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합격 위해 시험 특성에 맞춰 전략적으로 공부”
“등기 관련 정책 수립 및 제도 개선에 기여하고 싶어”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법원행시는 각종 고시 및 전문자격사시험 중에서도 공부해야 할 분량이 많고 시험 자체도 어려우며 선발인원까지 적어 합격하기까지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한 시험으로 알려져 있다. 또 법학에 대한 깊고 폭넓은 지식을 요하기 때문에 사법시험을 준비한 경험이 있거나 로스쿨이나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올 법원행시에서 수석합격을 차지한 주인공은 기존의 법원행시의 틀을 벗어난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먼저 통상 법원사무직에서 나오던 수석합격자가 등기사무직에서 배출된 점, 이공계 출신에 기술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법원행시에 도전하게 된 점, 법무사시험과 법원행시를 동시에 준비하면서 두 시험 모두에서 동차 합격에 수석의 영광까지 거머쥔 점이 제40회 법원행시 수석합격자 박원규씨가 남긴 기록이다.
보기 드문 성과를 보인 그에게 소감을 묻자 “작년 법무사시험에서 수석 합격했는데 올해 법원행시에서도 수석 합격하게 돼 정말 영광이다. 운 좋게 합격한 것이라 생각하고 그만큼 열심히 공직에 임할 생각”이라며 합격의 기쁨을 넘어 겸손한 마음으로 새로운 의지를 다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이공계 출신인 그가 법원행시라는 분야도 다르고 합격하기도 어려운 시험에 도전한 이유가 궁금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박씨는 기술직 7급 공채로 특허청에 입직해 약 6년간 특별사법경찰관 업무를 수행했다. 그는 “법학에는 문외한이었으나 업무 수행을 위해 형사법, 지식재산권법 등을 공부하면서 법학에 흥미가 생겼고 업무 관련 전문성을 갖출 겸 재직 중 변리사 공부를 병행했다”고 말했다.
2018년에 치렀던 1차시험에는 합격했지만 2차시험에서는 고배를 마셔야 했다. 하지만 법학을 공부한 경험은 법학 전문성을 살려 공직에서 활용하고 싶다는 새로운 꿈으로 이어졌고 약 1년간 진로를 고민하다 2021년 1월 과감히 퇴직을 하고 법무사시험과 법원행시 등기직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그해 9월 중순까지는 법무사시험 준비에 집중했고 이어 올해 4월 말까지 법원행시 공부를 한 결과 모두 동차로 수석합격을 하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이처럼 단시간 내에 큰 성과를 낸 비결에 대해 그는 “법무사시험은 행정법을 제외한 대부분의 과목이 법원행시와 겹쳐 많은 도움이 됐다. 다만 퇴직하기 전에도 업무 수행 및 변리사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민형사법을 꾸준히 봤고 그런 점이 수험 기간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특히 수험을 위한 전략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득점 합격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박씨는 “특별한 비법은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수험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학문을 쌓는 게 아니라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고 빠른 시간 내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시험에 맞게 공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법원행시는 다른 법학 시험과 달리 학설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고 판례 중심으로 출제가 되기 때문에 기본서를 읽으면서 전체 흐름과 목차를 익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판례부터 지엽적인 판례 순으로 암기를 해서 ‘논리적으로 맞는 위치에’, ‘적절한 판례를 넣고’, ‘중요 키워드를 현출’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학설 공부에 대한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출제 경향이 일관적이지 않고 단문 형식의 문제가 출제된다는 점, 판례 하나로 50점 통문제를 내는 경우가 있어 해당 판례를 모를 경우 바로 불합격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꼼꼼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도 법원행시 준비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요소로 꼽았다.
2차뿐 아니라 1차시험도 법원행시는 타 시험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그는 “1차시험은 객관식이지만 개수형 문제가 다수 출제되기 때문에 소거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지문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풀어내야 한다”며 법원행시 1차시험의 특징을 소개했다.
이어 “또 출제범위가 매우 넣고 지엽적인 판례가 나오기 때문에 기본서와 헌민형 ox 어플을 이용해서 최대한 많은 양의 판례를 암기하려고 노력했고 대법원 홈페이지에서 중요 판례 공보를 확인해 최신판례를 보충했다”고 법원행시의 특징을 반영한 1차 공부 방법을 전했다.
1차에서 가장 어려웠던 과목은 헌법이었다. 퇴직 후 전업 수험생이 되기 전에 공부한 법학 분야는 주로 민형사법이었고 법무사시험에서도 헌법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기 때문에 꼼꼼하게 공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박씨는 “개인적으로 헌법, 행정법 등 공법을 잘 이해하지 못해 어려웠는데 가장 못하는 과목인 만큼 시간을 많이 투자했고 부속법령도 최대한 많이 암기하려고 노력했다. 또 헌법재판소 홈페이지에서 직접 판례 공보를 확인해서 최신판례를 보충하는 등 노력을 했지만 결국 국회법 등 부속법령을 자세히 외우지 못해 결과는 67.5점으로 저조했다”고 아쉬워했다.
2차에 대해서는 “1차시험과 다르게 전체적인 내용을 골고루 묻는 것이 아니라 통상적으로 특정 사례가 제시되면 그와 관련된 판례를 서술하는 것이 득점의 핵심이기 때문에 일단 과목별로 기본서를 1회독 한 후 사례집을 보거나 중요판례, 최신판례를 공부했다”고 설명했다.
