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웹툰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유명세가 커지면서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박진희 변호사에게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인터넷 포털 게시판에 ‘살려주세요!’라는 작가의 요청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무료로 법률자문을 시작하게 됐다는 박 변호사는 훗날 창작자를 위해 도움을 주는 변호사로 일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공대생 출신인 박 변호사는 로스쿨이라는 새 제도 덕분에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변호사라는 꿈을 키우게 된 사람 중 하나다.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이 그녀의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순간으로 꼽힌다. 의외의 새 제도 때문에 그동안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마이너스 인생 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힘들어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좌절할 필요는 없다!박진희 변호사에게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계기는 없었다. 다만 삶의 과정 속에서 그때그때 자신의 마음을 끄는 것과 택할 수 있는 최선을 택해왔고, 그것이 모여서 지금이 됐다고 생각했다.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에 있어 특별함 보다는 서로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는 삶속에서 가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어 고민하는 사람 중의 하나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 변호사.
“가치 있는 인생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공감이 되지 않을까 싶어 그런 마음에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어요”
사실 지금 로스쿨을 다니면서 힘들어하는 후배들이나 자신이 바라는 목표를 아직 이루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쨌든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해서 일하고 있는 박 변호사 스스로 특별할 것 없다고 말하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위치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생각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박 변호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쳤던 뿌듯했던 일과 좌절했던 많은 일들을 돌이켜보면 결국 딱하나 남는 것은 그래도 ‘좌절할 필요는 없었다’라는 것이다.
출구 없는 어두운 터널 같던 20대
박진희 변호사는 어릴 때부터 문과, 이과, 예체능 등 가리지 않고 좋아했던 편이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과 과목을 좀 더 좋아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공과대학에 진학했는데, 이 선택으로 스무 살 때부터 로스쿨 진학까지 만 7년 동안 출구 없는 어두운 터널을 거니는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실상 성적은 문과가 더 잘 나와서 전공 선택을 고민하다가 고집대로 이과를 선택한 것이었다. 학교공부에는 흥미가 떨어졌고, 나이를 먹으면서 기술발전에 대한 회의감만 점점 더 쌓여갔다. 가치관이 변해가니 전공분야에 대한 애정은 점점 낮아져만 갔고, 그래서 막상 진로를 바꾸려 해도 현실화가 쉽지 않았다.
“학과 성적이 우수하지 않으면 다른 길로 가는 것 자체가 어렵더라”
선택의 막다른 길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때 주위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택하는 길이 전부로 보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공부를 잘하면 유학, 아니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대기업에 취직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같은 어려움을 아마 지금도 겪고 있는 학생들이 상당할 것이다. 학교 다닐 때는 자신이 사회에 나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어렵고, 그런 고민을 할 때 돌아오는 대부분의 답은 ‘일단 학교 성적 잘 받고, 이력서에 써낼 수 있는 경력 만들고, 영어공부해서 영어점수 올려라’라는 말뿐이다.
다른 뾰족한 방법도 없고, 아주 뛰어난 재능이 있거나 인생을 걸 만큼 흥미를 갖는 것도 없었던 그녀에게 이 시기는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나름대로 진로를 틀면서도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을만한 무기를 만들고 싶어서 공대생들 사이에서 꽤 인기 있던 변리사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 때 처음으로 ‘민법’이라는 과목을 공부하게 됐는데, 매일 결과 값이 딱 떨어지는 물리 같은 과목만 공부하다가 사람들 이야기를 책으로 공부한다는 게 생소했다.
“사례들이 다 정말 신선했고 소설책 읽는 것 같기도 했어요”
이와 함께 ‘시험을 봐서 합격을 해야한다’는 건 또 다른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그렇게 혼자 변리사공부를 2년 정도 하루 종일 도서관에 박혀서 공부했다.
그렇다고 고통스러운 시간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길을 가보겠다는 설렘도 있고 공부도 나름 재미있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 너무 피폐해져만 갔다. 혼자 시험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느끼는 좌절감과 회의감이었다.
“잘 견디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좀 이성보다는 감성이 발달해서 그런지 굉장히 힘들었어요.”
