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재
(정명재 공무원 수험전략 연구소, 공무원 시험합격 8관왕 강사)
약속을 하고 누군가를 기다릴 때 우리는 기다림의 시간을 갖는다. 기다리는 일은 수험생에게는 자연스럽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일상이라도 그날의 학습량을 세우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다. 비단 수험생만이 기다림을 경험하는 건 아니다. 자영업을 하건, 회사원으로서 살아가건 누구나 무언가 재미있고 신나는 사건을 기다린다. 대박을 기다리는 건 아니다.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일이며, 작은 성취감을 원하는 것이다. 소박한 삶에서 무엇인가를 꿈꾸며 그것을 이루려는 일을 하다 보면 언제나 기다림이란 녀석과 친숙해지기 마련이다. 수험생에게 기다림은 늘 상존하는 화두(話頭)이며, 때로는 지루하게도 때론 짜릿하게 다가온다. 빨리 와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합격을 기다린다.
조경학 강의를 하다 보니 나무와 꽃 이야기가 나온다. 나무에서 개화하는 꽃은 죽은 듯 겨울을 지나지만 자신만의 시간이 오면 아름다운 자태를 저마다 뽐내곤 한다. 어김없이 말이다. 매화는 2월~3월에 꽃을 피운다. 1년 중 가장 빠른 시기에 개화하고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을 알리는 전령사이다. 빠르면 1월 말 제주도에서 피기 시작해서 중부지방에서는 4월에 절정에 이른다.
겨울 꽃 비파는 ‘고난의 계절 겨울에 피어나 더운 여름 갈증을 풀어주는 과일을 맺는 내가 있으니 절망하지 마라, 지금은 단지 겨울일 뿐이다’고 말한다. 겨울에 피는 꽃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동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선화도 있고, 팔손이도 있고, 비파도 있고, 게다가 바보꽃도 있다. 겨울에도 꽃이 피는 이들 덕분에 힘들고 지친 마음을 잠시라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자연(自然)이 전하는 이야기는 늘 자연스럽다. 순리에 어긋나지 않으며, 때를 기다리라고 말하는 듯하다. 모든 것에 때가 있으니 너무 조급해하거나 낙담하지 말라며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가? 남보다 앞서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리가 있으며, 배가 불러 몸을 주체할 수 없음에도 먹고 또 먹는 탐식과 욕망에 사로잡혀 살기도 한다. 중도(中道)를 지키기 보다는 한 쪽으로 치우쳐 대립과 극단의 선택을 도모하기도 한다. 합격을 기다리는 수험생의 마음이 거리에 핀 꽃 한 송이를 바라보면서도 위로와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5월도 중순을 향한다.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다시 일주일이 네 번 지나면 한 달이 되는 시간의 흐름에서 수험생은 계획을 세우기 마련이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마음은 평안한 가운데 바쁨이 있고, 바쁜 가운데 예리함이 있어야 한다. 내일 할 일을 오늘 미루고 잠시의 안락을 취하다 보면 일정이 틀어지고 계획이 흔들리기 쉽다. 수험생들을 바라보노라면 가끔 안정되지 못한 마음으로 지내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불안감의 이유로 나태와 친해지고, 게으름은 또 다른 후회를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묵묵하게 책을 들여다보고 공부한 내용을 정리할 시간이다. 사람의 기억이란 단기적이고 일시적이다. 에빙하우스(Ebbinghaus)는 망각곡선으로 유명한데 그의 이론에 의하면 1시간의 망각률이 56%, 하루가 지나면 67%, 한 달이 지나면 79%에 이른다고 한다. 학습 직후 9시간까지 망각의 속도가 가장 빠르기 때문에 최초의 복습은 학습 직후 10분 이내에 할 것, 두 번째 복습은 24시간(하루) 이내, 세 번째 복습은 1주일 이내, 네 번째 복습은 1달 이내에 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이처럼 4차례 복습을 하고 나면, 다섯 번째 복습은 언제 하더라도 기억이 유지된다고 한다. 에빙하우스(Ebbinghaus) 이후 연구자들은 일정 시간 내에 복습을 반복하게 되면 망각곡선이 점차 완만해져, 학습 내용을 잊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복습은 매우 중요한 학습효과를 가져온다. 굳이 일정을 정하여 공부한 것을 반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기계적으로 학습을 하진 못하더라도 공부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잘 나지 않을 때에는 찾아보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나 역시 공부하다가 생각이 나지 않는 부분이 나오면 다시 공부하는 일을 즐겨한다. 그래서인지 기억력이 좋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실상은 그런 것이 아니라, 잊을 만하면 공부한 것을 들여다보는 습관이라 생각한다. 6월이면 시험을 보는 수험생들이 많다.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감염병으로 시험이 미뤄진 탓에 공부할 시간은 분명 많았다. 그렇지만 공부한 것을 모두 기억하고 현재까지 모든 것을 머리에 기억하였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 인간의 기억에는 망각의 능력이 공존하기에 지금부터라도 복습을 통해 그동안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공부한 것을 다시 끄집어내야 한다. 이것이 5월의 숙제이고 수험생에서 합격생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
어린 시절, 친구를 기다리고 엄마를 기다렸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기다리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힘들지 않았다. 나의 친구가 그리고 나의 어머니가 조금 늦더라도 반드시 온다는 것을 확신하였기에 기다리면서도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았던 그 기억을 말이다. 기다리는 일 그 자체가 힘든 것이 아니었다. 기다림 끝에 만남이 있을 것을 믿지 못한다면 기다리는 일은 고되고 지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군대생활을 할 때가 생각난다. 제대가 가까워지면 달력에 하루가 지날 때마다 표시를 하곤 했다. 군대생활의 끝은 제대일이란 마지막 날이 있는 것이고 수험생활의 끝은 합격자 발표일의 합격자 명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확신을 가지고 수험생활을 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가는 이 길에 종착지가 있음을 믿어야 하고 나는 그 곳을 향해 가고 있다는 느낌을 계속 부여하며 나의 길을 걷고 있어야 한다.
어제는 몇 명 수험생들과 모의고사를 보았다. 시험일이 한 달 정도 남으면 모의시험을 통해 자신의 실력과 강점·약점을 살피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는 것도 좋은 공부법이다. 무턱대고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 전략을 세우되 자신의 약점 분야를 튼튼히 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평소 자신 있는 과목이라고 자만하다 보면 어느 새 망각이 나의 기억을 소멸시키기 마련이다. 분명 그 당시에는 잘 외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험이 다가오면 생각나지 않는 부분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초조해하지는 말자. 누구나 겪는 흔한 일일 뿐이다. 그래서 오늘이 중요하다. 복습할 시간이 주어지고 조금은 숨고르기를 하며 전체 과목을 공부할 시간이 있으니 말이다. 강렬한 기억은 오래 남게 마련이다. 쉽게 온 것은 쉽게 사라지는 법이다. 공부할 때 몰입하고 집중하면서, 왜 이것이 정답이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시험장에서 만나는 그 때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다림의 끝을 보게 되는 그 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꽃이 피는 그대의 계절을 만나는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