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 7대 2, 변호사시험 성적 비공개 위헌 결정
알 권리 등 침해 “서열화 고착화 등 부작용 우려”
[법률저널=이성진 기자] 현재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수료생들이 응시하는 변호사시험에서 성적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25일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변호사시험 성적 공개를 금지한 변호사시험법 제18조 제1항 본문이 청구인들의 알 권리(정보공개청구권)를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변호사시험법 제 18조 1항은 ‘시험의 성적은 시험에 응시한 사람을 포함하여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아니한다. 다만, 시험에 불합격한 사람은 시험의 합격자 발표일부터 6개월 내에 법무부장관에게 본인의 성적 공개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애초에는 ‘시험에 응시한 사람은 시험의 합격자 발표 일부터 6개월 내에 법무부장관에게 본인의 성적 공개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지만 법무부가 로스쿨측의 건의 등을 받아들여 2011년 7월 비공개로 개정한 것이다.
로스쿨간의 경쟁을 완화해 교육의 내실을 다져 로스쿨의 제도적 안착을 유도하겠다는 것이 개정의 취지였다.
하지만 2012년 제1회 시험 실시와 합격자 발표 이후부터 개정법률을 두고 재개정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로스쿨 내에서도 내홍을 겪어 왔다.
성적 비공개에 대해 일부 로스쿨측 및 로스쿨생들은 찬성한 반면 반대측에서는 행복추구권, 직업선택의 자유에 방해가 된다며 반발해 왔고 현재까지 논란이 돼 왔다.
결국 2011년 11월 충남대 로스쿨 재학생 등 다수 졸업예정자들이 신뢰보호 위배, 과잉금지 위반, 알권리 침해,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 등의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이후로도 동일한 이유의 또 다른 헌법소원이 제기되어 현재까지 이른 상황.
이들의 주장은 개인성적이 공개되지 않을 경우, 특히 지방 소재 로스쿨 출신은 우수한 법학실력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명성과 지명도 위주의 기존 서열화가 로스쿨에도 그대로 이어져 상대적으로 취업상에서 불이익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논거였다.
또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한 법학사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법학실력이 우수하지만 비법학사들의 법학외적 스펙에 따른 이점이 우선되어 역시 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논지였다.
■ 법정(위헌) 의견 “성적 공개가 경쟁력 있는 법률가 양성”
결국 헌법재판소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 들였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유사한 3건의 헌법소원 청구에 대한 (병합) 결정문을 통해 입법목적은 정당하지만 수단이 부적절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변호사시험 성적 비공개를 통해 로스쿨 간의 과다경쟁 및 서열화를 방지하고 교육과정이 충실하게 이행될 수 있도록 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양질의 변호사를 양성하기 위한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목적은 정당하다”고 했다.
헌재는 하지만 “변호사시험 성적 비공개로 인해 변호사시험 합격자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어서 오히려 대학의 서열에 따라 합격자를 평가하게 되어 대학의 서열화는 더욱 고착화된다”면서 “또한 변호사 채용에 있어서 학교성적이 가장 비중 있는 요소가 되어 다수의 학생들이 학점 취득이 쉬운 과목 위주로 수강하기 때문에 학교별 특성화 교육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학교 선택에 있어서도 자신이 관심 있는 교육과정을 가진 학교가 아니라 기존 대학 서열에 따라 학교를 선택하게 된다”고 문제점을 적시했다.
이어 “로스쿨 학생들이 어떤 과목에 상대적으로 취약한지 등을 알 수 없게 돼 다양하고 경쟁력 있는 법조인 양성이라는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특히 “시험 성적이 공개될 경우 변호사시험 대비에 치중하게 된다는 우려가 있으나,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고 시험성적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하여 변호사시험 준비를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다”면서 “오히려 시험성적을 공개하는 경우 경쟁력 있는 법률가를 양성할 수 있고 각종 법조직역에 채용과 선발의 객관적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변호사시험 성적의 비공개가 입법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기존 대학의 서열화를 고착시키는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으므로 수단의 적절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아가 해당 위헌 법률조항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과 법익 균형성에도 위배된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법학교육의 정상화나 교육 등을 통한 우수 인재 배출, 대학원 간의 과다경쟁 및 서열화 방지라는 입법목적은 로스쿨 내의 충실하고 다양한 교과과정 및 엄정한 학사관리 등과 같이 알 권리를 제한하지 않는 수단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또 “심판대상조항이 추구하는 공익은 변호사시험 성적을 비공개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 아니고 성적을 공개한다고 하여 이러한 공익의 달성이 어려워지는 것도 아니다”면서 “반면 변호사시험 응시자들은 시험 성적의 비공개로 인해 알 권리를 제한받게 되므로 해당조항은 법익의 균형성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며 위헌 결정했다.
■ 소수 합헌 의견 “로스쿨 취지 중요, 과다 경쟁 방지 불가피”
반면 이정미, 강일원 재판관은 합헌으로 봤다. 먼저 학교별 특성화교육 등을 통한 우수 인재를 배출하고 성적 공개로 인한 대학의 서열화 및 대학간 과다경쟁 등을 방지하고자 하는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목적은 정당하다고 했다.
