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를 따라 양창수 선생님 강의를 3번 청강했다. 내가 잘 아는 경제학 교수님은 개강하는 날 흑판에 하이픈을 섞은 10개 정도의 숫자를 크게 적어 놓는다. 선생님 은행 계좌번호다. 그리고 청강하는 사람들은 그 곳으로 입금을 하라고 하신다. 그런데 양교수님은 내가 청강하고 있다는 것을 자백해도 묵인해 주시리라 믿는다. 아무튼 그 분의 강의를 감히 평가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내 부족한 언어로 '예찬'하기로 한다.
서한샘은 우리나라 학원계의 전설이다. 케이블 방송에서 그 사람의 강의를 본 적이 있는데 다른 사람보다 실력이 월등하다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반말과 "밑줄 쫙"을 통한 자신감이 돋보였다. 양교수님이 반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민법은 원칙적으로 권리외관 법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같은 엄청난 말을 쉽게 쉽게 하신다. 그리고 선의취득,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 그리고 표현대리라는 '3가지' 분야에서만 그것의 예외를 인정한다고 단언하신다. 이런 일반적이고 거시적인 명제는 현미경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저 높은 창공을 유유히 나는 독수리의 시선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독수리와 자주 만나면 내가 독수리가 될 수 있을까? 근묵자흑(近墨者黑)?
강의를 썩 잘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교수가 있다. 일단 학점을 잘 주면 그렇다. 그런데 학점도 짜고 전혀 대중적인 스타일도 아닌데 강의실이 가득 차는 경우가 있다. 쇼펜하우어는 자기가 훨씬 재미있게 강의를 하는데, 말도 어눌하고 지루한 헤겔의 강의에 수강생이 많이 몰리는 것이 분해서 자기 집 개(犬) 이름을 '헤겔'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진본(眞本) 미술품이 사진이나 그것을 그대로 모사한 그림과 다른 점을 어느 철학자는 '아우라'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진본 예술품에서는 오로라 같은 기(氣)가 뿜어져 나온다는 것이다. 헤겔의 강의실이 가득 차고 양교수님 강의에 청강생이 몰리는 것은 '대가'에게서 풍기는 '아우라' 때문일까? (ps. 양교수님 강의는 재미있슴다.)
삼성가(家)의 변칙 상속을 보면서 아예 '상속'제도를 없애자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내 친구가 있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 더 밀고나가보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증여가 상속을 대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학자의 미덕은 자신의 생각을 극점까지 몰아가고 그 바탕에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이다. 양교수님 강의에서 그런 경험을 몇 번 했다. 선생님은 '제한 종류채권'이라는 용어를 부정하신다. 종류채권에서는 인도의 목적물이 될 수 있는 범위를 당사자가 자유롭게 '제한'할 수 있는데 '현대자동차 소나타 한 대'나 'A창고의 쌀 50가마'나 제한이라는 면에서 같다고 보신다. '다시 가하여진 제한'도 그 범위만 축소될 뿐 결국은 하나의 '종류'일 뿐이라는 것이다. 날카롭다.
프랑스 구조주의, 해체주의 철학이 진보적인 젊은 학자들 사이에서 유행한 적이 있었다. '차연', '탈주', '전복' 같은 용어를 구사하는데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현실적합성도 의문이었다. 양교수님은 학자들의 임무중의 하나는 '종이만 낭비하는' 쓸데없는 논쟁을 없애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세로로 8가닥 자르듯 지나치게 쪼개는' 학문적 접근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으셨다. 직업인으로서의 학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현실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개념들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할 때 의욕, 용인, 묵인, 감수 등등을 구분해서 의식을 할까? 아무튼 '깊이 있으면서도 쉬운 것'이 최고로 좋다.
양교수님에 의하면 우리 민법학은 크게 4단계를 거쳤다고 한다. (1) 해방 후 학계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던 시절의 실무법학 (2) 문성당에서 발행한 아처영 저 안이준 역 {민법강의}시리즈로 대표되는 번역법학 (3) 김증한 안이준 공편 {민법강의} 시리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번안법학 (4) 곽윤직 선생님으로 대표되는 독자적 저술단계가 그것이다. 그 모든 단계에는 일본학자 아처영(我妻榮)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처영은 사회주의의 도전에 직면해서 자본주의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자산의 유동화와 신용의 보호 즉 동적 안정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던 1930년대 일본의 학계를 대표하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시절 일본에서 '공공복리'라는 말은 나올 수 있지만 '개인의 존엄'과 같은 관점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개발독재시대의 우리나라의 사정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런 경향을 양교수님은 국가주의(etatism)로 규정하고 당신의 임무를 '인격의 보호'같은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법학을 정립하는 것으로 삼고 계시는 듯하다. 이런 선생님의 말씀은 내가 지금 줄긋고 공부하는 민법 교과서가 {성경}이 아니라 민법에 관한 여러 가지 접근법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고, 내가 대학원을 떠나면서 가슴 저 밑에 꼭꼭 눌러 둔 '학문의 유혹'을 불러 일으켰다.
그 분이 수업시간에 던진 몇 가지 질문이 있는데 한 번 풀어보기를 바란다.
1. 전 임대인에 대하여 차임을 1회 연체한 등기된 임차인이 그 후 소유권을 획득한 자에게 또 1회 연체한 경우 신소유주는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나? (물권과 채권의 경계선)
2. 선순위 상속인인 혼인외의 자에 대하여 인지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피상속인의 직계 존속인 모에게 손해배상금의 일부가 지급된 사안에서 470조를 적용하여 변제를 한 채무자는 선의 무과실인 경우에만 보호되는가?(모가 채권자인가, 채권의 준점유자인가?)
3. 현금 100만원을 지급하기로 한 금전채무에서 은행에 100만원을 입금한 경우 채무의 내용에 좇은 지급이 되는가? (은행의 파산을 염두에 두실 것)
이런 강의를 들은 바탕 위에서 고시공부를 하는 법대 출신들과 다른 것을 전공한 내가 법을 이해하는 넓이와 깊이에서 경쟁이 될까? 다른 훌륭한 교수님의 수업도 그 분들이 허락하신다면 청강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