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51)-‘N번방 사건’과 판사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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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51)-‘N번방 사건’과 판사 교체
  • 이성진
  • 승인 2020.04.1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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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
신종범 변호사

‘7번방의 선물’은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 준 영화였지만, ‘N번방의 사건’은 우리를 분노케 하는 현실이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착취물을 텔레그램 다수의 방에 올리고, 수만명의 사람이 들어와 이런 저런 품평을 하며 즐겼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국민적 공분에 ‘박사방’을 운영한 피의자 조주빈의 신상이 공개되었다. 살인과 같은 흉악범죄가 아닌 성범죄로 신상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조주빈에게 향했던 여론은 이후 한 판사에게로 향했다.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배포한 혐의로 기소된 ‘태평양 원정대’ 운영자 이모(16세)군 사건의 담당 판사인 오덕신 판사였다.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4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오 판사의 교체를 청원했다. 그가 故 구하라씨가 피해자인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등 성인지 감수성이 없는 판사이기에 성범죄 사건인 ‘N번방 사건’을 맡기에 부적절하다는 청원이었다.

결국, 오 판사는 교체되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국민청원과 관련하여 오 판사가 해당 사건을 처리하는데 현저히 곤란한 사유가 인정된다”며 다른 재판부에 재배당했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판사 교체를 요구하는 여론이 형성되거나, 시위 등이 있어 왔지만, 실제 교체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 이번 결정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오 판사가 스스로 사건을 재배당하여 줄 것을 서면으로 요청하였다고 전해졌다.

형사소송법은 법관이 배당된 사건으로부터 배제되는 경우로 ‘제척’, ‘기피’, ‘회피’를 규정하고 있다. ‘제척’은 법관이 사건 당사자(피해자, 피고인) 또는 사건과 관련하여 형사소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특별한 관계(피해자 또는 피고인과 친족 관계, 사건에 관하여 증인이 된 때 등)가 있을 때 당연히 사건에서 배제되는 것을 말한다. ‘기피’는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 검사 또는 피고인의 신청으로 법관을 사건에서 배제하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 법원은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라고 함은 당사자가 불공평한 재판이 될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만한 주관적인 사정이 있는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통상인의 판단으로서 법관과 사건과의 관계상 불공평한 재판을 할 것이라는 의혹을 갖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는 때를 말한다”라고 하면서 기피 신청을 거의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도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지만, 7개월 만에 대법원까지 가서 끝내 기각되고 말았다. ‘회피’는 ‘기피’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사 스스로 판단한 경우 법원에 신청하여 재판에서 배제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러한 경우는 거의 없다. 스스로 “불공평한 재판할 염려가 있다”고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오 판사의 경우는 오 판사 스스로 교체를 요구하여 교체되었다. 그렇다고 형사소송법상 ‘회피’ 규정에 따라 교체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교체사유가 ‘회피’ 사유인 “불공평한 재판할 염려가 있는 때”가 아닌 “해당 사건을 처리하는데 현저히 곤란한 사유가 인정되는 때”라고 법원은 밝히고 있고, ‘회피’의 경우에는 회피 신청에 따른 재판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데, 오 판사의 경우에는 소속 법원의 형사수석부장판사에 의한 사건 재배당 형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오 판사 교체는 「법관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에 따라 이루어졌다. 예규 제14조는 사건배당이 확정되어 사건배당부에 등록된 이후에는 원칙적으로 변경할 수 없지만, “배당된 사건을 처리함에 현저히 곤란한 사유가 있어서 재판장이 그 사유를 기재한 서면으로 재배당 요구를 한 때” 재배당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에 따라 오 판사의 교체 요청으로 교체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이후 오 판사가 교체되면서 사법권 독립이 훼손되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하여 재판의 독립을 규정하고 있는데, 법관이 여론의 영향을 받게 된다면 독립한 재판이 어렵게 된다. 예전에는 권력기관에 의한 사법권 독립 침해가 문제되었으나, 요즘에는 여론에 의한 사법권 독립 침해가 더 크게 문제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사법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여론을 통해서라도 민주적 통제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의견이 힘을 얻는 것은 사법행정권 남용,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판결, 여전히 권위적인 재판 진행 등 사법부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져버린 영향이 크다. 이번 오 판사 교체 사건에서 법원이 사법권 독립 침해 우려를 강하게 주장하지 못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N번방 사건’은 또 어떻게 결론날지 지켜볼 일이다.

신종범 변호사
법률사무소 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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