사례집을 풀 때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목차만 작성하고 구체적인 내용과 판례는 머릿속으로 되뇌면서 모범답안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법원행시 맞춤 교재가 없는 상법의 경우 법무사 1차 때 보던 상법 기본서를 그대로 보되 기본서에 실린 판례 원문을 하나하나 인터넷으로 찾아 중요 키워드를 암기했다.
2차에서도 공법 분야 과목인 행정법이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9월에 시작해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과목이기도 했고 공법의 법리나 용어가 쉽게 와닿지 않았다는 것. 박씨는 “수험은 ‘특정 과목을 잘하는 것’보다 ‘딱히 못 하는 과목이 없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1차 헌법과 마찬가지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기본서와 중요판례, 최신판례를 중심으로 공부했다”고 약점에 대한 대처법을 전했다.
논술형인 2차시험은 알고 있는 것을 답안에 얼마나 잘 현출해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박씨는 ‘문제를 꼼꼼히 읽고 묻는 것을 중심으로 대답’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는 “논술형 시험은 아는 내용이라도 문제를 잘못 해석해서 첫 단추를 잘못 꿰어버리면 ‘지옥행 특급열차’를 타게 된다”며 논술형 시험에서 출제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근거를 쓸 때 조문인지 판례인지를 정확히 적시하고 시간과 분량 조절에 신경을 썼다. 판례를 쓸 때는 최대한 중요 키워드들을 많이 넣으려고 노력했으며 문제에서 주어진 단서들을 최대한 답안지에 언급해 근거로 삼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관문인 면접시험도 치열하게 준비했다. 등기직의 경우 2차 합격자 3명 중 1명은 탈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박씨는 이틀간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인성검사를 치른 후 2차시험 합격자들과 스터디를 꾸려 실제 면접과 같이 집단토론과 자기소개서를 기반으로 예상 질문들을 주고받았다.
실제 면접에서는 조를 나눠 등기사무직 합격자 3명이 국민참여재판의 활성화에 대해 토론을 했고 면접관이 요구하는 형식대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개별 면접에서는 자기소개서를 기반으로 공직관이나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등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박씨는 “면접은 1, 2차에 비해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경쟁자들이 모두 2차시험까지 합격한 우수한 분들이고 그중 누군가는 탈락하기 때문에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며 “면접 결과는 우수/보통/미흡으로 나뉘는데 우수를 받으려고 하기보다는 미흡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혼자 준비하다 보면 자신이 모르는 단점이 노출될 수 있으므로 스터디를 통해 이런 부분을 서로 고쳐나간다면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면접 준비과정은 가장 힘들었던 경험이기도 했다. 그는 “면접 스터디를 진행하면서 만난 분들이 정말 좋은 분들이고 정이 많이 들었는데 이 중에서 누군가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 정말 마음이 아팠다”며 “이 시험은 국민을 위해 일할 공직자를 뽑는 것인 만큼 면접은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가능한 한 모두가 합격할 수 있는 유익한 스터디가 되도록 노력했는데 불합격자가 발생해 동료로서 정말 안타까웠다”는 심경을 전했다.
수험기간 중에 있었던 가장 즐거웠던 일은 아버지가 된 것이었다. 박씨는 “수험 기간 중인 작년 12월에 아들이 태어난 일이 가장 즐거웠던 경험”이라며 “아들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통상적인 수험기간에 비해 매우 짧은 기간에 합격을 했지만 그만큼 시간은 압축적으로 써야 했다. 그는 실력을 충분히 쌓기에 시간이 너무 촉박했기에 체력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고 했다. 그래도 공부가 잘되지 않을 때는 아내와 당일치기나 1박 2일 정도의 짧은 여행을 하며 새로운 곳에도 가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 이런 시간을 통해 ‘내가 왜 이 시험을 준비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동기 부여를 한 후 돌아와 다시 공부에 집중했다.
그와 같은 꿈을 꾸며 법원행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전하는 응원 속에도 이 같은 경험이 반영됐다. 박씨는 “법원행시를 준비하는 모든 분들이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긴 시간 슬럼프 없이 꾸준히 공부할 수 있도록 자기만의 동기를 찾았으면 좋겠다. 왜 내가 법원 공무원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 답을 찾는다면 공부하는 시간이 그리 힘들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렇다면 그가 수험기간을 견디게 해 준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그 답을 확인할 수 있을 법원 공무원으로서의 포부를 들어봤다. “상업등기, 부동산등기, 가족관계등록 등에 전문성을 갖춘 공무원이 되고 싶다. 각 지방의 등기국을 경험하면서 실무 경험을 쌓아 언젠가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법원행정처에서 등기 관련 정책 수립이나 제도 개선에 기여하고 싶다”는 그의 포부가 현실이 될 날이 기대된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법원행시라는 쉽지 않은 도전을 선택하고 결국 꿈을 이루기까지 그의 곁에는 응원하고 도와준 고마운 이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을 향한 진심이 가득한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퇴직하고 수험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제가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데 있어 와이프가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덕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고, 앞으로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또한 면접스터디를 같이 준비한 동기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처음으로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나 공감대를 형성하고, 많은 걸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