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도 같은 성씨의 집단인 종중(宗中) 회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내려졌다. '딸들의 반란'으로 불린 이번 재판은 문중이 처분한 종중 재산의 분배를 둘러싸고 출가한 문중 여성들이 불평등하다고 소송을 제기한데서 발단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남녀 평등의 종중인(宗中人) 자격을 인정하면서도 동등한 재산분배를 가능케 하는 변경된 판례는 판결 선고 이후에 새로이 성립되는 법률관계에만 적용된다고 못박았다. 변경된 판례를 소급적용할 경우 최근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 동안 유지되어 왔던 종래 대법원판례를 신뢰하여 형성된 수많은 법률관계의 효력을 일시에 좌우하게 되고, 이는 법적 안정성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기초한 당사자의 신뢰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법치주의의 원리에도 반하게 되는 것이므로 적절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판결은 지난 3월 국회에서의 호주제 폐지법안 통과에 이어 여성의 법적 지위를 확고히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짚을 수도 있다. 또 여성 지위의 상승 외에 변화하는 사회의 흐름을 관습적 제도에 반영시킨 진보적 성향의 사례로 평가된다. 가족법 분야에서 양성평등의 실현은 법률의 개정을 통하여 이뤄져왔지만 이 판결은 실정법이 아니라 '관습법'의 영역인 종중의 구성원 자격과 관련하여 종래 관습법의 효력을 부정하고, 남녀 구분없이 성년이 되면 종중의 구성원이 되어야 함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양성평등을 한걸음 더 진전시킨 것이다.
사회의 거듭된 관행으로 생성된 사회생활규범이 관습법으로 승인되었다고 하더라도 사회 구성원들이 그러한 관행의 법적 구속력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않게 되었다거나, 사회를 지배하는 기본적 이념이나 사회질서의 변화로 인해 그러한 관습법을 적용해야 할 시점에서 전체 법질서와 부합하지 않게 되었다면 그러한 관습법은 법적 규범으로서의 효력이 부정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당연한 추세의 반영이며 오리려 늦은 감도 없지 않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조상을 아이들이 같이 존중하고 기릴 수 있도록 해야 진정한 가족 안에서의 양성 평등이 이뤄진다는, 바뀐 세상의 이치에도 들어맞는 판결이기도 하다.
종중은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봉제사 및 후손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형성되는 종족단체로서 공동선조의 사망과 동시에 그 후손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성립하는 것임에도,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남자만을 종중의 구성원으로 하는 종래의 관습은, 종중의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출생에서 비롯되는 성별만에 의하여 생래적으로 부여하거나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것으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변화된 우리의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아 그 정당성과 합리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종중의 목적과 본질에 비추어 볼 때 공동선조와 성과 본을 같이 하는 후손은 성별의 구별없이 성년이 되면 당연히 그 구성원이 된다고 보는 것이 조리에 합당하다.
이번 판결로 그동안 성인 남성의 전유물이던 종중 운영방식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종중에서 총회, 대표자 선임, 재산처분 등 법률행위를 할 경우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회원으로 인정해야 한다. 종중의 입장에서는 새로이 종원이 된 성년 여성에 대하여도 종중총회 소집통지를 해야하고, 남성들에게만 소집통지를 하여 한 종중총회 결의는 장차 그 효력이 문제될 수 있으므로 그에 대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성인이 되어야 종원이 되는 미성년자도 자신이 성년이 되기 전 종중이 재산을 나누면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종중에 관한 여러 문제를 통일적으로 규율할 법률을 만드는 것도 검토돼야 한다. 나아가 대법원 판결의 이면에는 권리 외에 의무를 포함한 종중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는 점도 되새겨야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