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법과 원칙’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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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법과 원칙’에 대한 단상
  • 이성진 기자
  • 승인 2024.06.1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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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이성진 기자]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8강을 넘어설 때로 기억된다. 대표팀에서는 ‘4강에 진출하면 선수들의 병역면제’를 흘렸고 정치권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법을 고쳐 이들에게 특혜를 선사했다. 들뜬 대다수 국민도 불꽃처럼 환영하며 법 개정을 응원했다. 찬성 측에서는 ‘국위선양’을 명분으로 내세웠고 열세에 몰린 반대 측에서는 ‘예외 없는 원칙’을 강조했다. 그 이후 참 많은 예외가 탄생하며 소위 ‘힘없고 배경 없는 이들만 현역으로 간다’라던 무력한 선배 세대 군인들의 힘없던 항거의 목소리가 지금은 더 무색하게 된 듯하다.

‘법과 원칙’. 대한민국 공직사회로부터 너무나 자주, 그것도 아주 강하게 듣는 말이다. 기자뿐만 아니라 저마다 같은 심정일 거라 단언한다. 특히 어떤 사안이나 사건을 조사하거나 심사해 결정하는, 법과 정의의 최전선에 있는 법무부, 검찰, 행정안전부, 경찰,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 등 사정기관(査定機關)을 통해서는 더 빈번하게 듣곤 한다. 당연히 그럴 것이 기관장들이 뉴스에 나올 때면 이구동성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라는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니 말이다.

‘법’, ‘원칙’은 고정불변의 상수에 가깝다. 한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행동의 기준이 되면서 해도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나누는 기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관에 유리하게, 당사자들에 유리하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와 같은 변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며 정의를 주창하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최측근의 각종 의혹에 대해 거부권을 남발하고, 누구는 비밀번호 잠금 묘수 하나로 70여 년 쌓아 올린 검찰 수사 비법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법무부장관까지 오르고, 숱한 비판에도 꿈쩍 않던 검찰총장은 임기 3개월을 남겨놓고서야 법과 원칙론을 내세우며 예외 없는 수사를 영혼 없이 내뱉는 현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자랑하며 광을 팔던 지휘관들은 한 사병의 죽음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 요구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며 기어이 하급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비겁한 조직 문화.

내로남불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치계, 밥그릇 챙기느라 히포크라테스를 울리는 의료계, 변호사는 의뢰인을 기망하고 그러한 변호사에 면죄부를 주는 법조계, 근엄한 척 정작 잇속에는 번갯불 같은 공직사회 등, 멀쩡하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욕심일까.

법에 문외한 기자는 종종 ‘왜 하나의 사안을 두고 변호사마다 해석이 달라요?’ ‘같은 사건인데 왜 1심 다르고, 2심 다르고, 3심이 다르죠? 그러니 너나 할 거 없이 대법원까지 끝까지 가려는 거 아닐까요?’ 등과 같은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면 ‘난들 알겠습니까, 지체 높으신 분들이 모두 똑똑해서 그런가 보죠’라면서도 ‘병원에 가면 의사들의 진료 결과가 제각각인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요’라는 말로 응수하곤 한다.

‘법’과 ‘원칙’. 따지고 보면 ‘문언’으로 명확하게 서술된 법조문에 대해서도, 그 분야의 전문가들도 해석을 달리하는데, 추상성을 지닌 ‘원칙’이야 위정자든, 공직자든, 전문자격사든, 일반 개개인이든 이현령비현령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겠다는 데 어찌할 방도가 없을 듯하다.

수험가에서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월급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공무원이 되는 거 아닌가요, 근데 왜 들어가서는 월급이 적다며 아우성칠까요?’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어느 정도인지 알면서 로스쿨에 진학하고서는 왜 합격률이 낮다고 데모하는 건가요?’ 등과 같은 내면의 불원칙을 두고 하는 질문들이다. 하지만 내면은 내면일 뿐, 현실의 법과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법이다.

봉사와 헌신하는 공무원이 되려고, 정의를 실천하는 법조인이 되려고, 생활 속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전문자격사가 되려고 오늘도 책과 씨름하는 전국의 수십만 청년 수험생들은 조만간 법과 원칙의 견고한 수호자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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