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올해는 유난히 시험의 출제 및 관리 부실 문제가 눈에 띈다. 포문은 변호사시험이 열었다. 지난 1월 5일부터 9일까지 진행된 제10회 변호사시험은 공법 기록형 중 행정법 문제가 연세대 로스쿨의 강의 등을 통해 사전에 유출된 의혹이 제기된 데 이어 법전이 제공되는 모든 시험에서 금지되고 있는 법전 밑줄 긋기가 일부 시험장에서 허용됐고 논란이 커지자 시험 일정 중간에 법무부가 방침을 바꿔 시험 시간은 물론 쉬는 시간에 밑줄을 긋는 것까지 허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일부 시험장에서는 수험생의 핸드폰 벨소리를 종료벨로 착각한 시험감독관이 선택형 시험을 조기 종료시켰고 실랑이가 벌어지는 중에 수험생 중 일부가 가지고 있는 교재에서 답을 확인하고 수정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가 있었다.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시험의 공정성과 형평성 등을 현저히 훼손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임에도 아직까지 수험생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은 나오지 못했고 시험의 관리 책임자에 대한 고발과 국가배상청구소송 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변호사시험에서 발생한 사고들과는 결을 달리하지만 올 입법고시 1차시험도 큰 논란을 빚었다. 과거 입법고시 1차시험은 과락기준 점수가 곧 합격선이 될 정도로 지나치게 높은 난도로 변별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난이도 조정이 이뤄지면서 최근 몇 년간은 큰 문제없이 치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시 출제 경향이 과거로 회귀하면서 수험생들의 원성을 샀다.
시간 부족을 넘어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풀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난도에 악전고투를 치러야 했던 응시생들은 국회가 바라는 인재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했다. 실력을 검증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어려운 출제는 결국 누가 더 잘 찍었는지를 겨루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한 응시생은 “실력이 아니라 관운이 있는 사람을 뽑겠다는 취지인 것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난 9일 발표된 입법고시 1차시험의 합격선은 단 1명의 합격자를 낸 사서직이 61.67점으로 가장 높았고 일반행정과 재경직 모두 과락기준인 60점에 그쳤다. 법제직은 아예 합격자를 내지 못했으며 재경직도 예년의 1차시험 합격자 수에 크게 미달됐다.
변리사 1차시험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변리사 1차시험은 산업재산권법, 민법개론, 자연과학개론 3개 과목을 각 40문제의 선택형 시험으로 치르는데 이번 시험에서는 산재법에서 5개, 민법개론에서 1개에서 복수정답이 인정됐다.
이는 사실상 문제 출제에 오류가 있었음이 인정된 것으로 특히 산재법의 경우 40문제 중 5개, 즉 전체 문항 수의 8분의 1에 오류가 발생한 셈이 된다. 이처럼 많은 출제오류가 발생하자 수험생들은 시험에 대한 신뢰 하락과 출제자의 자질에 대한 의심의 시선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비단 올해만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 유출 같은 큰 사고는 아니었더라도 시험 출제와 관리 부실에 대한 지적은 종종 터져 나오는 고질적인 문제다. 널뛰는 난이도와 출제 경향, 시험의 특성과 본질에 맞지 않는 문제들에 수험 방향을 잡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수험생들의 고충은 기자에게 매우 익숙한 이야기다.
국가와 사회의 동량지재가 될 고위공직자와 전문자격사를 선발하는 시험들이라면 문제를 내고 시험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그 위상에 부합하는 철저한 관리와 책임감이 필요하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수험생들은 몇 년씩 공부에만 매진하는 고행의 시간을 보낸다. 하루 이틀 벼락치기로 하는 게 아니라 인생을 건 도전인 것이다. 출제자와 시험관리자들도 깊은 자성과 개선을 통해 수험생들의 노력과 헌신에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