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가족법상의 동성혼 인정 아닌 ‘사회보장제도’로 허용
5인 대법관 “실질적 혼인관계로 보기 어렵다”며 반대 의견
[법률저널=이성진 기자] 사실혼 관계인 동성 배우자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2023두36800)이 나왔다.
민법상 인정되지 않는 동성 부부의 법적 권리를 일부나마 인정한 최초의 대법원 판단으로, 대법원은 동성 부부를 ‘부부 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라고 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지난 18일 소모 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국민건강보험법령에서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는데도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라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 행위이고 그 침해의 정도도 중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민법 등 가족 법제와 다른 사회보장제도의 특성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피고인 건보공단는 평등원칙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내지 실현할 책임과 의무를 부담하므로 그 차별 처우의 위법성이 보다 폭넓게 인정될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에 “피부양자 제도의 본질에 입각하면 동성 동반자를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며 “동성 동반자도 동반자 관계를 형성한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존해 스스로 보험료를 납부할 자력이 없는 경우 피부양자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법원의 이날 판결이 ‘동성혼’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다만 “동성 동반자를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에 준해 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문제와 민법 내지 가족법상 ‘배우자’의 범위를 해석·확정하는 문제는 충분히 다른 국면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장제도 아래서는 동성 부부를 법적으로 허용되는 부부와 유사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는 직장가입자와 단순히 동거하는 관계를 뛰어넘어 동거·부양·협조·정조의무를 바탕으로 부부 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이라며 “피고가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과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피부양자 제도와 같이 동성 부부에게 허용되는 ‘경제적 권리’가 향후 확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피부양자 등록 배제가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했다는 다수 의견에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김선수·노정희·김상환·이흥구·오경미·서경환·엄상필·신숙희 대법관이 동의했다.
반면 이동원·노태악·오석준·권영준 대법관은 “배우자는 이성 간의 결합을 본질로 하는 혼인을 전제로 하는데, 동성 간의 결합에는 혼인 관계의 실질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합리적 근거 없는 자의적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는 반대 의견을 남겼다.
대법원은 건보공단이 소씨에게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없다고 통보하는 과정에 절차적 하자도 있다고 판단했으며, 이 의견에는 대법관 전원이 동의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동안 피부양자로 인정될 수 없었던 동성 간 결합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을 보다 충실하게 보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소씨는 동성 반려자 김모 씨와 2019년 결혼식을 올리고 이듬해 2월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인 배우자 김씨의 피부양자로 등록됐다. 하지만 그해 10월 ‘피부양자 인정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단에서 보험료를 내라는 처분을 받았다.
이에 소씨는 “실질적 혼인 관계인데도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부인하는 것은 피부양자 제도의 목적에 어긋난다”며 행정소송을 냈지만, 1심은 소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2심을 심리한 서울고법은 작년 2월 건보공단의 보험료 부과 처분이 동성 부부를 이유 없이 차별하므로 잘못됐다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