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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공판과 증거
1. 준강간죄 장애미수의 공소사실에 불능미수의 범죄사실이 인정되는 경우의 직권인정의 의무성 (대법원 2024.4.12.선고 2021도9043 판결)

가. 사 안
피고인이 술에 취해 잠이 들어 항거불능 상태에 있던 피해자를 간음하려 하였으나 정신을 차린 피해자가 거부하며 항의하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는 이유로 준강간죄의 장애미수로 기소되었다.
원심은 피고인에게 준강간 고의가 있었던 것으로는 보이나 당시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는 점에 관한 증명이 부족하여 준강간죄의 장애미수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고, 피고인의 행위를 준강간죄의 불능미수로 의율할 수는 있다고 보이나 피고인의 방어권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있으므로 공소장변경없이 직권으로 준강간죄의 불능미수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무죄로 판단하였다.
나. 판결요지
(1) 피고인이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고 인식하고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할 의사로 준강간의 실행에 착수하였으나, 피해자가 실제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않은 경우에는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해 준강간죄에서 규정하고 있는 구성요건적 결과의 발생이 처음부터 불가능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때 피고인이 행위 당시에 인식한 사정을 놓고 일반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보았을 때 준강간의 결과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었다면 준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성립한다.4)
법원은 Ⓐ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 심리의 경과에 비추어 피고인의 방어권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공소장이 변경되지 않았더라도 직권으로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과 다른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5) 이와 같은 경우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과 대비하여 볼 때 실제로 인정되는 범죄사실의 사안이 가볍지 않아 공소장이 변경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적정절차에 의한 신속한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형사소송의 목적에 비추어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라면 법원으로서는 직권으로 그 범죄사실을 인정해야 한다.6)
(2) 피고인의 행위가 준강간죄의 불능미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나아가 ① 이 사건 공소사실과 준강간죄의 불능미수 범죄사실 사이에 범행일시, 장소, 피고인의 구체적 행위 등 기본적 사실에 차이가 없고, ② 공판과정에서 준강간의 고의,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는 물론 준강간의 결과 발생 위험성에 관한 판단근거가 될 수 있는 피고인이 당시 인식한 피해자의 상태에 관한 공방 및 심리가 모두 이루어졌고 검사가 항소이유서에서 준강간죄의 불능미수 성립을 주장하고 피고인의 변호인이 그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하기도 하여 직권으로 준강간죄 불능미수의 범죄사실을 인정하더라도 피고인의 방어권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있다고 볼 수 없으며, ③ 준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중대한 범죄이고, 준강간죄의 장애미수와 사이에 범죄의 중대성, 죄질, 처벌가치 등 측면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어, 공소장이 변경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적정절차에 의한 신속한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형사소송의 목적에 비추어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므로 원심으로서는 준강간죄의 불능미수 범죄사실을 직권으로 인정하였어야 하므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환송한다.7)
2. 통신비밀보호법상 ‘공개되지 아니한’의 의미 및 이에 관한 판단방법
(대법원 2024.1.11.선고 2020도1538 판결)
가. 사 안
피해아동의 담임교사인 피고인이 피해아동에게 수업시간 중 교실에서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아.”라고 말하는 등 정서적 학대행위를 하였다는 혐의에 따라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아동복지시설종사자등의아동학대가중처벌)죄로 기소되고, 피해아동의 부모가 피해아동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수업시간 중 교실에서 피고인이 한 발언을 몰래 녹음한 녹음파일, 녹취록 등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가 문제되었다.
원심은 피고인이 30명 정도 상당수의 학생들을 상대로 발언하였고, 국민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초등학교 교육은 공공적인 성격을 가지므로 피고인이 수업시간 교실에서 한 발언이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1항의 ‘공개되지 아니한 대화’에 해당하지 않는 점, 피해아동의 부모와 피해아동은 밀접한 인적 관련이 있는 점, 피해아동의 부모는 피고인의 아동학대 행위 방지를 위해 녹음에 이르게 되었고, 녹음 외에 별다른 유효적절한 수단이 없었으며, 아동학대범죄의 사회적 해악을 고려하면 증거수집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점 등을 이유로 녹음파일 등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아 일부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다.
