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야채 마을과 과일 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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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야채 마을과 과일 마을 이야기
  • 안혜성 기자
  • 승인 2015.04.03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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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야채를 키우는 A마을과 과일을 키우는 B마을이 있다. 원래도 사이가 막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크게 부딪치는 일 없이 그럭저럭 평화롭게 지내왔다. 가끔 A마을 사람들이 B마을의 밭에 들어가 채소를 재배하기도 하고 때로는 B마을 사람들이 A마을 과수원에 과일나무를 심고 거두는 일도 있었다. 서로 못마땅하게 생각은 해도 수확이 풍성해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A마을에도 B마을에도 주민들이 늘어났다. 결국 각자의 마을에서 재배한 과일이나 채소만을 팔아서는 배불리 먹고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A마을 사람들은 “옛날에는 우리 마을에 주민 수가 적었기 때문에 B마을 사람들이 우리 밭에 들어와 채소를 재배하게 내버려 뒀지만 지금은 주민 수가 많으니 더 이상 우리 밭을 침범하게 둘 수 없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A마을은 모든 종류의 작물을 재배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인데 그 동안 B마을에서 과일을 재배하게 했던 것은 우리 마을 주민이 부족해 채소를 재배하는 것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며 “이제는 주민수도 늘었고 전문적으로 과일재배를 가르치는 학교도 설립했으니 더 이상 B마을에서는 과일을 재배하지 말라”며 호통을 쳤다. B마을 사람들은 펄쩍 뛰며 분개했다. B마을 사람들은 “우리 마을은 원래 과일을 재배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마을이고 과일재배도 땅에서 작물을 키워낸다는 점에서는 야채재배와 비슷한 면이 있지만 과일재배는 야채재배와 엄연히 다르다”며 “오히려 과일을 재배하는 능력도 없으면서 그 동안 우리 마을 과수원을 침범한 A마을 사람들이 질 나쁜 과일을 소비자에게 파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고 반발했다.

변호사의 변리사·세무사 자격 자동부여 제도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변호사업계와 변리사업계의 주장을 A마을과 B마을에 빗대 이야기로 재구성해 본 것이다. 이 외에도 변호사업계와 변리사업계는 변리사에게 특허침해소송의 대리권을 인정할 수 있을지를 두고 오랜 갈등을 이어오고 있다. 변호사와 변리사뿐만 아니다. 변호사업계는 노무사와 법무사, 세무사 등과도 소송대리권 문제로 대립하고 있으며 변호사 외에 각 전문자격사 간에도 업역 다툼이 치열하다. 최근에는 노무사의 업무범위를 규정한 노무사법 개정안을 두고 행정사들이 반발하고 있고 기존에 노무사의 업무에 속했던 고용·산재보험사무의 대행을 세무사에게 허용하는 법안을 두고 두 업계가 힘겨루기를 한 끝에 세무사들의 승리로 귀결되는 일도 있었다.

각 입장을 들어보면 다들 그럴싸하게 들린다. 아무런 논리적 근거도 없이 무턱대고 “내 밥그릇은 불가침이야”라거나 “네 밥그릇도 원래는 내 것이니 돌려줘”라고 우기지는 못한다. 이것이 왜 내 밥그릇인지, 혹은 네 밥그릇이 왜 내 것이 되는지에 대해 수없이 많은 근거들을 들이댄다. 이 자리에서 편 가르기를 하거나 개인적인 생각을 털어놓지는 않겠지만 솔직히 더 타당하게 들리는 이야기들이 있기는 하다.

내 밥그릇을 지킬 수 있는, 원래 내 것이었던 밥그릇을 찾아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법을 만드는 국회를 한 편으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각 업계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애쓰는 것도 여론을 유리하게 형성하고 궁극적으로 여론의 힘을 통해 국회를 움직이기 위해서 일 것으로 생각한다. 여론을 한 편으로 만들고자 하는 각 업계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국민들은 정직한 농부, 정직한 장사꾼을 원한다는 것이다. 과일을 키울 권리, 야채를 키울 권리, 이것들을 판매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느냐도 물론 중요한 문제지만 국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정성을 들여 제대로 키워낸 채소와 과일을 적정한 가격에 구매하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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