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저널=이인아 기자] 지난달 30일 인사혁신처 연두 업무보고가 있었다. 수험생들은 이번 업무보고에서 9급 시험과목 개편에 대한 구체적인 안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으나, 결과적으로 시험과목 개편에 대한 내용은 고교과목 폐지 검토 등 이제껏 말이 나왔던 것 정도로만 언급이 됐다. 아직 아무것도 결론이 나지 않은 것이다.
시험과목 개편에 대한 결론이 아직까지도 나지 않은 것을 볼 때 정부 내부적으로 상당한 고심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수험생들은 시험과목 개편에 대한 결과가 어떻게 날지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겠으나, 공무원시험과목 개편이란 게 단순히 시험과목 개편을 넘어 우리나라 교육 전반에 걸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조금 늦어지더라도 여러 의견을 수렴하고 숙고의 숙고를 거쳐야 한다는 게 기자생각이다.
9급 시험과목 개편 방향에 대해 수험가에서도 그간 여러 의견이 나왔다. 국어, 영어, 한국사 전부 또는 이 중 일부가 능력시험으로 대체돼야 한다는 의견, 선택과목에서 고교과목을 폐지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거나 해도 여하튼 전문과목을 필수로 선택토록 해야 한다는 의견, 예전처럼 필수 5과목으로 치러져야 한다는 의견, PSAT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 행정법 또는 행정학을 전 직렬 선택 필수로 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다.
기자가 시험과목 개편 방향에 대해 질의했을 때 대부분이 이 같은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수험가에서는 시험과목 개편 결과에 따른 유불리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3자 입장에서보다 그래도 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의견을 말하게 된다. 가령 영어강사는 영어가 토익으로 대체되는 것을 반대할 것이고, 사회강사는 사회가 폐지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질의자체가 답정너(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다)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최근 기자는 이 같은 질의에 대해 시각을 달리해 보는 수험전문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시험과목이 어떻게 바뀌어야하는지에 대한 기자의 질의에 한 수험전문가는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했다. 있는 제도를 고착화하고 다만 개선이 필요한 점에 개선을 하는 게 낫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있는 제도가 자주 바뀌지 말아야 하고 바뀌더라도 개인의 입맛에 맞게 제도가 변화하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평소 갖고 있던 생각과 비슷한 말을 들었던지라 기자는 그의 말에 집중했다. 그는 정부가 유력하게 검토 중인 고교과목 폐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수험생들이 고교과목을 선택하는 비중이 적고, 합격자 중에서도 고교과목 선택자가 많지 않다는 게 현 고교과목 폐지의 검토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가 만들어진 것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험전문가에 따르면 사회, 과학, 수학과목은 선택과목으로 도입한 초반에는 쉽게 출제가 되었단다. 하지만 매해 난이도가 올라가면서 이제는 수험생 다수가 선뜻 선택하지 못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수학을 가르쳐본 적이 있는 그는 최근 공무원시험 수학문제를 보고 정말 어려워졌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이 정도 난이도의 20문제를 20분간 풀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강사도 20분내 못 푸는 것을 수험생들이 과연 풀 수 있을까 싶었단다. 결국 고교과목이 어렵게 출제되면서 수험생들이 선택을 포기토록 했고, 이것이 고교과목 선택 비중을 낮추는 데 어느 정도 적용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이면을 들며 “고등학생들에게는 그래도 고교과목 선택이 희망이 될 수도 있는데 이들이 갖는 제도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을 등한시하는 건 아닌지, 그래서 바꾸려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고 전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하지만 정권에 따라, 시대흐름에 따라 제도변화 선두에 있는 게 아이러니하게도 교육이다. 채용도 마찬가지다. 교육, 채용만큼은 쉽게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분야다.
하지만 변화가 꼭 필요하다면 전체를 싹 바꿔버리는 파격적인 변화보다는 기존에서 살짝 개선하는 정도로 할 수는 있겠다. 단 이것이 소수를 위해, 소수의 성패에 의한 건은 아니어야 한다. 수험전문가는 “채용 제도 개선이 있더라도 그것이 어떤 소수 집단, 특정 집단의 유불리에 의해 결정돼서는 안 될 것”으로 봤다. 이 말은 참 의미심장하다.
시험과목 개편이 어떤 특정집단의 유불리에 의해 결정되어선 안된다..는 말은 현재 그렇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그렇게 될 것을 우려해 노파심에 하는 말이거나 하는 것일테다. 그렇다면 고교과목 폐지, 영어 대체 등 이 같은 시험과목 개편에 대한 논의로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집단, 쉽게 말해 이득을 보는 집단이 어디일까.
기자는 생각을 해봤다. 공무원 직업 선호가 매해 높아지고 있다. 이에 고등학생 때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대학에 가지 않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도 적지 않고, 대학에 가서도 공무원시험 준비에만 매달리는 학생도 적지 않다. 고등학생이 대학에 가지 않고 공무원학원으로 가고, 대학에 들어와서도 전공보다 국어, 영어, 한국사, 사회, 과학, 수학 공부만 하는 것. 이것은 대학학과는 물론 더 나아가 대학교 통폐합과도 관련된 문제일 수 있다. 즉 공무원 수험 시장이 커질수록 대학의 입지는 줄어드는 것이다.
수험전문가가 말한 특정집단에 대한 답은 빨리 나왔던 것 같다. 시험과목 개편에 대한 이러한 의견은 개인의 생각으로 여러 의견 중 하나다. 기자는 어떤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데 있어 완벽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입장마다 다 일리가 있고 그것을 존중한다. 어떤 것이든 결과에 대한 찬반논란은 있기 마련이다. 시험과목 개편 검토의 결론이 어떻게 최종 정해질지 모르나, 대학교수, 현직공무원 등 전문가 뿐 아니라 수험생, 수험 관련 종사자, 교사, 고등학생, 대학생 등 많은 이들의 의견이 수렴돼 최대한 합리적으로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