물론 공부하는 동안 피할 수 없는 환경이지만 합격하기까지 매일 매일이 다를 게 없는 일상을 보내다 보니, 스스로 정말 쓸모없고 별거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어떤 학문을 파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또는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라는 점, 그리고 오로지 혼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공부한다는 게 그때의 박 변호사에게나,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고된 길일 수밖에 없다.
기대와 좌절이 널뛰던 2008년 봄
그렇게 계속 지내다가는 성격이 이상해질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을 때쯤이었다. 2008년 봄 로스쿨 1기를 뽑기 위한 시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자신감이 바닥을 치던 시기에 딱 한번만 더 용기를 내보자고 결심하게 됐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혼자 하는 시험공부도 힘겨워 하던 자신이 무려 변호사가 돼 보겠다고 생각한 게 좀 어이없을 정도였다고! 그렇지만 운명이 그렇게 될 예정이었던 것처럼 딱 그 때부터 하루하루가 정말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좌절과 기대감이 함께 널뛰었던 2008년의 봄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먼저 그녀는 리트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문제를 구해다가 풀었다.
고등학교 논술 대비 이후로는 글을 써본 적도 없어서 인문사회과학 책을 이것저것 찾아다 많이 읽고, 스터디모임에 가입해서 논술을 쓴 후 서로 돌려 읽어보고 그렇게 시험을 준비했다.
“남들 말에 신경쓰지 말자”
국내에서 처음 치러지는 시험이라서 기출문제나 예상문제가 없던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남들 말에 신경 쓰지 않고 시험 준비에 전념할 수 있었다. 단지,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에 집중해서 준비하면 됐다.
그렇게 리트 시험을 치고, 그 뒤로는 또 면접 준비를 위해 여러 스터디에 가입해서 정기적으로 만나 토론을 하며 막바지 전형을 준비했다.
당시 박 변호사는 별다른 경력도, 면접에 도움 되는 지식도 별로 없는 공대생이어서 스터디원으로는 인기가 없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가입을 거절당한 모임도 많았다. 다행히 그녀를 받아준 모임들에는 이미 다양한 직장 경력자들이 많이 있어 좀 주눅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그 땐 변호사가 돼서 앞으로 진짜 도움이 되는 인간이 되겠다는 갈망이 커 주눅 따위는 이겨낼 수가 있었다. 그 당시 자신이 공부하는 모든 것들이 재미있어서 면접까지 무사히 잘 갔던 것 같다고 지난날을 기억했다.
덧붙여 개개인의 특․장점은 다 다르기 때문에 로스쿨 입시 전형에서 자신이 비교적 점수를 높게 받을 수 있는 전형인지, 아닌지 잘 판단할 필요가 있다.
순간순간 공부가 벅차고 미래가 걱정될 때도 많이 있었지만,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기 마련인지 로스쿨 입시 준비를 시작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은 별로 없었다고 말하는 박 변호사.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상황에서 쓸모없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 그 전의 시간들이 더 힘들었다고 한다.
이후에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고, 로스쿨에 입학해서 동기들, 교수님들과 함께 보낸 정규 커리큘럼 속 3년 남짓의 시간은 좋았던 기억들로 채워졌다.
강의 듣고, 레포트 쓰고,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보고, 그리고 방학 때는 실무수습 나가고 봉사활동도 하고, 그런 일련의 과정이 즐겁게 다가왔던 것은 변호사가 되겠다는 목표가 설정된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험에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거나, 좋은 학점을 받아서 판검사나 대형로펌 취직을 목표로 생각했다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힘들 수도 있었다.
박 변호사는 “좋은 직장이나, 경력을 포기하고 온 학생들에 비해 로스쿨에 다니기 위해서 포기한 것이 없어서인지, 로스쿨에 다니면서 동기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에 안심이 됐던 것 같다”고 전했다.
사실 로스쿨 등록금과 생활비 때문에 힘이 들기도 했지만 30대부터는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즉 끝이 있다는 것이 그녀의 짐을 좀 덜어줬던 것 같다.
