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감정평가사
시장에서 통용되는 최소 화폐단위는 그 당시 물가수준을 대변한다. 지금부터 30년쯤 거슬러 올라간 80년 대 초반, 1원 혹은 5원 짜리 주화를 돼지 저금통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지만, 물건을 사고 팔 때 실질적인 화폐 최소 단위는 10원이었다. 필자 역시 10원을 주고 동네 슈퍼에서 추억의 불량식품 ‘쫀드기’ 한 개를 무리 없이 구입할 수 있었다. 버스 요금이 70원 정도였으니, 통학하는 중고생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는 만원 버스 안에서는 요금 박스에 10원짜리 7개가 한 무더기로 떨어지며 만드는 경쾌한 소리를 손쉽게 들을 수 있었다.
그 땐 초등학생을 ‘국민 학생’으로 부르던 시절이었다. 당시 최소 화폐단위였던 10원짜리 동전의 유통을 왕성하게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국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제 폐품수집활동이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학교가 의무적으로 폐품을 수집하게 했어도 수집된 폐품이 모여 이를 재활용하는 업체에 일괄 매각되면서 발생한 수입이 불우이웃 등을 돕기 위한 기금으로 전달될 뿐 10원 동전의 유통에 기여하는 부분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 10원 주화의 왕성한 유통이, 폐품을 수집할 길 없는 아이들이 빈 유리병 또는 신문더미를 슈퍼에서 10원을 주고 구입하는 데 기인했다는 점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꼭 얼마짜리 폐품을 가져오라는 지침은 없었지만, 아이들은 관행적으로 신문 두 더미 혹은 유리병 두어 개는 들고들 등교했다. 그러다보니 집 안 곳곳에서 나뒹굴던 10원들은 1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바깥바람을 맘껏 느끼며 동네 슈퍼로 집결한 것이다. 물론 폐품 구입하러 오는 아이들에게 방출 대기 중인, 슈퍼 창고 가득히 채워진 빈 병 재고는, 탄산음료를 다 마시고 빈 병 들고 와 건네주며 수령한 10원 동전 하나에 희희낙락 돌아가는 코흘리개 어린아이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
폐품에 대한 매매는 현재진행형이다. 확성기를 매단 1톤 트럭이 고장 난 TV, 오디오, 냉장고를 구입한다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으니. 폐품에 대한 이와 같은 거래는 민간 영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도 더 이상 쓸모없다고 결정된 물건을 주기적으로 시장에 내다 판다. 「물품관리법」,「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의 규정에는 ‘사용할 필요가 없거나 사용할 수 없는 물품‘에 대해 불용(不用)결정을 내리고 이를 물품 관리·처분의 기본원칙 중 하나인 투명하고 효율적인 절차에 따라 매각할 수 있도록 했다. 종전 규정에는 규모·형상 등으로 보아 활용할 가치가 없는 일반재산 등만 매각의 대상이었으나, 관련 법률 또는 장래 행정목적의 필요성 등을 고려해 처분 제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일반재산에 대해 매각이 가능하도록 완화된 형태로 개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들 불용품은 매각 공고 후 경쟁 입찰, 지명 입찰, 수의계약의 방법에 따라 매각할 수 있다. 이 때 매각가격은 시가를 고려하게 되어 있는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에 따른 둘 이상의 감정평가법인에 의뢰하여 평가한 감정평가액을 산술평균한 금액이 그 기준이 된다.
이들 불용품에 대한 감정평가는 어떤 식으로 이뤄질까. 「감정평가에 관한 규칙」제21조(동산의 감정평가)는 ‘감정평가업자는 동산을 감정평가 할 때에는 거래사례비교법을 적용하여야 한다. 다만, 본래 용도의 효용가치가 없는 물건은 해체처분가액으로 감정평가 할 수 있다.’ 고 규정한다. 해당 폐품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관행을 확인해 보든지, 불용품에서 쓸 만한 원재료-예컨대 폐 전선에서는 피복을 벗긴 구리선-중량과 단가를 확인하고 평가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감정 평가 시 물가정보지의 중고물품 시세, 폐기물 수거업체의 원재료 단위중량당 매입단가를 참작할 수 있다. 물론 해당 업체로 물건을 옮기는 운반비, 원재료를 추출하는 후가공비 등을 감안한 가격 수준이 될 것이다.
불용품에 대한 감정평가에서는 크게 2가지 정도의 애로사항이 있다. 첫째는 목록에 대한 신빙성 혹은 정확성에 대한 문제로 매각 대상 물건의 수량과 종류를 전수조사하기 힘들다는 점. 창고 가득히 쌓인 철제 의자가 2,500개라고 제시되었다면 일단 2,500개 수량이 정확한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또한 2,500개 물품이 같은 종류인지, 재질은 동일한지, 물건 당 동일한 가격으로 매각할 수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둘째로 합금과 같이 타 재료와 혼재되어 있는 경우 순 중량에 대한 추정 과정을 불가피하게 거쳐야 한다는 점. 쉽게 말해 니켈과 고철이 섞여 있다면 각각의 단가가 다르므로 니켈과 고철의 성분비가 대략 얼마인지까지 파악해야 한다. 이를 성분 분석할 수는 없으니 과거 취득 당시 원재료 비율, 현 시점 신규 취득 시 해당 재료의 구성비 등을 충분히 확인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필자는 평가사 초창기 불용품을 평가함에 있어 전술한 2가지 애로사항 외에 더 곤혹스런 문제에 직면한 적이 있다. 불용품 매각 수량이 총 120,000개, 매각 종류는 4,000개인 폐자재 보관창고를 실사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의뢰자 측에서 매각 종류별로 매각금액을 내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어떤 폐기물 수거업체가 대동소이한 폐품 무더기를 종류별로 하나하나 가격을 매겨보고 입찰금액을 적어 내겠는가. 전체 수량 혹은 중량에 단가를 곱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상식적이다. 이걸 굳이 개별로 평가해 달라는 줄기찬 요구에 하루 밤 꼬박 새며 물건 종류별로 일일이 단가를 넣었다. 전체 매각 금액의 적정성이야 확신하지만 개별 물건의 매각 예정가가 정확했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기껏 고생했지만 일괄 매각 조건이니 총액만 확인할 뿐인 매수 대기자에겐 불필요한 정보이지 않았을까.
어쨌든 하루가 멀다 하고 시청, 구청, 공기업에서 불용품 매각 공고를 올리고 있다. 예전 신문지, 빈 병은 슈퍼 주인 맘에 맞는 가격에 사들이고 되팔았지만 불용품의 매각금액은 철저하게 감정평가사의 손을 거친다. 불용품 매매 시장에서 감정평가사는 매도 의뢰자에게는 잔반처리 반, 매수 대기자에겐 중고서적 판매상 쯤 돼 보인다. 그리고 이 영역은 화폐시장에서 유통되는 최소 화폐단위 10원짜리와 같이, 감정평가사에겐 수수료 수입 면에서 기여(?)정도가 가장 미미한 분야로 취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