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중세 행정관료제도의 성격과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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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중세 행정관료제도의 성격과 발달
  • 법률저널
  • 승인 2008.10.1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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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의 숲에서 거닐다
 
  1471년부터 1472년에 영국의 에드워드 4세(Edward IV : 1442.4.28∼1483.4.9)에 의해 발간된 블랙 북(The Black Book)은 가신관료를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하나는 주로 재정이나 회계에 관한 일이나 집사의 일 혹은 주방에 관한 일 등을 담당하는 가신관료와 다른 하나는 왕이나 영주의 개인적 복지나 귀족 혹은 기사 그리고 서기들의 봉급이나 이들에 대한 제공물들을 담당하는 가신관료이다. 참고로 에드워드 4세는 프랑스 루앙출신으로 요크왕조를 세운 잉글랜드의 왕이며 재위기간은 1461년부터 1483년까지이다.

  물론 16세기에 들어서서도 공과 사적 영역간의 구별이 엄격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물론 중세 후반에 가서는 공과 사의 구별이 근대적 행정관료제를 만들어 나가는데 선행조건이 된다는 의식이 싹트고 자라기 시작하며 이로 인한 정치적 이념변화가 수반되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알쑤시우스(Athusius : 1557-1639)는 행정관료는 현명하고 경험이 많고 훈련이 되었고 정확하고 신속하고 충성스럽고 겸손하고 융통성이 있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는 개인적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말을 보더라도 이 시기에 어느 정도 행정관료제에 공과 사에 대한 구분이 나타나는 전초단계임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몇 가지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먼저 행정이 학문적 관심의 주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둘째 변화는 정부의 중앙집권화가 강화되고 가속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의 중앙집권화는 상비군제도의 도입과 함께 보다 능률적인 조세제도의 개발 등을 낳았다.

  프랑스의 경우 루이 14세(Louis XIV : 1638.9.5∼1715.9.1)때 중앙정부 부서가 국(bureau)단위로 세분되어 나뉘어졌고 수많은 기능과 역할을 가진 행정관료직이 증대되었다. 또한 지방장관(intendant)들이 중앙정부를 대표해각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임명되었으며 지사(Prefect)들이 이들의 명을 받아 보다 하위의 지역들을 관리하였다. 루이 14세는 프랑스 생제르맹앙레 출생이며 프랑스 부르봉왕조의 왕으로 일명 태양왕이라고도 불려졌으며 재위기간은 1643년부터 1715년까지이다.

  프러시아의 프레데릭 빌헬름 2세(1713-1740)때에도 이와 비슷하게 지방정부를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지방관을 임명하였다. 이러한 발전은 1215년에 체결된 영국의 대헌장(Magna  Charta)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지방의 행정관료들은 귀족과는 분리되어 별개로 시민들로부터 충원이 되었으며 이들은 점차 전문적 행정관료로 자리매김을 해 나갔다. 특히 국가가 발전하고 경제에 대한 강한 욕구로 인해 중상주의가 자리를 잡음에 따라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과 부기학과 같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필요로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필요는 프랑스와 독일로 하여금 행정에 관심을 가지게 하였는데 그러한 과정을 거쳐 싹트고 발전하게 되는 것이 바로 관방학과 경찰학(Science de la police)이었다.  사진은 루이 14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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