“법학은 사회와 절말 밀접한 실용적인 학문이어서인지 공부한 만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변호사가 돼서 지금 배운 법학지식을 잘 써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법학공부는 더 재밌게 다가왔다. 그래서 박 변호사에게 로스쿨 진학에 대한 전망을 묻는 후배들이나 친구들이 있다면, ‘하고 싶으면 꼭 하고, 그게 아니라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은 거라면 손해 볼 것’이라고 말한다.
변호사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경쟁이 심해져서 금전적으로나 직장의 안정성으로 보나 보장되는 게 없다는 건 이미 다들 잘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성화’ 보장은 없어도 기회는 커
처음 로스쿨을 준비할 당시엔 어느 로스쿨이든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지만, 정말 학교를 정해서 원서를 넣어야 할 시기가 다가왔을 때는 학교가 내세웠던 특성화과목과 개인적인 합격 가능성을 고려해야만했다.
박 변호사는 공대출신이고 변리사시험 공부도 해서 지적재산권에 처음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당시 지재권을 특성화했던 성균관대 로스쿨의 정원은 120명. 박 변호사의 1기 동기 중에는 경력이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녀가 기억하기로 변리사 4명, 회계사 6명, 전자, 건설, 화학 등 다양한 분야의 대기업 출신, 약사도 있었다.
당시 이공계 출신이 많았는데,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로스쿨에 입학 한 박 변호사의 경력은 독특하지도 않았고, 전문 경력의 소유자와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박 변호사는 기본과목만 하기도 정신이 없는데, 특화하고 싶다는 의지가 확실했다. 로스쿨 재학 당시, 지재권에 대한 관심이 깊어 상표법, 저작권법, 저작권법 심화 등 지재권에 관해 3~4과목 정도를 수강했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특성화하고자 했던 분야가 사회에 나와서도 써 먹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학교에서 열심히 했던 분야가 있다면 사회에 나왔을 때 분명히 써 먹을 기회가 커진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훗날 자신의 길을 고집했던 것이 취업이나, 직장에서도 특화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
로스쿨 1기 때는 대형로펌을 빼고는 채용공고가 뜨는 곳이 별로 없었다. 공고가 나지 않은 곳 가리지 않고 30군데 정도 이력서를 넣었다고 한다.
그런데 취업의 운은 다른데서 찾아왔다. 열성적으로 들었던 지재권 수업을 강의한 교수님의 제의로 현재 법무법인 동서양재에 취업하게 됐다.
“뜻밖의 제의였어요. 취업이 다들 어려운 걸 뻔히 아는데 교수님께 알아봐 달라 부탁도 못했거든요. 인생은 참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은 것 같아요”
현재 로펌의 절반 이상이 지재권 사건인데, 지재권전문인 김기중 변호사를 보고 오는 사건도 꽤 있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자신이 특화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해당 로펌의 선배변호사가 맡고 있는 분야를 살펴볼 필요성도 있다고 박 변호사는 귀띔했다.
“학교에서 공부 많이 한 분야에 따라 일수임이 집중됐다. 일하면서 계속 공부, 특화해 나갈 수 있다”
처음에는 6개월 연수 차원이었지만 지금은 3년차 지재권 전문 변호사로 거듭나고 있는 박 변호사. 학교에서 열심히 했던 분야가 있으니 로펌에서도 해당 분야의 사건을 많이 맡겨 줬다.
취업 후에는 따로 시간을 내서 특정 분야를 공부하는 게 쉽지 않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취업 후 사건을 맡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현재 동서양재 분사무소에서 근무 중인 로스쿨 1기 3명에 이어 최근 3기도 1명 채용해서 로스쿨 출신은 총 4명이다. 6개월 연수과정으로 시작해 지금은 다들 소속 변호사가 돼 계속 근무하고 있다. 이들 중 경제학과 출신은 경제와 상법을,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은 공법이나 언론을 맡는 등 세세히 부서까지 나눠지진 않지만 어쨌든 나눠서 일을 한다.
