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사법참여제도의 도입 여부와 그 구체적 방향 결정을 위해 국내 사법 사상 최초로 형사 배심·참심에 관한 모의재판이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대법정에서 사법개혁위원회의 주관으로 열렸다. 이번 모의재판은 국민이 법의 심판을 받는 방식을 결정하는 첫 시험대라는 점에서 법조계는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이 쏠린 만큼 아주 신선하고 중요한 시험이었다는 평이다.
배심제는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유·무죄를 판단하고 법관은 형량만을 결정하는 미국식 제도인 반면에 참심제는 보통 두 세명의 참심원이 법관과 함께 피고인의 유·무죄는 물론 양형까지 판단하는 독일식 제도다. 어느 쪽이 채택되든 우리 사법 사상 최초로 재판과정에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가능성을 타진하는 자리였다. 특히 배심제는 일반 시민을 판단의 주체로 내세움으로써 판사, 검사, 변호사로 하여금 보다 원칙에 충실한 절차진행에 노력토록 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의 사법참여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일선 법관들 중 절반 가량인 52.9%가 일반 국민의 재판 참여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사법개혁위원회가 검토 중인 배심·참심제 도입에 찬성했다. 이는 일선 법관들이 자신들의 권한을 제한할 수 있는 배심·참심제 도입에 긍정적인 의견을 표시한 것은 이들 제도가 외국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고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대안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개위가 국민의 사법참여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터에 김영란 신임 대법관도 사법개혁의 시급한 과제로 배심제와 참심제 도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국민의 사법참여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하지만 일각에서의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사법적 판단에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참여하는 이 제도에 대해 우려도 만만찮다. 배심제(참심제)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고 배심원들의 편견과 선입견이 작용해 유·무죄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내릴 위험도 크다는 것이다. 자기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받은 미국의 O. J. 심슨은 강력한 물증이 있었는데도 유명 미식축구선수였다는 것과 인종적 선입견 때문에 무죄평결을 내린 예를 들고 있다. 또한 시카고 법정에 선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 처럼 배심원을 매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심슨은 1997년의 민사소송에서는 25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평결을 받았다. 형사재판에선 배심원 12명중 흑인이 9명이었지만 민사재판에선 백인이 9명이었기 때문에 심슨 재판은 인종적 편견이 평결에 영향을 끼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배심재판은 검사와 변호인이 배심원단 앞에서 치열한 변론 경쟁을 펴게 되므로 재판이 충실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학연과 혈연, 지연이 사방으로 얽힌 한국사회에서 배심원단이 얼마나 이런 관계망과 개인적 선입견에서 벗어나 공정한 평결을 내릴 수 있겠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따라서 이 제도의 성공 여부를 위해서는 공정하게 배심원과 참심원을 선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져야 하고, 법관에게 최종 비토권을 주거나 재판의 지휘권을 맡기는 등 법관의 독립성과 재판의 공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아울러 배심제든 참심제든 사법권 행사의 남용을 견제하고 사법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해 시민적 가치를 반영함으로써 사법결정에 대한국민의 신뢰와 친숙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