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청학련사건 재판서 ‘사법살인’ 외치다 변론 도중 연행
박정희 시해한 김재규도 변호...“역사적 재평가 있어야”
“최순실 국정농단, 최태민 국정농단과 꼭 같은 양태다”
“정치는 잘만 하면 종합예술, 그러나 현실정치는 씁쓸”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1세대 인권변호사 강신옥. 그와 같은 변호인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울 듯하다.
서슬 퍼런 유신 정권 하에서 시국 사건(민청학련 사건) 피고인들을 변호하며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좋다”고, “(이 재판은) 나치 시대의 재판”이라고, “법이 정의를 세우기는커녕 권력의 시녀”라고 핏대 세워 외친 인물이다.
재판장은 여러 번 그의 변론을 중지시켰으나 그는 굴하지 않았다. “깡패같은 국가에 의해 인생을 유린당하는 학생들을 앞에 두고서 점잖게 말할 수가 없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결국 강신옥 변호사는 피고인의 최후진술을 듣지도 못하고 재판 도중 연행됐다. 보도를 엄격히 금지하던 시기라 당시 국내 언론은 이 처참한 상황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이 있자마자 <뉴욕타임즈>는 ‘한국에서 변호사가 변론 도중 끌려나갔다’며 대서특필했다.
- 당시 법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나.
“먼저 법을 배운 걸 후회한다고 했다. 법학과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는 말을 배웠고, 법으로써 정의를 세우려고 법조인이 되었는데 이런 재판을 받게 되어 허망하다고 했다. 법이 정의를 세우기는커녕 권력의 시녀인 것을 이 사건에서 보았다고 말했다.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기에 학생들의 행동은 정의롭다고도 말했다. 나도 저 피고인석에서 학생들과 같이 재판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던 미 상원의원인 풀 브라이트가 연설에서 했던 말을 인용하여 설명했다. 풀 브라이트는 러시아 철학자 차다예프의 말을 인용했는데, 그 인용한 말이 소위 말하는 ‘미친놈의 변’에 나온 말이다. 차다예프가 당시 니콜라스 황제를 비판하자 니콜라스는 그를 향해 ‘미친 놈’이라고 비웃었는데, 그 말을 받아 그런 글을 발표한 것이다. 거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눈을 감고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다. 귀를 닫고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다. 입을 닫고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다.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입을 열어서 나라를 사랑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애국이라는 것이다. 풀 브라이트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자신의 행동을 애국심으로 설명했고, 나 역시 민청학련 사건의 학생들을 애국자라고 봤다.
그러면서 ‘이 재판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고, 후세에 필히 지탄받는다’고 단언했다. ‘법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사법살인이 바로 이것’이라고도 말했다. 변호인으로서 말이 좀 심하긴 했는데, 내가 좀 성정이 로고스(logos, 이성)적이기보다 파토스(pathos, 정열)적이다.”
-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었나. 그때의 변론을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사건을 맡고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실체가 없었다. 민청학련 사건은 전형적인 용공조작 사건으로, 학생들의 유신 반대시위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정부가 이들을 빨갱이로 만들었다. 뒤에서 사주했다는 인혁당도 전혀 근거가 없었다. 들여다 보면 조작인 게 훤히 드러났다. 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천 명에 이르는 청년들을 잡아다가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냈다. 비상군법회의 검찰부는 학생들이 공산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공산국가 건설을 위해 들고 일어난 것으로 진술서를 받아냈다. 그냥 엉터리였다. 사형, 무기징역을 구형하려는데 참담했다. 그렇게 느낀 것들을 법정에 나가 변론한 것이다.
내 변론이 잘한 건지 못한 건지 잘 모르겠다. 나 이전에 그런 식으로 변호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다시 그 사건을 맡아도 똑같이 한다. 깡패짓을 하는 국가와 법리 다툼을 할 게 없었다. 내 변론으로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몇 번 변론도 중지됐지만, 점잖게 법 조문 이야기 하면서 대응할 사건이 아니었다.”
- 연행되던 상황 이야기를 듣고 싶다.
“검사가 구형하는 날, 원래대로라면 변호사의 변론을 듣고 그 뒤에 피고인들이 최후 진술을 한다. 그런데 내가 워낙 험하게 변론을 하니까 중앙정보부에서 사람들이 나와 곳곳에 대기하고 있었다. 아직 피고인의 최후 진술은 시작도 안 했는데, 내가 말을 마치니까 그들이 다가와 나를 데리고 나간 것이다. 그 옆 조사실에서 홍성우 변호사와 함께 조사를 받았다. 내가 조사받는 동안 피고인들이 최후 진술을 했고, 나는 조사 때문에 그것을 듣지 못해 상당히 허망한 심경이었다.
