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감정평가사
입맛에 맞게 늘리거나 줄이기. 문서 작업의 달인으로 칭송받고자 한다면 때에 따라 문서의 양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수북이 쌓인 리포트 채점을 선풍기 바람에 떠밀려 가지 않는 정도, 곧 중량의 차이로 단순화시킨 건 힘써 양을 늘린 학생의 ‘성의’만을 본 것이다. 페이지수 증감만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생 속도의 조정도 가능하다. 교육 동영상 업체의 재생 플레이어마다 재생 속도 조절키를 모두 갖추고 있다. 강사의 말이 좀 느리다 싶으면 2배속으로 빨리 감을 수 있고, 헷갈리는 단원에서는 2~30% 늦출 수 있다. 8~90년 대, 의도치 않게 카세트 테이프가 늘어져 주파수가 낮은 저음대의 ‘웅’소리가 라디오에서 들릴 때도 있었다. 이를 패러디한 개그 꼭지도 잊을만하면 등장했다.
‘시시각각’. 양을 의미할 때는 ‘시간’이 되고 영구한 시간 속의 한 점을 말할 때는 ‘시각’이라 한다. 초고속 카메라의 등장으로 짧은 시간을 한없이 더디게 재생시킬 수 있게 됐으니, ‘시각’은 더 분화된 셈이다. 분화의 속도는 아찔하다. 일반 카메라가 1초에 수 십 장 규칙적으로 촬영할 때 초고속 카메라는 수 백장을 찍다가 요즘은 수 천 장 이상을 거뜬히 담아낸다. 짧은 시간을 더 잘게 ‘시각’으로 바꾸고 ‘찰나’의 감상을 가능케 해 준 건 실로 경이롭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24시간의 변화를 한 순간으로, 계절의 바뀜을 몇 십 초에 응축할 수도 있다. 갓 심긴 씨앗이 발아하여 열매를 맺는 인고의 시간을 수 초에 고속 압축해 보여준다. 길게 빼고 짧게 자르는 일은 모두 가역적이다.
인간이 조절할 수 없는 ‘시간’을 ‘시각’별로 정리해보려는 성과물이 각종 지수와 변동률이다. 한참 발육이 남다른 사춘기를 둔 가정, 돌출되지 않은 거실 벽면 어딘가에는 키를 재 본 자욱이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연도별도 되어 있다가, 위를 향해서는 ‘월’ 혹은 ‘주’로 측정 시간이 단축된다. 본인도 며칠 만에 또 커졌을 것 같은 기대감에 측정 주기를 짧게 가져갔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요건은 그대로고, 단지 ‘시각’의 차이를 보정하는 지수는 공신력 있는 데이터를 활용해 특정값을 시시각각 정리해 놓은 결과물이다. 생산자물가지수, 소비자물가지수, 생활물가지수, 수출입물가지수, 지가지수, 종합주가지수, 임금지수, 건설공사비지수, 임대가격지수, 주택가격지수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각 지수도 더 구체화시키면 다자녀 둔 가정처럼 줄줄이 세부 지수로 배가된다. 예컨대 소비지출이 큰, 소위 ‘시장바구니’를 구성하는 재화와 용역을 선별해 이들의 가격수준을 지수화한 ‘소비자물가지수’는, 내구소비재를 제외한 생필품 위주의 품목으로 ‘체감물가’를 파악하는 ‘생활물가지수’를 하위에 두고 있다.
‘지수’의 이름을 달고 있더라도 ‘시각’ 보정의 목적이 아닌, 국가와 지역 간 객관적인 비교를 위해 태생된 이도 있다. ‘빅맥지수(Big Mac index)’가 대표적이다. 맥도널드 햄버거인 ‘빅맥’(Big Mac)의 가격에 기초해 세계적으로 품질, 크기, 재료가 표준화돼 있어 어느 곳에서나 값이 거의 일정한 빅맥 가격을 달러로 환산해서 전세계 120여 개 국의 물가수준과 통화가치를 비교하며 각국 환율의 왜곡여부를 진단하는 수치로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 외 대부분의 지수는 독립변수를 ‘시각’으로 설정하고 있다. 생산자가 생산할 물건을 도매상에 판매하는 단계에서 산출한 물가지수로, 기업 간에 거래되는 생산재나 환성 소비재를 선정하여 산출하는 생산자물가지수는 가장 대표적인 물가지수로 불린다. 국민 경제 전체로 본 노동자 1인당 수입수준의 변동을 나타내는 ‘임금지수’도 있고, 기본형건축비나 표준건축비의 상향 조정 근거가 되는 공동주택 건설공사비 지수도 발표되고 있다.
