게 가능해도 부모 자녀 관계는 그렇지 않다”는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자녀들이 부모 사이에서 겪는 충성심 갈등이라는 중요한 심리적 문제를 외면하면서, 일반 입양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친양자제도로 입법화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는 생각을 보였다.
장창국 판사는 스스로를 ‘고집 있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변화에 대한 열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밀어붙인 끝에 맛보는 성취감을 좋아한다”며 적극적이면서 한편으론 세심한 그의 성격이 가사재판 과정에서 더 크게 발휘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가정법원 및 가사재판의 시스템과 역할을 항상 모색할 것이라고 전했다. 가정의 모습과 기능, 중심 가치 등은 시대 변화를 따라 늘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성질을 갖고 있기에, 그 속도를 따라 자신도 항상 치열한 고민을 늦추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인터뷰 김주미 기자, 사진 조병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