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지난 22일부터 이어지고 있는 5급 공채 행정직 2차시험을 취재하기 위해 시험장에 가느라 요새 기자는 매일 긴 시간을 대중교통 안에서 보내고 있다. 시험 셋째 날까지는 부쩍 무더워진 날씨 속에서 먼 거리를 오가는 육체적 피로에 본의 아니게 수험생들을 불편하게 해야 하는 상황으로 인한 심적 피로가 더해져 그냥 멍하니 정신줄을 놓고 그 시간을 보냈다.
기자의 눈을 쓰고 있는 오늘은 평소와 달리 최대한 가볍게 짐을 꾸리는 대신 가방에 책 한 권을 넣고 나왔다. 며칠 전 재밌는 책을 발견했는데 내 생각이 났다는 고마운 후배의 연락을 받았는데 그 책이 어제 도착한 것.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은 SF 작가로 명성이 높은 테드 창이 쓴 단편을 모은 작품집인데 기자는 오늘 시험장으로 이동하면서 첫 번째 작품을 다 읽었고 그 사이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그만 역을 하나 지나치는 바람에 부랴부랴 되돌아오는 생고생을 했을 정도로 작품은 몰입감이 대단했다.
기자의 정신을 쏙 빼놓은 테드 창의 첫 작품의 제목은 ‘바빌론의 탑’이었다. 제목을 보는 순간 딱 바벨탑이 떠올랐다. 인간의 교만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자 태초에 같은 언어로 소통하던 인간들이 신의 벌을 받아 서로 다른 말을 하게 된 계기가 된, 정규교육을 통해 영어를 배우면서 내내 원망했던 그 탑 말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광부로 수세기에 걸친 공사를 통해 하늘의 천장에 이를 정도로 높이 쌓아올린 탑의 정상에 올라가 그 천장을 파내고 마침내 신의 세계에 닿는 임무를 맡게 됐다.
그 탑은 너무도 높고 높아서 몇 달에 걸쳐 올라가야 했다. 도무지 상상도 되지 않는 규모다. 그렇다보니 탑의 중간 중간에 지점을 두고 수레꾼들과 탑을 쌓는 인부들이 오가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자연스럽게 마을도 만들어졌다.
태어나서 한 번도 대지를 밟아본 적 없이 오직 탑 위에서 살아온 세대도 생겨났다. 탑 바깥에 줄을 엮어서 테라스를 만들어 작물을 경작하기도 하고 주기적으로 오가는 수레꾼이나 인부들을 통해 생계에 필요한 물품들을 공급받고 거래도 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기자로서는 탑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생활을 묘사하는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날 지경인데 탑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탑 밖으로 다리를 걸쳐 앉고 뛰어논다.
높이 더 높이 오르고 또 올라갈수록 풍경은 달라진다. 태양보다 탑의 높이가 위로 솟자 테라스에서 키우는 작물들도 아래로 목을 떨구고 자란다. 밤은 저 멀리 아래에서부터 위로 찾아온다. 주인공은 그런 낯선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고민과 상념을 품으며 탑 위로 오르고 또 올라 하늘의 천장에 닿았다.
노아의 방주로 유명한 대홍수의 이야기가 신화가 아니라 생생한 기억에 가까운 시절이기에 하늘의 천장을 뚫고 올라가는 작업은 하늘의 저수지를 건드려 지상에 다시 한 번 대재앙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중점에 두고 이뤄진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술술 풀리기만 할까.
기자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탑으로 오르는 과정에 있었던 보다 세세한 이야기와 하늘의 천장을 뚫고 올라가면서 생긴 일, 그리고 결말은 앞으로 ‘바빌론의 탑’을 읽게 될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려고 한다. 작은 힌트를 하나 준다면 우리가 아는 바벨탑의 최후와 같은 형태의 결말은 아니다.
기자는 ‘바빌론의 탑’을 읽고 그 탑이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 세계의 구조와 같은 좀처럼 닿기 힘든 위대한 진리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한 인간의 삶, 한 인간의 작은 생각 하나, 찰나의 가치나 의미를 떠올렸다. 뭐, 한 인간의 내면을 소우주라고도 표현하지 않던가.
법률저널의 독자들도 지금 각자 자신의 탑을 쌓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도달하고 싶은 곳, 알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시간과 노력의 벽돌이 쌓이고, 높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올라간다’는 말에도 단순히 ‘상승’을 넘어선 의미가 있다. 때로 고달프고, 지치고, 의심이 들고, 두려운 순간도 있겠지만, 아래에서는 결코 보지 못한 풍경을 만나는 날도 있을 것이다. 탑을 쌓고, 오르는 지금 이 모든 순간이 독자들의 삶을 더욱 빛나고 의미 있게 만드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