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감정평가사
중년의 남성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용의 질이 떨어지고 근속연수가 짧아지는 추세에 조기 퇴직의 우려가 그 중 하나다. 경제적 측면을 배제시킨다면 아내, 자녀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도 떠올려 볼 수 있다. 그런데, 의외로 자신의 건강 상태가 예전만 못하다는 불안이 상위에 랭크된다. 필자도 그렇지만 40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체력이 저하되고, 몸이 망가져간다는 느낌이 강하다. 생전 쳐다보지도 않던 서울 근교 명산을 주말마다 오름은 장담할 수 없는 중년의 몸 상태 때문이다. 혹자는 하체의 ‘부실’을 지적한다. 꾸준히 운동으로 체력을 유지해 왔던 이가 아니면, 짧은 산행에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체험에 기겁했을 터. 10년 지나면 자동차 엔진 성능이 저하되듯 몸 상태는 정점을 찍고 이제 가파르게 내려가는 체력 앞에 제대로 진단을 받는다. 몸 상태가 부실해지듯 채권도 예고치 않게 이런 부실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이들은 작동하지 않는 채권이라 불리는 ‘부실채권(Non Performing Loan)’이다. 요즘 개미 투자자도 곧잘 입질하는 NPL이 그것이다.
금융기관은 ‘신용’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해 줄 수 있다. 변호사, 회계사, 감정평가사 등 전문자격을 취득한 이들은 소득 증빙 없이 곧바로 수 천 만 원에서 수 억 원 대출을 해준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개업 준비 중인 의사나 한의사 역시 이런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최소한 자격증을 갖고 있으니 그들의 신용에 상응하는 소액(?)대출은 부실 발생 위험이 낮다고 보니 가능한 것. 그러나 이들이 속한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더 이상 예전 같은 고수익, 초과수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은 분명하다. 조만간 대출 한도의 조정이 있지 않을까. ‘신용’은 이렇듯 가변적이라 할 때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실행은 그나마 안정적이라 할 수 있다. 땅이 꺼지는 것도 아니고 빌딩이 천재지변으로 허물어지는 위험까지 떠안을 필요가 없으니. 채무자가 소유한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실행할 때도 자산의 가치만큼 꽉 채워 빌려주는 것은 아니다. 자산유형별 LTV(Loan to Value)는 그런 안전장치다. 그러나 예고치 않게 부실의 위험은 찾아온다. 채무자의 신용상태 또는 자금상황의 악화가 발단이 돼, 부실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부실채권은 신용을 담보로 한 무담보부와 부동산을 담보로 한 담보부 채권으로 분류한다. 부실의 기준은 통상 원리금 연체기간 3개월로 본다. 전자는 채권추심을 통해 빌려준 돈을 회수한다. 채무자를 위협하고 귀찮게 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갖가지 방법이 고안돼 사회적 병폐가 되는 것은 빌린 자가 어떻게든 돈을 마련치 않으면 받아낼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자는 담보로 잡은 자산이 있어 이를 처분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이들 자산의 등기사항전부증명서 ‘을구’란에 설정된 저당권은 이런 연체가 지속될 경우 경매에 의한 처분이 가능토록 허용하는 채무자의 약정에 의한 것이다. 이런 자산이 수 만 개 중 두 세 개라면 별 문제 없을 텐데, 그 비율이 올라가면 금융기관이 난처해진다. 경매기간이 길어지면 그 기간 대손충당금을 계속 쌓아야 되고, 은행이 그토록 중시하는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한다. 자동적으로 은행의 신용도에도 빨간불이 켜진다. 그래서 약간의 손실은 보더라도 시간의 기회비용을 줄이고, 재무 건전성 지표를 보전할 수 있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채권 자체를 팔겠다는 것이다.
