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로스쿨이 이번 2학기를 시작으로 학점부여에서의 ‘엄격한 상대평가제’를 중단하려고 했지만 결국 무산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현 로스쿨의 엄격한 상대평가제는 일부 과목만을 제외하고 수강생들의 성적 비율을 A+(7%), A0(8%), A-(10%), B+(15%), B0(20%), B-(15%), C+(9%), C0(7%), C-(5%), D(4%)로 의무적으로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2010년 12월, 법무부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가 2012년 1월 시행 제1회 변호사시험의 합격률을 정하기 직전, 로스쿨협의회가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둘러싸고 법조계 및 정부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합격률 제고 담보를 위해 스스로 결정하여 시행한 조치였다. 이같은 선택은 결국 ‘입학정원의 75% 이상’이라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 그것도 대학원 과정이라는 점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제도가 2011년 3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학생들간 의자 뺏기’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수강신청이 진행되면 학생들은 ‘눈치작전’과 함께 ‘학점 따기 전쟁’을 치르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과목에서도 유·불리를 따져 수강을 포기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본 제도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교수들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서울대 로스쿨은 문제의 심각을 인식하고 지난 상반기에 이같은 ‘엄격한 상대평가’ 대신 학업성취도에 따라 학점을 부여하는 ‘절대평가제’를 일부 도입하고, 학점 배정에서 교수 재량을 확대하는 것을 뼈대로 한 성적평가 개선방안을 내고 2학기부터 적용하려고 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전국 25개 로스쿨의 합의 하에 추진된 ‘엄격한 상대평가’를 포기하고 독자행보를 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학교육은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교수와 학생이 결정하라고 헌법도 명하고 있다. 외부의 간섭과 압력으로 벗어나, 제대로 된 유능한 국가의 인재를 배출하라는 취지다. 그럼에도 최고의 학문기관인 대학원에서 삼분사분 의무적으로 학점을 쪼개고 일부는 과락을 맞도록 한다는 것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흔히, 로스쿨 출신자들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에 대해 평균 90% 이상을 넘는 의사고시의 합격률을 적용하라고 한다. 의대·의학전문대학원에서는 교수와 학생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도제식’ 교육을 실시하기 때문에 90%의 합격률을 보장해도 사회적 비판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도제식 교육이 로스쿨에서도 필요하고 근저에는 상호신뢰가 바탕이 된다.
교수로서는 “이 정도 실력이면 모두에게 A를 줘도 된다”라는 판단이 흐려져서는 안 된다. 다만, 제자들의 사회적 평가에는 책임질 일이다. 이것이 대학자치의 근간이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담보하기 위해 교수는 울며 겨자를 먹여야 하고 학생은 이를 받아먹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과연 교수와 학생간의 신뢰가 형성될까 심히 의심스럽다.
향후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시험 탈락자는 속출할 수밖에 없다. “비록 시험에는 탈락했지만 실력만은 대단하다”는 일개 교수의 취업 추천서도 의미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모두가 B학점을 받았지만 모두가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는 교수의 학문적 자존감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학생들도 서로가 적이 되는 마당에 진정한 대국민 법률서비스에 이바지 하는 법적해결능력을 협력을 통해 이루어낼 수 있을 지 의문스럽다.
이미 로스쿨협의회에서도 현 엄격한 상대평가를 완화된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절대평가를 원칙으로 하고 일부 상대평가를 적용하는 방안으로의,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