집에 와 아내에게 그날 법정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그런 말을 했다. ‘자식들에게는 법을 공부시키지 말자’고. 그러고선 쉬려는데 새벽 한시쯤엔가 중앙정보부 직원들이 다시 찾아왔다. 그렇게 끌려가서 한 사흘을 얻어맞고 조사를 받았다. 잠시 풀려났지만 다시 구속되어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항소했으나 기각되어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그래도 용기를 낸 편이다. 내 상고를 바로 기각하지 않았다. 법조인으로서 양심이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선 들고 있었다. 부담을 가질 법도 한 게 그때 내 변호인이 100명이었다. 전국에 있는 변호사는 다 자진해서 내 변호인이 되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있다가 정권 바뀌고 7개월 뒤 석방됐다.”
- 감옥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우리 때 감옥은 형무소 역사관에서나 볼 수 있는 그 시설이었다.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 사료 비슷한 음식을 받아 먹었고 변소도 없었다. 지금 감옥은 천당이다. 하지만 몸은 참 힘들어도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가 변호한 학생들, 동료들과 같이 있었기에 자랑스럽고 든든했다. 독립운동하다 끌려온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정신이 그러니까 육체가 괴로운 건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국민이 날 믿어준다는 확신, 역사가 날 알아줄 거라는 생각에 후회나 두려움 같은 감정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데, 고시 패스하고서 ‘앞으로 읽고 싶었던 책들을 마음껏 보며 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법조인 생활하면서는 도저히 잘 되지 않더니, 감옥에 가서야 그 뜻을 이루었다. 할 일이 없어 앉아서 책만 본 것이다. 책을 반입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그동안 읽고 싶었던 인문학, 철학 등 좋은 책을 모조리 읽었다. 내가 석방됐을 때 함석헌 선생의 ‘씨알의 소리’에서 환영 행사를 해 준 일이 있다. 그때 나보고 심경을 묻기에 ‘도덕 사우나(moral bath)를 하고 온 기분’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책을 실컷 읽다가 나온 그때는 그런 기분이었다.”
강신옥 변호사는 박정희를 죽인 김재규의 변호인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김재규가 역사적으로 재평가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재규가 자신의 권력욕 때문에 아버지 같은 (박정희) 대통령을 죽인 파렴치범이 된 것은, 순전히 전두환의 의도적인 왜곡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재규가 밝힌 박정희 시해의 원인 중 하나인 최태민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말을 전했다. 강신옥 변호사는 지난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에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알리기도 한 사람이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하여는 언론을 통해 ‘최태민의 경우와 너무 닮아서 놀랐다’는 생각을 전한바 있다. 강신옥 변호사에게서 관련 이야기를 들어봤다.
- 김재규 사건 변호는 어떻게 맡게 됐나.
“처음에는 김재규의 의전 과장인 박선호 변호를 맡았다. 박선호 가족이 내 동기인 김성일 판사를 개인적으로 알아 변호인을 소개해 달라고 했는데, 김성일 판사가 내게 보냈다. 김재규는 그 뒤에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부탁받고 맡았다. 김수환 추기경은 나뿐 아니라 몇 명의 인권 변호사들에게 ‘(김재규가) 역사적인 인물’이라며 변호를 맡겼다.
나는 김재규 사건을 맡은 이유로도 감옥에 다녀왔다. 김재규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진 5월 10일에 구속됐는데, 당시 광주사태 등으로 나라가 어지러워 나를 크게 신경쓰지 못한 전두환 정권은 보름만에 석방시켰다. 구속 이유에는 박근혜 명예훼손도 포함됐다.”
- 직접 만나보니 김재규는 어떤 인물이었나.
“아주 훌륭한 인물이다. 만나보니 더 분명했다. 나라를 위해, 정의를 위해 자신을 바친 인물이다. 그런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나는 그를 안중근 의사와 같은 인물이라고 본다. 공교롭게도 날짜까지 같다. 안중근 의사도 10월 26일에 이토 히로부미를 쏴 죽였고, 김재규는 그로부터 70년 뒤 10월 26일에 박정희를 쏴 죽였다. 둘은 역사적으로 같게 평가받아야 할 인물이다.
지금 나는 함세웅 신부와 함께 ‘김재규 재평가위원회’라는 사설단체 책임자를 맡고 있다. 성삼문 등 사육신도 200년 동안이나 반역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가 역사가 기어코 바로잡았다. 김재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식이 당장 바뀌는 것은 어렵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바로잡힐 부분이다. 나는 여기에 사명감을 갖고 있다.”