부동산에 설정된 저당권에 기해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파는 것이 NPL매각이다. 개별로 매각하는 것보다는 묶어서 할인 가격으로 파는 게 쌍방에 유익이다. 이를 POLL매각이라 부르고 인수 금액이 수 백 억에서 수 천 억에 달하기에 자금력이 있는 금융기관, 기관투자가, 유동화전문회사 들이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초창기 이런 대규모 매각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꽤 괜찮은 투자처라고 인식한 개미투자자는 진입방법을 찾아냈다. 낱개로 부실채권을 인수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빈틈을 발견한 것. 물론 일반 대중에게 소개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시중 대형 서점 부동산 분야 신간 중 투자를 권유하는 여러 서적의 빈출 키워드에 종래 ‘경매’일색이던 것이 ‘경매’, ‘공매’, ‘NPL’ 로 다양해 진 건 ‘NPL’투자방법이 하나의 부동산 투자처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개인은 어떻게 이들 부실채권을 매입할 수 있을까. NPL을 매수한 유동화전문회사(SPC)나 중소형 자산관리회사(AMC)가 개별 채권을 재 매각할 때 입찰이나 수의계약에 참여할 수 있다. 투자를 대행하는 펀드매니저가 추진하는 공동 투자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금융기관 자체적으로 경매를 진행할 때 직접 저당권자를 찾아가 인수를 타진하는 것도 대안 중 하나다. 이렇게 입맛에 맞는 부실채권을 손에 넣은 후에는 이를 여러 방법으로 요리해 수익을 창출한다. 저당권을 발동해 경매에 집어넣고 또 다른 개인 투자자가 낙찰 받게 하여 낙찰대금에서 배당받는 것이 무난한 회수 방법이다. 중개자가 아닌 중계무역상의 지위에 올라 입맛을 다시고 있는 또 다른 NPL투자자에게 중계수수료 정도의 수익만 남기도 채권을 재 매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시간적 여유도 있고 급히 자금을 회수할 필요도 없을 경우 부동산 자체가 탐나는 자는 직접 경매에 참여해 자신이 낙찰 받아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다. 이를 이 시장에서는 ‘유입’이라고 부른다. 실 채권금액보다는 낮게 인수했기에 드라마 개과천선의 인턴변호사인 여주인공 정도의 호소력 있는 감성과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면 채무자와 협의해 채권금액과 인수금액 사이 금액으로 자진 변제할 수 있도록 접촉해 볼 수 있다. 채무자는 원리금 일부를 탕감 받고 부동산을 강탈당할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므로 매력적인 흥정이다.
이들 NPL투자가 주식보다는 안전하고, 오랜 기간 쟁여둬야 하는 일반 부동산 투자보다는 회수기간 대비 수익률 면에서 각광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NPL매입금액의 7~80%를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에서 대출로 충당할 수 있어 실 투자금액이 작은 것도 매력적이다. 이에 투자해서 발생하는 차익이 비과세라는 점은 개인 투자자의 시선을 홀린다. 보유기간 1년 미만인 부동산의 처분 차익에 50%의 단일 세율이 적용되고 일반펀드 수익에 대해서도 14.4%의 소득세가 부과되고 있으니 유일한 과세 청정지역처럼 보이니 그렇다.
다만, 권리분석에 대한 기본 지식은 필수다. 말소주의니 인수주의니 하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 지도 모르고, 낙찰로도 말소 안 되는 몇몇 권리가 있음에도 낙찰만 받으면 등기사항전부증명서가 말끔히 정리된다는 착각을 하고 덤빈 자는 백전백패다. 상황 별 배당표를 작성해서 안정적인 수익이 발생하는 입찰점을 찾을 수 있는 내공은 필요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 추계의 기본 원리다. 채권의 원본이 되는 부동산의 시장 가치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는지 가늠할 기본기는 필수다. 채무자의 급박한 사정이 개입돼 그렇지 알짜배기 물건은 언제든 시장에서 제 값을 받을 수 있다. 정상적인 매물과 급매물이 포진하는 가치의 스펙트럼 구간 정도는 대강이라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