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정치인들을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태양에 남은 이슬만큼도 없지만, 요즘 들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렸던 우르과이의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 어록이 화제라는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우리는 왜 이런 대통령이 없느냐며 안타까워한다는데, 그 기사를 읽으며 불현듯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청빈한 공직자를 아쉬워하시는 분들께서는 얼마나 돈에 자유로우실까 하는 궁금증이랄까. 정작 본인들은 1원의 손해도 싫고 이익은 어떻게든 남기시려고 하시면서 너는 왜 그렇게 못하느냐며 남 탓만 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조금 의아한 기분이었다.
그런 대통령을 찾기보다는 왜 우리 곁에는 그런 인생 선배를 찾을 수 없는 것인지를 아쉬워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여하튼,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세상의 한탄에 공감을 안할 수도 없지만 공감하기도 조금 부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는 얘기.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점점 본말이 전도되는 현실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야말로 ‘한심’한 기분. 학생들의 합격을 위해서 개설된 ‘특강’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자기자랑이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다가 자신의 강좌만 소개해 더 큰 수익의 대박을 쫓으시려는 분을 보게 된다던가, 삶의 성찰도 없고 재미도 없는 영화를 만들어 그저 팝콘 값과 눈먼 수익만을 얻고자하는 목적에서 제작에 참여하시는 분들을 보게 되는 경우가 그렇다. 혹은 전혀 아니신 것 같은데도 스스로는 굉장한 인격자이자 지식인이자 웃어른이시라고 생각하시는 분을 마주하게 되는 조금 당황스러운 경우에도 그렇고. 그러니 스스로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할 때마다 얼마나 조심스러워지는지.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얄팍해서 늘 자신은 옳고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blind spot이라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이러한 자기합리적 사고구조를 인생의 사각지대라고 말해야 할지도. 그래서 나는 자신이 늘 부끄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잠시 네트워크 비즈니스 분야에서 세상을 배우던 때에도 2~3만원을 지불한 것에 대해서 그만큼의 서비스 외에 인격적인 굴종을 강요하시려는 중장년층을 볼 때면 스스로를 늘 돌아보게 되곤 했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들을 하시게 된 것인지의 그 오묘한 논리체계는 잘 모르겠지만.
뭐 그렇다고 나이가 어리다고 그런 군림하고자 하는 태도가 없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군대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young한 친구들도 정말 많이 만날 수 있었으니까. 최근 ‘갑질’논란이란 것도 그런 후안무치함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사회. 젊은이들에게 모범을 보이지 못해 무엇을 행해야 하고 무엇을 행해서는 안되는지의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회. 우리 사회의 비극은 바로 그것이 아닌가 하고.
우리사회의 문제는 젊은이들이 웃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존경을 드릴 어른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 진정한 슬픔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특히 터미널이나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시는 연세 지긋하신 분들을 뵙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단속하는 공무원들을 대하시는 모습에 보는 내가 민망스러웠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법정스님께서 입적하셨을 때에도,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영면하셨을 때에도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이제는 누구를 보며 질문을 해야 하고 누구를 보며 존경을 해야 하나 싶어서.
문제는 그런 롤모델이 없으니 다음 세대도 그 다음 세대도 점점 후안무치해진다는 것인데, 면접 전문가로서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보며 존경의 기준을 무엇이라 설명하며 어떻게 지도를 해야 할지 당혹스러울 때도 적지 않다.
사실, 롤모델이 없어서 큰일이라는 문제는 쉽다면 쉬운 문제이고, 어렵다면 어려운 문제이다. 롤모델이 없다면 자신이 롤모델일 될 수 있을 만큼 바른 기준을 갖고 살면서 인생의 향기로움을 전하면 될 것이지만, 그렇게 산다는 것이 아무래도 손해보는 것만 같아서 자신은 결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율배반적인 우리네의 솔직한 속내이다.