- 당시 재판에서 시해 의도라고 이야기된 것들이 다 왜곡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내란 목적이란 건 증명되지 않았다. 차지철과의 권력 다툼이라든가 김재규 개인의 야욕으로 몰아갔지만 그는 그렇게 시시한 인물이 아니다. 육군 준장인 김재규로서는 대위였던 차지철을 신경쓸 이유가 없다. 그 둘을 대립구도로 보는 것이 오히려 그에게 모욕이다. 김재규는 부당하고 악한 (유신)정권이 막을 내리게 하려면 그 심장인 박정희를 죽이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정의에 기한 판단이고, 나라를 위한 결단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애국자이면서 공도 많다고 이야기들 하는데, 이미 그때는 박정희가 지도자로서 끝이 보이던 시기였다. 여자 관계도 문란했고 총기(聰氣)도 이미 다 사라진 시점이었다. 충언을 해도 듣지 못했다. 김재규가 최태민에 대해 충언했을 때 들었다면 그(박정희)도 그의 딸(박근혜)도, 운명이 달랐을 것이다.”
- 최태민과 관련하여,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어떤 보고를 했나.
“구국여성봉사단이라고, 그 단체의 총재인 최태민은 박근혜를 명예총재의 자리에 앉히고서 그 덕을 많이 보았다. 기업 돈을 갈취하고 부정축재하는가 하면 여자 관계도 함부로 맺고 다녔다.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이런 자는 (박근혜로부터) 끊어내야 한다’고 보고했고, 박근혜는 ‘그건 나를 모함하는 것’이라고 역정을 냈다.
이에 박정희는 친국을 하여 직접 조사에 나섰다. 김재규는 박정희가 곧 진상을 파악하고서 옳은 조치를 취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박정희가 딸 편을 든 것이다. 그때 낙담을 크게 한 것 같다. 그런 걸 내버려두는 지도자에게 실망하지 않겠는가.
박정희가 제대로 된 대통령이었다면 김재규가 보고한 때 즉각 최태민을 처단했을 것이다. 그때 잘못 판단해서 본인뿐만 아니라 딸(박근혜)까지 이렇게 되지 않았나. 나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보면서 최태민 국정농단의 대물림이라는 생각을 했다. 권력을 등에 업고 부정축재, 기업갈취, 이성관계 등으로 활개친 양태가 꼭 같다.”
한편 강신옥 변호사는 1988년에 정계에 진출하기도 했다. 13대, 14대 국회에 입성했던 그는 15대 총선 때는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것을 계기로 정계활동을 그만뒀다. ‘정치란 종합예술’이라고 말하는 그로부터 정계 경험도 들어봤다.
- 정치에 입문한 계기는 무엇인지.
“유명해지니까 정치권에서 유혹이 많았고, 김영삼 씨도 나보고 정치하자고 제안했다. 많이 고민했지만 ‘매일 앉아서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직접 앞장서서 변화를 일으켜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는 잘만 해내면 종합예술이다. 좋은 일들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정치가가 물론 대통령이 되어 뜻을 펼치는 것도 좋지만 훌륭한 사람을 보좌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에서 정치에 뛰어들었다.”
- 직접 해보니까 어땠나.
“정치로는 이상을 실현시킬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라를 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무리 짓고 패싸움 하는 게 목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 정치판이다. 우리 당에서 대통령을 꼭 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무조건 우리 편을 들어야 한다. 줄을 잘 서기 위해 아첨해야 하고 이유없이 모함도 한다. 나는 그런 성격이 못 돼서 현실 정치와 안 맞았다.
보통은 ‘우리 당에 누가 수사받는다’ 하면 서로 똘똘 뭉쳐서 ‘정치 탄압이다, 보복 수사다’라며 대응한다. 하지만 나는 당의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지라도 ‘가서 조사받고 오시오’라고 말했다. 변호사로서 상식적인 말을 해도 정치에서는 튀는 것이다.”
법무법인 일원송헌의 대표 변호사로 있는 그는 올해를 끝으로 변호사 활동을 접는다고 했다. 그 이후에는 국회도서관을 다니며 매일 책을 읽을 계획이라고.
그와 고시 동기인 이시윤 변호사는 그를 향해 ‘대한민국에서 책을 제일 많이 읽은 사람일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강 변호사의 향후 계획을 듣고 보니 이시윤 변호사의 말에 수긍이 갔다. 그 또한 호탕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 말이 맞다”고 동조하였다.
인터뷰 김주미 기자, 사진 조병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