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28 / 좋은 평가사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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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28 / 좋은 평가사로 살아남기
  • 이용훈
  • 승인 2014.01.2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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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얼마 전 24회 감정평가사 자격시험 합격자가 배출되었다. 합격의 기쁨이 채 가시기 전 곧바로 수습 평가사 면접 일정이 이어졌다고 한다. 녹록치 않은 업계 상황을 피부로 몸소 느낄 시기지 않았을까. 합격자의 들뜬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았으리라. 여태 그래왔다. 감정평가사가 8대 전문자격자 집단에 포함되고 있으나 한정된 시장 규모에서 4천 명에 육박하는 평가사가 현직에서 활동하고 있고 매년 200명의 평가사가 신규로 시장에 들어오고 있다. 현실은 냉혹하다. 어디를 가도 업계 힘들다는 하소연 소리만 들린다. 엄살은 아니다. 그러나 어디 평가사뿐이겠는가. 10년 째 회계사 수입이 정체되어 있고, 법무서비스의 절반을 차지하는 법률 자문 업무가 기업체가 채용하고 있는 사내 변호사에 의해 침식되고 있다는 해당 업계의 볼멘소리가 사실이라면 이런 어려운 시기는 전문 자격자 모두에게 매일반인 셈이다.

평가업계의 활성화는 부동산 시장의 회복 여부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부동산 시장만 살아날 수 있겠는가. 경제 전반에 온기가 불어넣어져야 부동산 시장에도 훈풍이 불어 올 것이다. 일본과 같은 부동산 장기 불황이 분명하다면 업계의 사정은 한동안 침체를 면하지 못할 거라 예상된다. 시장 외연은 확대되지 않는데 신규 진입자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는 현상이라면 이와 달리 볼 여지가 없다. 십 수 년 전, 한 해 부지런히 일하면 아파트 한 채 장만했다던 황금기를 겪은 선배 세대는 요즘 상황이 영 낯설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한참 일할 나이에 있는 젊은 평가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아니 그보다 우리 모두는 이 업계 내 어떤 부작용을 우려하고 경계해야 할까?

부장판사로 재직하다 변호사 개업을 한 분이 이런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다. ‘판사와 변호사 업무 성격이 너무 다르다. 최고의 변호를 준비하기보다 의뢰인의 심기를 맞춰가며 섬기는 게 먼저라는 사실이 낯설다.’ 법률적 양심에 따라 누구 눈치 보지 않고 판결만 했던 법관이 수요자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변호사의 피곤함을 알 리 없었을 것이다. 전문자격자의 우월적 지위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고 영업적 마인드와 서비스 정신이 모든 전문직에게 요구되고 있다. 업무 유치 실적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소속평가사가 재계약을 장담할 수 없는 평가법인이 적지 않다. 그런데 치열한 영업 경쟁은 평가 업무의 고유한 특수성과 맞물려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공산이 크다.

부작용의 핵심은 의뢰자 편향적인 평가결과로 축약할 수 있다. 물론 수요자가 그렇게 유도한다. 한쪽에 좀 더 유리하도록 미세하게 평가결과를 조정을 해 달라는 노골적인 주문을 넣으면서. 이 업계 내 강직한 평가사가 대다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정도 수수료를 지급하는데 입맛에 맞게 좀 신경 써 달라’는 수요자의 바람, ‘내가 거절한다 치자. 이 정도의 부담이라면 충분히 감수하고 맞춰줄 평가사는 널려 있지 않은가’하는 평가자의 불안감은 결국 우려한 대로 부실 감정평가 사고로 이어진다. 

‘한남 더 힐 분양전환 감정평가’건이 결국 감정평가 타당성 조사 대상이 되었다고 들었다. 현 입주자와 시행사가 각각 평가자를 선정할 때부터 우려의 목소리는 높았다. ‘동일한 물건, 이해관계가 다른 복수 의뢰자 조건’의 감정평가였기에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은 더 농후했다. 그렇다고 평가를 담당한 평가자가 갓 자격증을 취득한 물정 모르는 신참도 아니었고, 평가서 발급을 허용한 평가법인이 구멍가게 수준의 형편없는 곳도 분명 아니었다. 양측이 어떤 논리로 평가서를 구성했을지 짐작은 가지만, ‘적지 않은 수수료’, ‘수요자의 일방적인 요구’, ‘위험부담을 감수할 대기 중인 경쟁 평가법인’ 조건이 결합하고 보니 균형이 다소 허물어진 평가 결과로 내달리지 않았을까. ‘직업윤리’, ‘자정’, ‘시장의 신뢰’, ‘전문성’, 이런 단어가 대중없이 떠오른다. 1000만을 돌파한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 송강호의 쩌렁쩌렁한 대사 한 구절도 귀에 쟁쟁하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얼마 전 만난 1년차 평가사의 입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좋은 평가사로 살아남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시기다. 그러나 시절만 탓하겠는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 선량한 변호사의 행적은 업계현실에 굴복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감정평가업계가 그렇게도 중시하는 바로 그 ‘전례’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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