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42 / 임대료, 이용과 소유의 절묘한 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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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42 / 임대료, 이용과 소유의 절묘한 접점
  • 이용훈
  • 승인 2014.05.2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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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수 백 마지기 전답을 물려받은 예비 ‘만석지기’는 어떤 행보를 보일까. 농사를 업(業)으로 살아가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라 치고 혼자 힘만으로 이 넓은 땅을 경작하는 건 무리라고 전제하자. 충분한 경영마인드를 갖고 있다면 농번기마다 숙달된 일꾼을 고용해 모내기철이나 추수철 부족한 인력을 메울 수 있다. 부모세대부터 해 오던 농사일에 이골이 났을 터이니, 어떤 시기에 몇 명을 고용해야 할 지 머리 굴리지 않아도 대강 파악되는 일이지 않는가. 농사일만큼 비용과 수익의 대응이 엇갈리는 업종이 있을까. 파종부터 추수까지 비용은 편만하게 뿌려지고, 가을걷이가 끝나고서야 땀 흘린 대가를 일시에 수령하는 구조니. 자금 집행에 애를 먹고 있다거나 기력이 예전같이 않다고 느껴지고 사람 부리는 일까지 귀찮아지는 시점, 가산 팔기는 싫다면 ‘도지(賭地)’를 떠올릴 수 있다. 닳아 없어지는 땅도 아니니 적절한 선의 도지를 받고 전답을 놀리는 것이다. 소유와 사용의 주체를 달리할 수 있고, 사용의 대가를 매개로 성립하는 임대차 관계는 오래 전 농경시대부터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부동산을 거주의 대상에서 투자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현재 국면은 임대시장이 주도하는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지면을 통해서나 뉴스를 통해 흔히 접하는 멘트다. 이 중 후자는 동일인 소유자 겸 사용자가 복수의 소유자 및 사용자로 분파되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공간 점유 양상이 이렇게 분화되는 건 효율성 면이나 합리성 면에서 바람직하다. 등기에 반드시 이름을 넣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 재산증식에는 별 관심 없이 사업을 할 공간을 빌려 쓰고 싶은 이가 있지 않은가. 소유와 이용을 분리할 수 있다는 것은 공간을 자산으로 인식하는 자, 공간을 원재료로 인식하는 자의 접근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고민은 공간이 한정돼 있는 현실을 전제한다.

도지를 떠올리면 소유자와 사용자 간 적정한 선의 ‘사용료’ 관행이 있었던 듯싶다. 경작자 입장에서 소출 전체를 다 바칠 수는 없을 것이고 소유자도 이는 무리한 요구라는 것을 안다. 친인척, 교류가 잦았던 지인이 아닌 이상 수 십 마지기 농경지를 놀리면서 달랑 쌀 한 가마니 받는 무상의 지료계약도 상식을 벗어난다. 어떤 식으로 도지 수준을 정했을까. 소출의 양, 즉 해당 토지의 비옥도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관개배수가 양호하고 거주지로부터 이동거리가 짧으면서 수해위험도 거의 없는 땅, 산 중턱 개간하기는 했지만 여러 모로 척박한 경작 환경 하에 있는 덜 기름진 땅에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지 않는가. 토지의 활용도 역시 고려할 사항이다. 경작만 할 수 있는 땅과 가옥이 들어설 수 있는 땅은 도지를 차등시켜도 큰 불만이 없다. 주변 마을 도지수준, 토지를 제공하는 자와 경작을 희망하는 자 중 누구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지 역시 균형지료를 이동시킨다. 옆 마을에서 도지라도 얻지 못한 이가 이 마을로 넘어오게 되면 기존 경작자보다 지주에게 조금 더 유리한 도지계약을 제시할 여지도 있다. 놀릴 땅이 많다면 그 반대의 양상이 될 것이고.

