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국회 임명동의를 받기 전에 국무총리서리를 지명해 법리논쟁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무총리 서리의 임명과 총리서리의 업무수행이 헌법에 합치하는가에 관한 논란은 이번 경우를 계기로 지금까지 논란을 거듭해온 총리서리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총리서리 임명을 둘러싼 위헌 논란이 역대정권의 관행과 얽힌 해묵은 논쟁거리이긴 하지만, 더 이상 헌법의 기본질서가 정쟁(政爭)의 관점에 휘둘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헌정사적으로 볼 때 역대 총리중 '서리'의 꼬리표를 달았던 인물은 모두 20명으로 내각제를 채택했던 제2공화국, 총리에 대한 국회 동의제 자체가 없었던 제3공화국, 총리서리 임명을 억제했던 문민정부 시절을 제외하면 상당수 총리가 관행적으로 이뤄져왔다. 그렇다고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막기 위해 국무총리가 국무위원과 행정 각부의 장관을 제청하도록 되어있는 헌법조항을 무력화시키면서까지 총리서리 제도에 집착해야 할 근거를 찾아내기 어려운 것 역시 사실이다.
우리는 '총리서리'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그리고 명료하게 매듭짓기 위해서는 정쟁을 떠나 순수한 헌법의 눈으로 보는 게 순리(順理)라는 생각이다. 현행 헌법 86조 1항은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또 87조 1항은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명기되어 있다는 점에서 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헌법의 정신이다. 헌법의 정신대로 한다면 총리서리는 없고 총리 내정자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총리서리와 장관을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건 헌법상 국회가 견제하도록 돼 있는 임명권을 남용한 것에 다름 아니다.
총리서리의 제도에 대해 헌법 학자들 간에 이론(異論)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서리는 헌법상의 제도가 아니다. 그 동안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이 국회의 임명동의 절차를 기피하기 위해 국무총리서리를 지명한 것은 위헌적인 관례였기 때문에 이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지난 98년 현정부 출범 이후 총리서리를 임명하자 한나라당은 위헌을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내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권한심판의 당사자 적격'이 없다고 해 각하 결정을 내렸지만 그 뒤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에게 권한쟁의심판의 당사자 적격을 인정했기 때문에 앞으로의 태도가 주목된다.
국무총리 임명은 대통령의 단독행위에 국회가 단순히 부수적으로 협력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회가 대통령과 공동으로 임명에 관여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국회의 동의는 국무총리 임명에 있어 불가결한 본질적 요건으로서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없이 국무총리를 임명했다면 그 임명 행위는 명백히 헌법에 위배되고, 대통령의 공무원임명권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임명해야 하는 구속을 받으며 자격요건이나 절차에 위반되면 중대한 흠결로 볼 수 있다.
국무총리서리를 지명해 국무총리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도 문제다. '서리'가 국무총리로서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기정사실을 만들어 국회의 임명동의 절차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헌법에 마련된 국무총리의 독립적 위상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헌법정신에 맞도록 총리나 장관의 임명절차를 철저히 준수해 관행을 바로잡는 게 헌법 정신을 지키고 민주정치의 기본을 세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