나. 판결요지
(1) 통신비밀보호법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대화에 원래부터 참여하지 않는 제3자가 일반 공중이 알 수 있도록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발언을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이다. 여기서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은 반드시 비밀과 동일한 의미는 아니고 일반 공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며, 구체적으로 공개된 것인지는 발언자의 의사와 기대, 대화의 내용과 목적, 상대방의 수, 장소의 성격과 규모, 출입의 통제 정도, 청중의 자격 제한 등 객관적인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2) ➀ 초등학교 교실은 출입이 통제되는 공간이고, 수업시간 중 불특정 다수가 드나들 수 있는 장소가 아니며, 수업시간 중인 초등학교 교실에 학생이 아닌 제3자가 별다른 절차없이 참석하여 담임교사의 발언내용을 청취하는 것은 상정하기 어려우므로,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교실에서 수업시간 중 한 발언은 통상적으로 교실 내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서 교실 내 학생들에게만 공개된 것일 뿐, 일반 공중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것이 아닌 점, ➁ 피고인의 발언은 특정된 30명의 학생들에게만 공개되었을 뿐, 일반 공중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대화자 내지 청취자가 다수였다는 사정만으로 ‘공개된 대화’로 평가할 수는 없고, 대화내용이 공적인 성격을 갖는지 여부나 발언자가 공적 인물인지 여부 등은 ‘공개되지 않은 대화’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점, ➂ 피해아동의 부모는 피고인의 수업시간 중 발언의 상대방, 즉 대화에 원래부터 참여한 당사자에 해당하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녹음파일 등은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1항을 위반하여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므로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2항 및 제4조에 따라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보아야 하고, 사생활 및 통신의 불가침을 국민의 기본권의 하나로 선언하고 있는 헌법규정과 통신 및 대화의 비밀보호, 통신 및 대화의 자유 신장을 목적으로 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의 취지에 비추어 보면, 원심이 들고 있는 사정들을 이유로 이 사건 녹음파일 등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8)
3. 대검찰청 소속 진술분석관이 피해자와의 면담내용을 녹화한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 (대법원 2024.3.28.선고 2023도15133 판결)
가. 사 안
대검찰청 소속 진술분석관이 피고인들의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친족관계에의한강간)등 혐의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검사로부터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33조에 따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여부에 대한 의견조회를 받아 자신이 피해자를 면담하는 내용을 녹화하였고, 검사가 위 영상녹화물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였다.
나. 판결요지
(1) 헌법 제12조 제1항이 규정한 적법절차의 원칙과 헌법 제27조에 의해 보장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구현하기 위해 형사소송법은 공판중심주의와 구두변론주의 및 직접심리주의를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형사소송법이 수사기관에서 작성된 조서 등 서면증거에 대해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것은 실체적 진실발견의 이념과 소송경제의 요청을 고려하여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일 뿐이므로 증거능력 인정 요건에 관한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9)
형사소송법은 제310조의2에서 원칙적으로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제311조부터 제316조까지 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한다.10) 형사소송법 제311조는 법원 또는 법관의 조서의 증거능력에 관해 규정하고, 제312조 제1항 내지 제3항은 검사 또는 검사 이외의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에 관해 규정한다.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4항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고인이 아닌 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에 대해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서 실질적 진정성립이 증명되고 반대신문이 보장되며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해 증거능력을 인정한다.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5항은 피고인 또는 피고인이 아닌 자의 진술서가 수사과정에서 작성된 경우 같은 조 제1항 내지 제4항을 준용한다.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은 ‘전2조의 규정 이외에 피고인 또는 피고인이 아닌 자가 작성한 진술서나 그 진술을 기재한 서류’로서 그 작성자 또는 진술자의 자필이거나 그 서명 또는 날인이 있는 것에 대해 그 진정성립이 증명되면 증거능력을 인정한다. 수사과정에서 작성된 서류의 증거능력에 관해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보다 더욱 엄격한 요건을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312조의 취지에 비추어 보면,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이 규정하는 서류는 수사과정 외에서 작성된 서류를 의미한다.