이를 일반화시켜 사용료를 정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시각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먼저 공공재에 해당되는 공원, 도로, 도서관, 지하철 역사 등의 공간 이용료는 면제받고 있어 논외로 하자. 물론 외견상 무상 이용이지만 간접적으로 이들의 유지·보수비용이 세금의 형태로 지불되고 있어 실질적으로 사용료를 징수하는 꼴이긴 하다. 허나 개별 사용자가 때마다 지불하는 것은 아니니 전형적이지 않다. 논의를 특수한 사정이 개입되지 않는 사적 공간에 한정하게 되면, 이에 대해선 동시에 복수의 용도로 활용이 불가능하기에 결국 독점적 이용자가 공간 독점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런 공간의 사용료는 빌려주는 자, 빌리는 자의 접근 방법이 유사하다. 시장의 증거, 비용성의 사고, 수익에 의한 접근이 그것. 이를 감정평가에서는 임대사례비교법, 적산법, 수익분석법이라고 부른다.

임대료는 해당 공간이 터 잡은 시장 흐름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임대사례를 우리 공간 주변으로 쭉 깔아보면 답이 나오게 마련이다. 저 쪽 오피스텔 월세가 폭등하면 자연스레 우리 오피스텔도 월세 수준이 동반 상승한다. 반면, 공실률이 늘어난다 싶으면 임대료 하향 조정 압박이 가해진다. 임대사업자끼리 담합해봤자 놀리느니 싸게라도 월세를 놓으려는 발 빠른 이가 있게 마련이니 시장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법. 최근 동일·유사 물건의 계약 임대료 수준에 연동돼 사용료를 책정하는 것이 임대사례비교법이다.

임대 목적물의 자산가치가 변동되면 사용 대가를 조정하려는 임대자의 욕구가 발동된다. 렌트카 회사에서 국산 소형차와 억대 외제차의 렌트비를 동일 책정할 수는 없지 않는가. 우리 물건 주위의 임대료를 쭉 깔아보면 부동산 가치와 임대료가 연동됨을 알 수 있다. 비싼 땅을 이용하려면 비싼 사용료를 부담하라는 것이다. 대체·경쟁의 논리, 상관·추종의 논리가 자연스레 작동하면 임대시장 계약 당사자는 공간 가치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공간 가치에 일정비율을 곱한 금액에 임대자 입장에서 도지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관리비용까지 임차인에게 부담시키는 방식이 곧 적산법이다.

실질적으로 많이 활용되지 않는 수익분석법은 기업의 경영수지를 분석하여 사용료를 결정한다. 쉽게 농경지에 대한 도지관계, 도심에서의 유료주차장 부지를 떠올려보라. 경작해서 몇 가마니 쌀을 거둘 수 있는 땅, 월 주차료를 어느 정도 거둘 수 있는 토지라면 그에 상응해서 사용료를 책정해도 불만 없다.

이와 같이 부동산 가치를 판단하는 일과 그 사용료를 결정하는 과정은 별 차이가 없다. 합리적인 시장참가자를 전제하고, 시장상황을 분석하고, 수익의 정도와 비용의 규모를 고려하면 분명 균형 사용료 수준이 도출된다. 놀이공원 입장료와 사우나 이용료, 도심 내 모텔의 대실료가 적정한 수준인지는 대체 가능한 주변 놀이공원의 입장료, 사우나 시설의 양부, 낮 시간 모텔 사용자 수를 고민해 보면 될 터. 이렇게 결정된 임대료는 화학반응에서의 평형계수와 같이 절묘한 동적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다. 다만, 임대차관계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인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주택 및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시행중이고, 보증금, 보증부월세, 월세 형태의 다양한 임대료 지불방식이 있다는 내용 등은 본 원고에서는 별론으로 한다.

지하철 역사 매장의 임대료, 구청 내 자판기 자리 세, 도심 한복판 모델하우스 부지 사용료를 결정하는 일에
감정평가가 개입하고 있다. 임대료 감정평가에 대한 산책을 해 나가는 길은 우리 일상에 스며있는 사용료의 결정 패턴을 한 번 정리하는 발걸음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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