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감정평가사
사인간의 재산에 대한 다툼은 민사법원이, 그 일방이 행정청 등인 경우 행정 법원이 맡는다.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서는 주택재개발사업, 도시환경정비사업 등에서 사업의 주체인 조합, 곧 조합원의 모임에게 예외적으로 수용 권한을 부여해 준다. 수용권을 발동하기 전, 조합원 자격이 안 되거나 조합원이었다가 자발적으로 현금청산자가 된 이는 일단 조합과 협의의 절차를 거친다. 그러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수용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 때 협의를 위한 감정평가, 수용재결에 따른 감정평가, 수용재결 금액을 다투는 이의재결 평가가 시차를 두고 이뤄진다. 그리고 맨 마지막은 법원에서 지정한 소송감정인을 통해 보상금 증감 청구 소송이 수행된다. 도시환경정비사업 등 정비사업 구역 내 현금 청산자의 재산에 대한 소송인 경우 이미 재결이 끝나고 보상금이 공탁된 후 건물 등은 철거해 버렸을 경우가 있다. 소송감정인은 재결 당시의 지장물 사진을 종전 평가사나 조합 측에서 제공받아 간접 현장 조사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다.
행정법원까지 법률 대리인을 통하지 않고 스스로 의견서를 작성해 소송을 청구하는 자립심 강한 이들도 있다. 이들은 복잡한 서면 대신에, 현장에서 소송 감정인을 만나 자신의 입장을 구술하는 전략을 취한다. 말도 안 되는 억지주장을 담은 부풀려진 의견서를 읽는 것 보다 이렇게 대면해서 소박한 증액 주장을 접하는 게 수월하다. 행정법원에 접수되는 보상금 증감 청구 소송의 상당수는 법률 대리인의 부추김의 결과라고 볼 여지도 많다. 감정인이 소송 감정을 진행하기 전에 대략 판단한 증액 가능한 금액의 정도가 법률 대리인의 최소 수임료에도 못 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협의평가나 재결평가가 모두 1천 만 원이라고 평가했다면 이미 3명의 독립된 감정평가사가 개입됐거늘, 앞선 이들이 터무니없이 부적정한 평가를 해서 소송감정인이 이를 바로잡는다고 5천 만 원이나 1억 원으로 평가액을 증액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보는 게 많다. 필자는 늘 재량의 영역을 ±5%로 본다. 5% 높은 금액, 5% 낮은 금액이 이루는 10%의 재량의 범위는 충분히 시장에서도 허용되는 수치이지 않은가. 그 정도 가격의 출렁임은 거래 양태, 당사자의 사정에 따라 부동산 시장에 파열음을 내지 않는 잔잔한 물결이다.
소송 사건은 수용 또는 사용재결취소송의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실질은 보상금의 현실화 요구다. 그러나 요구하는 보상금 현실화의 기준선은 시가가 아닌 주관적 호가에 머물 때가 태반이다. 의견서는 보상금을 올려 달라는 요구는 맨 마지막에 배치하고 우선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것인지 확인해 달라는 요구로 시작한다. 증거 몇 호 이런 식으로 여러 자료들을 취합하고, 해당 평가와 관련된 법조문과 유사 판례, 국토교통부 및 법제처 등의 유권해석 중 끈이라도 닿을 법한 자료들은 죄다 실어 놓았다. 두꺼운 의견서를 보며 법률 대리인의 날카로움보다는 원고를 대리하는 변호사의 성실함을 나도 모르게 칭찬할 때도 있다. 증액을 외치는 목소리는 천차만별이다. 법률대리인의 감정평가에 대한 소양이 일취월장하고 있음이 체감될 때도 많다. 예전 같으면 인근 호가가 얼마에 형성된다는 주장, 호가가 얼마로 뛰었는데 보상금이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을 해서 ‘본 사업 때문에 가격이 들썩인 것은 개발이익이므로 평가 금액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답변을 듣기 일쑤였다. 그런데 요즘은 본 사업에 의한 가격 상승분은 빼고 인근에 같이 개발하고 있는 다른 구역의 영향으로 인한 지가 상승은 포함시켜 달라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 학습효과일 것이다.
감정평가사 입장에서 가장 곤혹스러울 때는 법률에 규정한 평가사의 재량의 영역을 무시하고 생떼 쓰듯 주장할 때다. 예컨대 토지를 공시지가기준법으로 평가할 때 종전 평가자가 법률이 정한 비교표준지 선정 기준에 따라 적정한 비교표준지를 선정하였음에도 굳이 비교가능성이 더 떨어지는 좀 비싼 다른 비교표준지를 소송감정을 할 때 선정해 줄 수 없는지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렇다. 지인과 얼마에 계약하기로 했던 이력을 확인 받아 증거 몇 호로 제시하기도 하는데, 인근 시가의 2~30%정도 증액된 정도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치지만 3~4배가 되는 금액을 적어 놓고 ‘이것 보라’는 식으로 나올 때도 그렇다. 물론, 고압선이 통과하는 땅, ‘선하지’ 같은 경우는 관련 법률에서 정한 보상금 한도액이 있다 보니 평가하면서도 현실적인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실이 늘 안타깝다. 밀양송전탑 사태를 계기로 보상 규정이 개선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지급 보상금과 실제 손실의 틈은 여전히 벌어져 있다.
행정법원 소송감정인으로 활동하면서 평가자 입장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노고에 비해 수수료 규정이 턱 없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선하지 보상 금액은 수 억 원을 넘는 경우가 드물다. 애써 현장 조사하고 자료 긁어모아 일주일에서 열흘에 걸쳐 평가서를 써서 발송해 봤자 종량제에 따른 보수규정과 법원 감정에 대한 일방적인 할인 규정이 적용되면 3~40만 원 수수료를 청구할 수밖에 없다. 소송 감정인 입장에서는 그 어떤 평가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니, 업무의 난이도 및 중요성에 비춰 수수료 규정도 현실적으로 손질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협의보상부터 수용재결, 이의재결까지 평가액을 쭉 깔아놓으면 기울기가 1~2도 내외의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감정인이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꼭짓점을 찾아 다만 얼마라도 증액될 소지가 있는지 피수용자 측의 입장에 서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래도 재량의 범위를 일탈하는 것은 아니다. 극히 소수의 평가자가 의뢰자의 입김에 휘둘리고 수수료에 목숨 거는 정신없는 평가를 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만, 일주일 넘게 평가에 임하면서 일당에 미치지 못하는 수 십 만원의 수수료를 받으며 갈등의 조정 현장을 성실하게 누비는 많은 소송감정인도 있다. 이들이 현실적인 수수료 부족분을 ‘갈등 조정 전문가’의 자부심으로 채우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확장수용 등 형성권적 청구권 유형을 그냥 급부확인소송성!
대법원은 막 성질도 유용하면서 뭐라고 하면 그냥 총액주의로 버팁니다. 음...개인별보상의 원칙...물건별 평가원칙이라는 시행규칙보다 쎄긴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