정치인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공직자가 청렴하지 않다고, 공무원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기업이 윤리를 지키지 않는다고 개탄들을 하시지만, 과연 그렇게 개탄하시는 분들께서 그 위치로 자리바꿈을 하신다 해도 그다지 별 기대를 하지 않게 되는 이유 역시 바로 이러한 현실 탓이다. 우리가 386세대에 대해서 너무나 깊이 실망했던 것과 같이.
어린 시절에는 스승을 찾아다녔었다. 세상에 궁금증이 많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이에 대해 답을 주실 스승을 찾았고 존경하며 배우고픈 스승을 찾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자 더 이상은 스승을 찾지 않게 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람이란 나이가 들어 갈수록 점점 욕망의 유혹에 약해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랄까.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태생적 한계일지도 모르겠지만.
긍정을 연기하셨던 고 로빈 윌리암스 선생님께서 작고하셨을 때, 그 이유에 대해서 참 안타깝기만 했다. 양심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실망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였을까. 비록 로빈 윌리암스 선생님의 연기를 보면서 억지로 저렇게까지 긍정적으로 보일 필요가 뭐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런 노력을 한다는 영혼의 순수함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미국이 부럽기까지 했었다. 젊은 연기자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셨다는 후일담을 듣게 되었을 때,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께서 하셨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기회”라는 말씀과 오버랩이 되면서 이미 떠나버리신 고인을 생각하며 가슴이 먹먹해졌었다.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하셨기에, 자랑이 되는 분들도 있는 법이니까.
매년 연말에 전해지는 보도에 단골손님인 기적들이 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분들은 많은 분들이 가난한 분들이라는 이야기. 많이 배우지 않았어도, 많이 가지지 않았어도 아무런 사심도 없이 아무런 계산도 없이 자신의 것을 나누고 이웃의 눈물에 함께 가슴 아파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졌었다.
얼마 전, 술잔을 나눈 뒤 버스 정류장까지 함께 걷던 친구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나는, 솔직하게 아직도 세상을 바꾸고 싶어.”
순간, 눈물이 날 뻔 했다. 나는, 어느 시절 세상을 바꾸기를 간절히 열망했던 나는, 이제는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하는 말이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 그냥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가던 말이었다. 하지만 가진 것 없고 잘난 것 없었기에, 늘 무시받고 홀대받아 서럽고 억울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나 자신이었을 텐데도, 시간이 지났다고 그런 것이 세상이려니 하며 순응한 채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느 나라의 누가 청렴하고 훌륭하니 부럽다고 말할 필요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니, 청렴하고 훌륭하신 분이니 본받자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왜 그런 정치인이 없냐며 남을 탓하며 부러워할 필요가 과연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디 정치판에서만 그런 어른에 목마를까. 남을 탓하기 이전에 자기 스스로 나는 왜 그런 선배가 되지 못했는지, 나는 왜 보다 정직하고 청렴하지 못했는지 반성해야 하는 것이 보다 당연한 고뇌가 아닌지, 문득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에 관련된 기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 열풍에 출판계는 평전 판권을 따내기 위해 약 5만유로(6천만원정도)까지 선인세가 올라갔다는 기사가 왠지 주객이 전도된 것만 같아서, 결국 청빈과 존경의 사연도 자본의 논리를 비껴가지 못하는 현실에 씁쓸해지고 말았다.
왜 우리는 이런 지도자가 없느냐며 안타까워 할 일이 아니지 않을까. 왜 우리는 그런 어른이 되지 못하고 있는지 스스로가 부끄러웠다면 또 몰라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너’가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된 ‘우리’이니까. 마키아벨리의 이야기처럼, 결국 어리석은 국민이 어리석은 리더를 만들기 마련이니까.
친구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다시금 가슴에 꿈을 품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며 사람들이 비웃는다 해도, 나는 그냥 내 가슴에 꿈을 품기로 했다. 사랑하고 노력하며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나 혼자서 안된다고 한다면, 바로 우리가 있을 테니까. 우리라면, 분명 세상을 바꿀 수 있을 테니까. 우리 모두 꿈꾸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봄날의 늦은 밤, 나는 그렇게 집을 향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