수사기관이 제작한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 내지 증거로서의 사용 범위는 더욱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즉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고인이 아닌 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형사소송법 제221조 제1항에 따라 제작한 영상녹화물은, 다른 법률에서 달리 규정하고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소사실을 직접 증명할 수 있는 독립적인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11) 또한 영상녹화물이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4항에 의해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고인이 아닌 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에 대한 실질적 진정성립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때에도 그 영상녹화물은 형사소송법 및 형사소송규칙에 규정된 방식과 절차에 따라 제작되어야 한다.12)
(2) 이러한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규정 및 전문증거의 증거능력 인정에 관한 해석 원칙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아닌 자의 진술을 기재한 서류가 비록 수사기관이 아닌 자에 의해 작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수사가 시작된 이후 수사기관의 관여나 영향 아래 작성된 경우로서 서류를 작성한 자의 신분이나 지위, 서류를 작성한 경위와 목적, 작성 시기와 장소 및 진술을 받는 방식 등에 비추어 실질적으로 고찰할 때 그 서류가 수사과정 외에서 작성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면, 이를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의 ‘전2조의 규정 이외에 피고인이 아닌 자의 진술을 기재한 서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13) 나아가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은 이를 인정하는 법적 근거가 있는 때에만 예외적으로 인정된다는 원칙 및 수사기관이 제작한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 내지 증거로서의 사용 범위를 다른 전문증거보다 더욱 엄격하게 제한하는 관련 판례의 취지에 비추어 보면, 수사기관이 아닌 자가 수사과정에서 피고인이 아닌 자의 진술을 녹화한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도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
(3) 진술분석관의 소속 및 지위, 진술분석관이 피해자와 면담을 하고 이 사건 영상녹화물을 제작한 경위와 목적, 진술분석관이 면담과 관련하여 수사기관으로부터 확보한 자료의 내용과 성격, 면담 방식과 내용, 면담 장소 등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 사건 영상녹화물은 수사과정 외에서 작성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고, 이 사건 영상녹화물은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나 피고인이 아닌 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가 아니고, 피고인 또는 피고인이 아닌 자가 작성한 진술서도 아니므로 형사소송법 제312조에 의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도 없다는 이유로 위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을 부정한 원심판결이 수긍되어 상고를 기각한다.14)
각주)-----------------
4) 대법원 2019.3.28.선고 2018도16002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5) 대법원 1999.11.9.선고 99도3674 판결 등 참조.
6) 대법원 2022.4.28.선고 2021도9041 판결; 대법원 2006.4.13.선고 2005도9268 판결 등 참조.
7) 판례는 ① 허위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공소사실로 공소제기가 되었으나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사실만 인정된 경우(대법원 2008.10.9.선고 2007도1220 판결), ②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죄의 공소사실로 공소제기가 되었으나 강간의 점은 인정되지 않고 상해의 사실만 인정된 경우(대법원 1997.8.26.선고 97도1452 판결), ③ 상해 내지 상해치사의 공소사실로 공소제기가 되었으나 단순 폭행의 범죄사실만 인정되는 경우(대법원 1993.12.28.선고 93도3058 판결; 대법원 1990.10.26.선고 90도1229 판결), ④ 특수강도의 공소사실로 공소제기가 되었으나 공동 폭행·협박 또는 특수강도의 종범에 관한 범죄사실만 인정되는 경우(대법원 2001.12.11.선고 2001도4013 판결) 등에 법원이 축소사실을 직권으로 인정하지 않아도 위법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판례는 법원의 직권인정의 의무성에 대해 원칙적 재량설 입장이지만 위와 같은 몇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실제로 인정되는 범죄사실이 가볍지 않아 이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므로 직권으로 그 범죄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여 의무설과 같은 결론에 이르고 있다.
8) 대법원 2022.8.31.선고 2020도1007 판결.
9) 대법원 2022.6.16.선고 2022도364 판결 참조.
10) 대법원 2019.8.29.선고 2018도13792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11) 대법원 2014.7.10.선고 2012도5041 판결 참조.
12) 대법원 2022.6.16.선고 2022도364 판결 참조.
13) 대법원 2022.10.27.선고 2022도9510 판결 참조.
14) 결론적으로 판례는 ‘① 수사기관이 작성한 것이 아니어서 312조가 적용될 수 없고, ② 수사과정에서 작성한 것은 맞으므로 313조가 적용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다음 호에 계속
■ 이창현 교수는...
연세대 법대 졸업, 서울북부·제천·부산·수원지검 검사
법무법인 세인 대표변호사
이용호 게이트 특검 특별수사관, 아주대 법대 교수, 사법연수원 외래교수(형사변호사실무), 사법시험 및 변호사시험 시험위원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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