웹툰 ‘동네변호사 조들호’ 법률자문
어릴 때부터 예술분야를 동경했던 박진희 변호사. 이루지 못한 로망과도 같았다. 직업으로 삼지는 못했지만 항상 함께 자신의 삶에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지식재산권이란 새로운 디자인이나 창작물을 보호하는 것이다. 막연하지만 창작하는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했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그녀가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에서 ‘법률자문, 살려주세요’라는 글을 보게 된 것이다.
변호사 자격을 딴 지 얼마 안 된 상황이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었던 때다. 업무량도 많이 않았고, 무료 자문이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웹툰 ‘동네변호사 조들호’ 법률자문에 나설 수 있었던 것.스토리 위주로 진행해 실제 사건처럼 깊이 있는 자문이 아니어서 횟수가 거듭되고 있는 지금도 재미를 느끼면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변호사는 법률테두리 안에서 의뢰인에게 도움을 주지만 웹툰 안의 조들호 변호사는 변호사 의 역할에 더해 해결사처럼 총체적으로 의뢰인의 삶에 들어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점이 현실의 변호사와 차이가 난다.
비현실적이지만 주인공인 조들호가 멋있게 느껴진다는 박 변호사. 그래서 때로는 변호사 일을 하다보면 시간과 돈이 많이 소요돼 의뢰인이 진짜로 원하는 일을 해주기 어렵다고 느낄 때 정말 의뢰인을 위한 일인가 라는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웹툰 법률자문 변호사라고 해서 만화를 보고 찾아오는 의뢰인은 아직까지는 없지만 어떤 미국변호사 중 한 명이 열심히 보고 있다는 응원의 이메일을 보내 온 적이 있다. 변호사 친구나, 주변 친구들의 반응도 좋다. 매체에 이름이 실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기하게 생각한다고.
미래에 대한 고민은 ‘여전’
3년차가 되니 지식의 양이 많이 늘지는 않았지만 일하는 데는 자신감이 붙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일이 오면 답이 맞나? 파고들어야 하는 깊이에 대한 감이 없었는데, 이제 그런 감이 생겨났다.
순수 저작권침해사건이 지난 3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남아있다. 3심까지 갔지만 모두 승소를 거뒀고, 지지난주에 판결 선고가 난 정정보도청구 사건의 경우도 1심에서 정정보도 기각, 손해배상만 인정이 됐지만 상대편에서 항소해 2심까지 갔는데 정정보도까지 승소하게 돼 예상외의 기쁨을 누리게 됐다.
사건이 워낙 다양해 익숙해지지는 않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은 여전하다. 사회 전반에 깔린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교, 로스쿨 때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들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과정이 끝이 났다. 그 순간을 그토록 꿈꿔왔건만, 오히려 이제 막상 뭘 해야 하나라는 고민에 빠지게 됐다.
당장은 열심히 일해 놓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 맡은 일에 열심이다. 훗날에는 창작자들을 대변해 주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올해 초 결혼한 주부로서의 고민도 있다. 개인적인 바람은 살림과 육아도 함께 하고 싶지만 당장 갚아야 하는 ‘대출금 걱정’이라는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실제로 워킹맘이 되려니 육아로 인한 공백과 그 후 자신의 자리가 남아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다행히 다른 로펌에 비해 업무강도가 과다하지 않지만 일주일에 4번 정도는 야근을, 필요할 때는 주말에도 출근한다. 그래도 사건에 따라 시간을 유동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어 자유로운 편이다.
박 변호사는 새로운 것을 할 때 신나하는 스타일이다. 힘들 때는 하는 것을 잠시 쉬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려 환기를 시킨다.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신나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운동이나, 잡다한 것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스킨스쿠버 전문자격증도 소유하고 있을 정도다. 공부할 땐 ‘딴 짓’이라 여겨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지금은 일주일에 한 편씩 영화도 즐겨 본다.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 우선으로 꼽힌다.
“요즘 날씨도 좋은데 건강하지 않으면 이 행복감을 제대로 누리지 못할 것 아니냐!”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하고픈 말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취업,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을 순 없겠지만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의외의 것으로 넘쳐난다!
이아름 기자 desk@le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