이어 수단의 적절성과 관련해서도 변호사시험 성적이 공개되지 않을 경우, 로스쿨에서의 이수 교과과정, 활동과 성취도 등 다양한 기준에 의하여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어 학생들은 성적의 고득점보다는 인성과 능력개발을 위한 노력을 하게 되므로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라고 봤다.
또 변호사시험 성적이 공개된다면, 응시자는 더 나은 성적을 얻기 위해 시험 준비에 치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목적으로 로스쿨 체제를 도입했다면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제도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입법자의 정책적 판단으로서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출신 학교만을 기준으로 한 몇 년간의 한정된 자료만으로 성적 비공개가 로스쿨의 서열화를 고착화시킨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변호사시험 성적이 로스쿨의 학업성과를 측정·반영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로서 채용과 선발의 객관적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려운 것으로 판단했다.
두 재판관은 침해의 최소성도 인정했다. “변시 합격자 성적 공개 여부는 법조인 선발 제도의 연혁, 취지 및 운영 형태 등 해당 국가공동체의 상황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면서 “기존 사법시험 체제의 폐해인 대학의 서열화 및 과다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로스쿨제도가 시행된 점, 변호사시험 성적이 법조인 능력에 대한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기준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 등에 비추어 성적을 공개하는 것은 응시자들을 변호사시험 준비에 치중하게 해 기존 사법시험으로 인한 폐해를 반복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재판관은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지 않을 경우 로스쿨과 학생들은 시험 준비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고 변호사 채용에 있어서도 다면적인 기준에 의한 평가를 할 수 있다”면서 “석차만을 공개하지 않거나 로스쿨별 성적을 공개하지 않는 등의 방안으로는 로스쿨에서의 교육이 시험위주로 변질될 우려 및 성적공개로 인해 대학의 서열화 및 과다 경쟁을 방지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성적비공개는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법익 균형성 및 신뢰보호원칙에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두 재판관은 “청구인들이 제한받는 사익은 자신의 변호사시험 성적을 알 수 없다는 것인데 이러한 청구인들의 사익은 심판대상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보다 크다고 할 수 없다”면서 “법익의 균형성의 요건도 갖추었다”고 견해를 밝혔다.
또 “제1회 변호사시험이 실시되기 전에 개정된 것이므로 변호사시험의 성적이 공개되었던 적은 없다”며 “따라서 청구인들이 변호사시험 성적이 공개되는 것으로 신뢰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신뢰에 대한 보호가치가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나아가 해당조항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은 로스쿨의 교육이 시험 준비 위주의 교육으로 변질될 우려 및 로스쿨의 서열화 및 과다 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서 청구인들의 신뢰가 이러한 공익보다 크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 위헌 보충의견 “능력보다는 학벌·배경 등이 중시 돼선 안 돼”
조용호 재판관은 법정(위헌)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으로 로스쿨의 발전제도 발전을 위해서도 성적공개가 합리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체제에서는 모두 그 성적과 석차가 공개돼 학교의 서열에 관계없이 성적에 따라 희망하는 법조직역 또는 취업시장으로 진출했고 법원·검찰 등도 이를 기초로 판·검사를 임용하고 변호사를 채용해 선발과정과 시험 및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되됐다는 것.
그러나 로스쿨과 변호사시험 체제에서는 출발부터 로스쿨의 간판에 의해 운명의 갈림길에 서게 됨으로써 평가기준의 객관성 및 채용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
특히 변호사시험은 법조인으로서의 전체적인 능력과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유효하고도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임에도 성적 비공개에 따라 변호사로서의 능력을 측정할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이 없어 채용 과정에서 능력보다는 학벌이나 배경 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
또한 변호사시험의 높은 합격률과 성적 비공개는 로스쿨을 기득권의 안정적 세습수단으로 만든다는 비판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체제와 로스쿨과 변호사시험 체제의 차이는 근본적으로는 시험성적의 공개 또는 비공개라는 절차와 결과의 공정성, 평가 기준의 객관성 등의 차이 때문”이라고 판단한 뒤 “또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성적을 공개하고 있는 국내의 다른 자격시험이나 외국의 입법례와 비교할 때에도 합당한 조치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여야 한다는 취지는 임용이나 채용에 있어서 성적만으로 선발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응시자를 평가함에 있어 객관적인 평가지표가 될 수 있는 변호사시험성적도 또 하나의 요소로서 고려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자는 취지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다수의 변호사시험 합격자들은 변호사시험 성적을 통해 학벌을 극복하고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받고자 한다”면서 “로스쿨과 변호사시험 체제의 문제점과 다수의 변호사시험 합격자들의 심정을 고려할 때, 변호사시험 합격자에 대해 시험성적의 공개를 막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같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따라 2012년 제1회 시험부터 올 초 치러진 제4회 시험까지 해당 합격생들은 모두 성적 공개를 법무부에 요청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현재 사법시험 존치 주장이 거센 가운데 로스쿨측으로서는 여럿 비판 중 ‘변호사시험 제도의 불투명’이라는 불명예는 씻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