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양심은 법관 개인의 신념이 아니라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직업적 양심으로 사실상 법관의 재량권을 보장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이런 ‘양심’ 규정을 비양심적으로 악용하는 판사들이 늘면서 이제는 헌법 제103조에서 ‘양심’을 삭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더는 판사에게 판결상의 양심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심’ 규정은 독일 헌법에서 유래해 일본을 거쳐 우리 헌법에 도입되었지만 정작 독일 헌법은 이를 삭제했다.
헌법까지 고쳐서 ‘양심’을 빼야 한다는 주장의 이면에는 사법의 정치화와 법원과 판결에 대한 엄청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판사의 이념에 따라 같은 사건에 너무도 다른 판결이 내려지는 일이 잦아지면서, 이건 고무줄이 아니라 아예 폭염 속 엿가락이라는 비난이 거세다. 너무도 속이 보이는 판결에 국민의 인내마저 바닥났다. 판사들까지 내 편과 네 편, 우리 편과 저들 편으로 편을 갈라 내 편은 무죄 네 편은 유죄, 우리 편은 석방 저들 편은 구속이라고 판결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가 이제는 동념무죄(同念無罪), 이념유죄(異念有罪)가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박병곤 판사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고교 및 대학 시절부터 특정 성향의 이념을 드러낸 박 판사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낙선한 대선 직후 “울분을 터뜨리고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고 적었다. 민주당이 패한 2021년 4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직후에는 “울긴 왜 울어”,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대사가 적힌 중국 드라마 캡처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박 판사가 올해 현 재판부를 맡은 이후 SNS 글을 삭제하거나 한국법조인대관 등재 정보 삭제를 요청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판결 논란을 염두에 둔 사전 행보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법관윤리강령은 법관이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은 2012년 법관의 SNS 사용과 관련해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를 야기할 수 있는 외관을 만들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박 판사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박 판사는 이를 대놓고 무시했다. 판사가 된 이후에도 노골적으로 정치 성향을 드러내더니 급기야 이념에 따른 정치적 감정적 판결을 했다.
법원은 사회질서와 정의를 바로잡는 마지막 보루다. 법원과 판사가 똑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판사의 정치적 성향이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면 국민은 더 이상 사법부를 신뢰할 수 없다. 사실을 확정하고 법을 적용하여 죄에 맞는 형벌을 내리는 것이 형사사법의 기본 원칙이자
법치주의의 뿌리다. 이번 박 판사 논란은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송두리째 뽑은 것은 물론 사법부 쇄신의 필요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사법부의 개혁이 필요하고 또 시급하다는 것이 이번 사건에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사법부는 법치주의의 가치를 훼손한 박 판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그에 걸맞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태의 재발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다음 개헌에서 헌법에 법관의 ‘양심’을 삭제하고 판사의 재량권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판사가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판결하도록 하되 이를 어기면 법적 책임을 지워야 한다. 이제 법원과 판사에게 ‘알아서 잘 재판하도록’ 맡길 수 없다. 판결 역시 법을 통해 제한해야 한다. 지금처럼 ‘양심’에 따라 재판하도록 놔두면 저들이 비양심에 의거 재판을 해도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
모든 개혁이 그렇듯이 사법개혁 또한 제도개혁 없이 성공할 수 없다. 이제 전근대적인 사법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법제·개정을 통해 법원 조직과 시스템을 개편하고 판사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1인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되는 형사단독제를 폐지하고 판사승진 및 재임용제도를 개편하여 불량 판사를 도태시켜야 한다. 대법관 변호사 개업 금지 등 법조 카르텔을 부수기 위한 근본적인 개혁도 서둘러야 한다. 사법개혁 서둘러야 한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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