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죄의 위탁관계, 보호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에 한정”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과 같이 양자간 명의신탁에서도 수탁자가 부동산을 처분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앞서 대법원은 ‘중간생략형 명의신탁’에서 명의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
중간생략형 명의신탁은 명의신탁자가 계약당사자로 매도인과 계약을 하되 매도인의 양해를 얻어 등기를 수탁자의 명의로 하는 형태의 명의신탁으로 대법원은 수탁자는 신탁자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명의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에서 명의 이전이 이뤄지는 양자간 명의신탁으로 대법원은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중간생략형 명의신탁과 마찬가지로 “양자간 명의신탁의 경우에도 명의수탁자는 명의신탁자에 대해 횡령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대법원 2021. 2. 18. 선고 2016도18761 전원합의체 판결)고 판결했다.
이는 횡령죄에서 말하는 ‘위탁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한 문제로 대법원은 “횡령죄에서 보관이란 위탁관계에 의해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재물의 보관자와 재물의 소유자 사이에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위탁관계가 존재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같은 위탁관계는 사용대차나 임대차, 위임 등의 계약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사무관리, 관습, 조리, 신의칙 등에 의해서도 성립될 수 있으나 “횡령죄의 본질이 신임관계에 기초해 위탁된 타인의 물건을 위법하게 영득하는 데 있음에 비춰 볼 때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으로 한정함이 타당하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양자간 명의신탁에서 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의 위탁관계가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일까. 대법원은 그렇지 않다고 봤다.
대법원은 “부동산실명법에 위반해 명의신탁자가 그 소유인 부동산의 등기명의를 명의수탁자에게 이전하는 양자간 명의신탁의 경우 계약인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부수한 위임약정, 명의신탁약정을 전제로 한 명의신탁 부동산 및 그 처분대금 반환약정은 모두 무효”(대법원 2006. 11. 9. 선고 2006다35117 판결)라는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사이에 무효인 명의신탁약정 등에 기초해 존재한다고 주장될 수 있는 사실상의 위탁관계라는 것은 부동산실명법에 반하여 범죄를 구성하는 불법적인 관계에 지나지 아니할 뿐 이를 형법상 보호할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말소등기의무의 존재나 명의수탁자에 의한 유효한 처분가능성을 들어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양자간 명의신탁에서 수탁자는 신탁자에게 소유권 이전등기말소의무를 부담하지만 이는 해당 등기가 처음부터 원인 무효이기 때문에 수탁자는 신탁자가 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로 말소를 구하는 것에 대해 상대방으로서 응할 처지에 있음에 불과하다”는 것.
또 제3자가 명의신탁약정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경우 명의수탁자가 제3자와 한 처분행위가 부실법 제4조 제3항에 따라 유효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이는 거래 상대방인 제3자를 보호하기 위해 인정되는 예외일 뿐 명의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에서 해당 처분행위를 유효하게 만드는 위탁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은 아니라는 게 대법원의 의견이다.
대법원은 “위와 같은 법리는 부동산 명의신탁이 부실법 시행 전에 이뤄졌고 같은 법이 정한 유예기간 이내에 실명등기를 하지 아니함으로써 그 명의신탁약정 및 이에 따라 행해진 등기에 의한 물권변동이 무효로 된 후에 처분행위가 이뤄진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양자간 명의신탁에서 명의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면 신탁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된다고 판시한 대법원 99도3170판결 및 같은 취지의 판결은 이번 판결의 견해와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모두 변경됐다.
대법원은 “양자간이든 중간생략등기형이든 부실법에 위반한 명의신탁에서의 위탁관계는 형법상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 아님을 선언했다는 데 이번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