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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파나마운하, 그린란드 매입, 캐나다의 미국 편입. 미국이 영토 확장을 지속해서 거론하고 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이게 말이 되나 싶지만,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의미심장한 법안이 마이크 리, 존 커티스 공화당 상원의원에 의해 발의되었다. 핵심 내용은 미국 해군 함정을 동맹국에서 건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1920년 Merchant Marine Act of 1920(일명 존스 법)을 수정하는 것이다. 보호주의의 상징인 이 법은 미국 내에서 수송에 사용되는 선박은 미국 내에서 제조되고 미국인이 소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차 대전 종전 후 해군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미국의 조선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그런데 나중에는 미국 조선업의 경쟁력을 약화한 원흉이 된 법안이다. 설상가상 1965년과 1968년에는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이 미국 군함과 부품의 외국 조선소 건조를 금지했다.
미국 조선업은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의 보조금 삭감 이후 상업용 선박 자체를 만들 수 없는 지경으로 붕괴했다. 이후 해양패권 국가인 미국의 건함능력은 위기 상황이 되었다. 2023년 미국 해군 브리핑 자료에 따르면 중국이 1년에 2,325만 톤을 건조할 수 있는 데 비해 미국은 오직 10만 톤만 건조할 뿐이다. 2024년 미 해군의 project 33 보고서에서는 한국의 이지스 구축함인 정조대왕함의 건조 비용이 8천억 원인데, 만약 같은 배를 미국에서 만들었다면 2조 1천억 원이 들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건조 기간도 3배 차이가 난다. 즉 생산경쟁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2025년 2월 5일 공화당 상원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핵심 내용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국가나 북대서양조약기구 소속 국가에게 미 해군 함정 건조를 맡길 수 있다.”라는 것이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되어 미 해군이 해군력 재편을 위해 함정을 동맹국에서 건조할 수 있다고 하면 현실적으로 중국 다음 세계 2위의 조선 능력을 갖춘 한국이 선정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미국은 그린란드 매입을 타진하면서 북극해를 개척하고자 한다. 여기에 40척의 쇄빙선을 도입하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까지 했다. 영토 확보와 해군력 강화로 요약되는 현재 현상은 다분히 20세기적이다.
이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이 있다. 그린란드의 지정학, 파나마운하의 지정학, 북극해의 지정학이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동산 사업가로서의 시각도 제기된다. 제해권 장악을 위한 미국 해군의 예산 증대를 위한 노력과 보수 싱크탱크의 프레임 구성 논리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미국 역사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변경(frontier)’의 확대다.
미국의 역사는 변경 확대의 역사이다. 특히 동부에서 시작한 미국은 서부로의 이동을 통해 미국인이라는 다문화 정체성을 만들었다. 1893년 프레데릭 터너는 미국 역사학회에서 “미국사에서 있어서 변경의 의의”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미국 역사에 ‘변경’이란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동부지역에서 점진적으로 서부 지역으로 변경을 끊임없이 확장한 미국의 역사는 미국인들에게 확장적인 삶을 제공했고, 이동성이라는 특성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 역사적인 논문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이 난다. “미국 발견 이후 400년이 되는 지금, 헌법 제정 이래 백 년의 삶이 끝나는 지금, 변경은 없어졌고 이와 함께 미국사의 첫 번째 시기가 막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철학적인 차원과 역사적인 접근을 통해 변경을 확대해온 미국 정체성을 복원하기 위해 외교정책을 정교하게 다듬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확실한 것은 미국의 이익이란 목적과 미국이 보유한 군사력과 경제력이라는 권력 자원을 활용하는 현실주의에 기초한 대외정책 기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에서 현재 미국의 영토 확장은 1890년대 미국의 변경이 아메리카 대륙 내에서 끝난 뒤 스페인과의 전쟁과 해외영토 팽창이라는 제국주의로 나갔던 1898년의 역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미국은 해외에서 새로운 변경(frontier)을 찾고 있다. 이를 통해 다시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변경을 찾아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 다시 서부(미지의 땅)로 이동하는 것, 새로운 영토에서 미국의 도전정신을 확인하는 것. 이런 것이 미국을 다시 미국답게 만들 수 있다.
미국은 국내외로 위기 상황이다. 미국 패권에 대한 중국, 러시아, 이란의 다양한 도전과 미국 민주주의의 약화와 공화주의의 위기 등이 맞물린 현 상황에서 미국인을 단결시키면서 관심을 전환할 이슈가 있으면 매우 유용하다. 트럼프의 정치적 감각이 본능적으로 이 부분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터너의 말을 빌리면 미국은 다시 미국사의 새로운 시기를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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