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은 신생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12년간 집권했다. 그가 초대 대통령으로 대한민국에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 그의 정치적 과오로 인한 부정적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승만은 그 과오를 압도할 만큼의 놀라운 업적을 갖고 있다. 그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없었다고 해야 하고, 그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없었다고 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그의 결단과 용기 그리고 헌신에 힘입어 지금의 자유민주공화국이 되었다.
신생국 대한민국에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한 것은 오롯이 이승만의 덕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화주의자였다. 그가 젊은 시절 조선왕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혁명을 시도하다 사형수가 되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화주의자였다. 그런 그였기에 이승만은 한국을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미국식 대통령제”를 도입한 국가로 만들었다. 이렇게 도입된 대한민국의 강력한 대통령제는 신생국의 정치를 안정시키고 그 뒤에 있을 국가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그는 한국전쟁 중에도 전국에서 선거를 치렀고 최초의 지방자치제 도입을 이뤄냈다. 그가 비판적 언론을 폭넓게 허용한 것도 높이 평가할만한 대목이다.
이승만은 동시에 처음부터 끝까지 민본주의자였다. 자본주의가 가져올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기업이윤을 노동자들에게도 분배하라고 못 박는 헌법을 통과시켰다. 건국헌법 제18조, 즉 ‘이익균점권’ 조항은 자본주의를 추구하되 거대 자본주의에 희생될 다수의 국민을 위한 제도였다는 점에서 가히 획기적이다.
경제 분야에서도 이승만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 무엇보다 농지개혁을 통한 경제개혁은 이승만의 대단한 업적이다. 집권 기간 인민들의 경제적 생활 수준에 있어 현격한 변화가 있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농지개혁이 한국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우선 농지개혁법의 입안 자체가 굉장히 “민주적”이었다. 토의를 통해 여러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북조선의 농지개혁과 비교해보았을 때 적어도 지주 계급 또한 자신의 이해관계를 주장하고 정치에 반영시킬 기회를 부여받았다. 농지개혁은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 엄청난 역할을 했다. 농지개혁을 통해 전체 면적지의 무려 92.4%라는 엄청난 면적이 자작 농지화되었다. 이러한 농지개혁은 농민들의 생산 의욕을 고취해 농업 생산성을 높였다. 농민들이 자신의 토지를 갖게 됐다는 점에서 자식의 교육에 엄청나게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이 마련됐다.
교육적인 면에서 이승만은 연평균 총예산의 10% 이상의 예산을 교육 부문에 투입했다. 초등교육 의무제를 도입해 1959년 전국 학력 아동의 95.3%가 취학하는 국가로 변모시켜놓았다. 문맹 퇴치 운동을 통해 45년 78%였던 문맹률을 59년 22%로 만들었다. 미국에 2만 명이 넘는 국비유학생을 보냈고 이들은 나중에 조국으로 돌아와 조국 발전의 기수가 되었다. 대학생이 엄청나게 증가해 60년에는 무려 10만 명이나 되었다. 이런 교육과 지식인 계층의 성장은 민주주의의 확산과 경제발전에 엄청난 이바지를 했다.
국방 분야에서 이승만은 미국과 UN의 참전을 끌어내 북한의 남침을 막아내고 휴전협정과 한미동맹을 통해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는 토대를 마련했다. 한미방위조약은 사실 이승만의 끈질긴 집념의 산물이다. 이승만이 1948년 8월 미국에 상호방위조약체결을 요청했을 때 “미국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이래 어느 국가와도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일이 없다”는 답변과 함께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이승만은 1949년 6월 주한미군이 철수한 후에도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원했지만, 미국은 ‘상호방위원조협정’ 같은 큰 실익 없는 협정만을 맺어주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반공포로를 석방하는 초강수로 일본이 아닌 한국이 제1세계의 진정한 최전방임을 각인시켜 지금까지 계속되는 한미동맹을 이끌어냈다. 그는 또한 6‧25전쟁 중 소위 ‘이승만 라인’을 선포했다. 이는 사실 일본의 야욕으로부터 독도를 지킨 회심의 한 수였다.
광복회장 이종찬이 이승만의 업적을 부정 또는 평가절하하고 이승만 기념관 건립도 못마땅해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종찬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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