땅 값의 변동을 나타내는 ‘지가지수’는 꽤 오래전부터 조사돼 왔다. 197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여러 기관이 이 업무를 담당했고, 요 몇 년 전 감정평가협회에서 한국감정원으로 업무가 이관됐다. 수학 성적이 등락을 보이듯 기준시점의 지가지수를 100으로 잡고, 비교시점의 지가지수를 도출하면 지가변동률이 자동 산출된다. 지가지수는 표본지의 가격총계로 결정되는데, 전국의 모든 토지 중 용도지역과 이용상황의 층화를 반영하는 57,000여 샘플 필지를 선별해 이들을 매 월 조사하고 있다. 표본이 그대로 있다면 면적은 불변일 것이고 가격 총계는 단가의 차이에 기인한다. 현재 지가지수는 기준시점(최초)의 면적이 현재까지 유지된다고 전제하는 라이파이레스 산식의 틀을 취하고 있다. 지가지수를 통해 매 월 발표되는 지가변동률은 감정평가의 시점수정 자료로 쓰이고 있고 전국적인 토지 정책 수행을 위한 기초자료로 대접받고 있다. 이를 담당하는 한국감정원 홈페이지에는 ‘전국 지가변동률 통계는 일반적인 지가수준의 변동을 측정하는 하나의 지표로서 특정지역이나 개별토지의 가격수준 및 가격변동을 측정하는 것은 아님’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조사자에 따라 지가지수의 편이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음도 부인하기 힘들다.
주택가격지수도 매 월 공표되지만,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많이 듣고 있는 천덕꾸러기다. 매매가격지수, 전세가격지수, 월세가격지수 중 매매가격지수는 빈약한 표본수의 문제와 실거래신고제도의 빈틈이 결합해 통계 신뢰성을 의심받기도 했다. 표본수가 전국주택의 0.07%라고 해서 대표성의 문제가 꼭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다. 60일간의 시차를 허용하는 실거래 신고제의 특성상 시세와의 시간적 괴리현상은 떠안아야 하지만 취·등록세 및 양도세 부담을 염려한 다운계약서 작성 및 저가신고의 폐단은 신뢰성을 갉아 먹고 있다. 거래량이 드문 지역은 일부 사례가 전체 결과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대표성이 남용되는 문제도 고질적인 약점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가격지표인 게이스-실러지수가 경기 변동양상을 정확히 짚어내 신뢰성을 얻고 있는 현실과 대비될 때마다 질타가 쏟아진다. KDI가 나서 정확한 주택가격지표를 만들겠다고 표명한 것은 이 통계결과가 주택정책 등 정부 주요 정책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한 연구원이 ‘빈약한 표본을 단순 가중평균하지 않고 케이스실러지수처럼 회귀분석 등 정교한 통계기법과 풍부한 전수조사 시세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 정확한 지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인터뷰한 내용은 전문가의 날카로운 지적이다.
가치추계를 할 때 이러한 각종 지수는 평가금액과 직결된다. 거래시점과 현재시점의 시간 격차를 보정하기 위해 평가 대상 물건이 토지라면 행정구역별 용도지역별 지가변동률을 적용하고 있다. 상업·업무용 부동산이라면 국토부에서 매분기 발표하는 오피스·매장용 빌딩의 분기별 자본수익률(빌딩의 가치변동률)데이터를 사용하라고 권면받고 있고, 공동주택은 주택매매가격지수 등 주택가격동향지수를, 이도 저도 적용하기 곤란하면 생산자물가지수의 세부 지수 중 가장 유사한 항목을 채택하면 될 것이다. 원가법을 적용할 때 특수한 자산은 과거 신축당시의 공사비를 현실화시키는 지수 적용이 외길이고, 수 년 간의 임대계약이 만료돼 갱신을 앞두고 있다면 임대가격지수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올 초 천 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은 짧은 런닝타임에 한국 근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담았다. 시청하는 이는 수 십만 배속으로 시대상을 관통하는 즐거움이 있다. 감정평가사는 한 지역에 5년 머물며 지가수준의 지표가 되는 표준지 공시지가 평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해당 지역 곳곳을 누비고, 수 십~수 백의 거래사례 자료를 들춰볼 수 있다. ‘그 때 저 지역으로 이사갔으면’하는 탄식은 설마설마 하던 지가가 가파르게 올라 하방경직성을 띤 이후에 터져나오니 문제다. 조사자는 어느 한 시점을 정확히 보겠지만, 시각별 데이터로 그려지는 추세선은 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일반인이라도 가격의 흐름을 편하게 훑어볼 수 있게 해 준다. 시점수정자료로 이런 데이터를 항상 접하는 우리로선, 가끔 체감하는 것과 동떨어지는 지표에 의아할 때도 있다. 요즘, 소득세 폭탄을 안일하게 생각했던 정부 당국의 무능함이 속속 들어나고 있다. ‘체감물가’와 ‘통계물가’의 괴리를 우리 역시 일찍이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그런 면에서 ‘시각’의 보정을 가능케 해 주는 각종 지수는 언제나 꼼꼼하게 추계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