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진 아모르이그잼 경찰 한국사
1. 하호
신분 집단과 관련되어 가장 많은 쟁점이 제기된 것은 하호(下戶)이다. 하호에 대한 사료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부여, 고구려, 한, 왜 등에 나타나고 있는데, 삼국지의 부여와 고구려조에 나타나고 있는 하호라는 존재는 복속민 집단, 즉 예속민들에 대한 지칭이며 삼한, 동예와 관련된 하호라는 표현은 일반 피지배층을 포괄적으로 표현한 내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사료를 어떤 내용을 중심으로 분석하는가에 따라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먼저, 하호의 성격과 관련하여 노예, 노예군으로 이해하여 원시 부족국가 혹은 노예제 국가를 형성하는 기본적 피지배계급의 하나로 이해하는 견해는 백남운의 입장으로 귀족군=상호, 노예=하호로 대별된 관점에 입각하여 노예제설을 강조하였다.
김광진은 하호는 노예가 아니며 씨족사회 해체기 피정복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비록 종족노예적 성격을 띠지만 씨족적 관계의 유지에 의해 노예로 파악되기는 힘들다고 보았다.
김석형은 삼국시기 노비와 천민을 검토하면서 노비라는 존재에 대한 용어가 존재하는 시기에 고구려의 하호는 노비 아닌 하층인민으로서 주로 부곡, 장 등의 인민으로 보았다. 김병하는 시대구분 문제와 관련하여 한대의 하호가 소작농이었다는 점을 근거로 하호를 농노로 파악하였다.
이같은 이해와는 달리 이지린은 부여의 하호는 경제적 착취 관계에서 볼 때 노예적 존재-노예 계급이지만, 고구려에서 하호는 부세를 바치는 농노적 존재 내지는 봉건적 예속민이라는 견해를 제기하였다. 즉 고구려의 하호는 노동하지 않고 좌식하는 대가들에게 식량이나 어염 등을 먼 곳에서 운반함으로써 봉건적 대토지 소유자들의 토지에 속박되고 예속되어 지대를 수탈당하는 자로 보았다.
또다른 견해가 일본인 학자에 의해 제시되었다. 다케다는 하호는 누층적으로 구성된 읍락공동체의 일반 구성원으로 제가에 의해 집단적으로 지배된 존재라고 보았다. 이같은 하호와 함께 고구려 사회 구성의 기본 내용을 귀족층, 호민층, 자영소농층, 용작농민층, 노비층 등으로 구분하여 다양한 계층을 지적한 홍승기의 연구는 고구려사회 기층 집단의 양상을 구체화시키는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2. 노인(奴人)
신라 사회에 존재한 복속민에 대한 표현인 ‘노인’의 경우 이를 중앙과 지방을 망라하는 신라의 전 영역에 편제된 신민(臣民) 일반으로 이해한 견해가 이기백에 의하여 제시되었다. 그러나 비문의 내용과 전후 상관 관계를 감안할 때 이들 노인의 성격으로 지방민이란 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한편 이를 지방민 일반으로 파악하는 견해가 김재홍에 의해 제시되었다.
이에 대하여 주보돈의 노인이란 원래 비 신라계였다가 신라에 점령당해 포로로서 집단적으로 노예적 존재가 된 집단적 예속민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으며 노태돈과 같이 집단 예민과 같은 피복속민 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또한 노인을 신라 국가가 집단 예민으로 차별 편제한 특수 지역민에 한정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안병우에 의해 제시되기도 하였다. 즉 기본적으로는 예속민이란 점에서는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문경현은 이들을 고구려 영토에서 신라에 편입된 영토의 민이 노인이었다는 이해하기도 한다. 신라 울진 봉평비의 ‘노인’이라는 표현은 지방민들 사이에 노인과 비노인의 차별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6세기에 들어와 이 같은 차별에 일정한 변화가 생기는 과정, 즉 정복, 복속지에 대한 지배라는 방식을 벗어나 집권적인 지배체제의 수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고 이해하였다.
또한 봉평비나 영일 냉수리비에서 ‘신라 6부’ 혹은 ‘사라’로 명기한 것은 당시 6부인들의 의식 세계 속에서 울진 지역이나 영일 지역이 ‘신라’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고 ‘신라’란 의연히 자신들이 거주하던 경주일원 지역만을 의미하는 것을 반영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특히, 노인이라는 표현은 예속민일 뿐 아니라 도교적인 열등한 존재를 나타내고 있으며 신라 사회에 대한 공납물 헌상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음이 파악되었다.
3. 유인(遊人)
한편 고구려 사회에 존재한 ‘유인’은 고구려의 조세 문제와 관련하여 ‘수서’ 동이 고려전에 언급된 존재로 그 성격과 내용에 대한 기왕의 해석을 정리하면 다음 네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빈민설이다. 이는 백남운이 유인을 가난뱅이 실업자라고 규정한 이후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극빈자’, ‘빈궁민’ 등으로 파악하였다. 둘째, 놀이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노래, 춤, 악기 등을 연주하는 광대라는 것이다. 셋째, 매음녀 설이다. 즉, 국가로부터 매음행위를 공인받는 대신에 세금을 내는 여자들로 파악한 것이다.
넷째, 중국인 포로설이다. 이는 고구려의 일반적인 편호민과 구별되며 고구려와의 관계가 매우 유동적이었던 말갈, 거란, 동예 등의 종족이나 백제나 신라, 선비, 수 등에서 투항하거나 귀부한 사람들을 고구려가 별도 계층으로 파악하여 특혜를 주었다고 주장하는 학설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