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예전에는 도서대여점이나 서점이 동네에도 몇 곳씩 있어서 쉽게 소설이나 출판 만화를 직접 확인하고 나서 소장하고 싶은 책을 구매할 수 있었지만 요새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래서 일단 광고를 통해 제목이나 표지, 대략적인 설명이 마음에 드는 책을 접하게 되면 웹서핑을 통해 리뷰들을 검색해보고 느낌이 좋은 책을 구매하곤 한다. 마치 만나보지도 않은 사람의 사진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한 평판 조사나 좀 해본 후 사귀기로 결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비유를 해보자니 굉장히 황당한 방법인 것 같지만 운이 좋아서인지 촉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나름의 정보 조사가 효과를 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책을 구매할 때 성공 확률은 꽤 괜찮은 편인 것 같다. 이번 기자의 눈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불과 며칠 전에 구매에 성공한 만화책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불교적 세계관에 삶과 죽음, 사람과 귀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의 제목은 ‘극락왕생’이다. 간단히 설명을 좀 하자면 첫 에피소드는 당산역에 출몰하는 귀신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합정역과 당산역 구간에 나타나서 자신을 볼 수 있는 인간에게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를 부르도록 요구하는 이상한 귀신이 있다.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섭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겠지만 특별히 큰 해악을 끼치는 악귀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존경하는 지장보살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찬 도명존자는 당산역 귀신을 지옥으로 보내 공을 세우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계를 관장하는 관음보살이 개입해 도명존자에게 자비심을 추궁하며 당산역 귀신을 극락왕생의 길로 이끌 것을 명령한다.
뜻밖의 부활을 하게 된 당산역 귀신의 생전 이름은 박자언, 부산에서 태어나 바다를 보며 자랐고 대학 진학과 함께 서울에 올라와 바다를 그리워하며 홀로 살아가던 이십대 여성이었다. 어떤 사정으로 어떻게 죽게 됐는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박자언에게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로 돌아가 1년간을 다시 살아야 하는 시련이자 기회가 주어진다. 그 1년 동안 깨달음을 얻어 극락왕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도명존자와 박자언이 함께 1년의 시간을 보내며 도명존자는 보리심을 일깨우고 박자언은 극락왕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과정에 고등학교 3학년으로 다시 살아난 박자언이 귀신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만나는 여러 귀신과 신적 존재들과의 에피소드들이 곁가지처럼 이어진다. 굉장히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지나치지 않게 적당히 가벼운 웃음을 섞어서 전개하는 솜씨가 좋은 작품이다.
여러 에피소드 중 이번에 소개하고 싶은 것은 신발을 훔쳐가는 귀신에 관한 이야기다. 혹시나 앞으로 극락왕생을 접하게 될 독자의 재미를 반감시키기 않기 위해 최대한 간략히 얘기를 해보자면 박자언이 신발을 훔쳐 가는 귀신을 만났는데 소문에 의하면 신발을 훔치고 얼굴을 보고 나면 목숨까지 취하는 아주 무서운 귀신이라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된 그 귀신은 훔쳐온 신발들을 산처럼 쌓아두고 있었는데 신발을 그렇게 열심히 훔치고 모으는 이유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 귀신은 신발을 훔치는 일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왜 신발을 훔치고 모으는 일이 자신에게 그렇게 중요했는지, 그 이유를 찾으려는 것이다.
이 신발 훔치는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나 역시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하는 말과 행동, 내가 가는 길이 갖는 의미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생각해보지 않고 관성에 따라 그냥,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런 질문은 합격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는 수험생 독자들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 지금 슬럼프를 겪고 있는 독자들이 있다면 조바심을 내며 스스로를 밀어붙이기 보다는 이 공부가, 이 꿈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